괘안타, 괘안타

by 무량화


청명한 날이면 멀리 대마도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태종대는 부산을 대표하는 암석해안의 명승지란 사실이야 다 아는 야그 아니겠소.

부산 해운대와 태종대 좋다는 거, 두말하면 잔소리고.

태종대는 가뭄이 들 때마다 동래부사가 기우제를 지낸 곳이기도 하더군요.

신라 태종무열왕이 삼국 통일 이룬 후 여기서 활을 쏘며 즐겼다 하여 이름 붙여진 태종대.

혹여 조선조 태종 이방원으로 착각해 그리 입력시킨 분은 없겠지요.

파도쳐 깎인 기암절벽에 해송과 참나무 동백나무 수풀 우거져 역시나 절경 이루었더이다.

일본열도를 강타하고 북상 중인 태풍 '콩레이'의 직접 영향권 아래 든다는 부산뉴스를 듣고는
부리나케 우산 챙겨든 채 태종대로 직행했다오.

남해안에 태풍 특보가 발령됐으며 물폭탄 조심하라는 기상청 예보가 나온 판에 물보라 뿌리며 드높이 격랑 치는 파도 보러 섬으로 간다 하는 정신머리가 대관절 정상인지?

태종대에 닿을 때까지도 바람만 거칠 뿐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소.

음산한 구름이 바삐 달음질치는 외엔 다른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더이다.

절벽 아래 바다를 내려다봐도 파도 높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바다는 고요했소.

등대 아래 발달한 융기 파식대(침강과 융기로 해안 단구가 계단 모양이 되는)인, 신선암 망부석 주변 역시 대체로 파랑 잔잔하더이다.

해서 등대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더이다.

마침 아이들 한무리가 등대 꼭대기 유리창에서 어른대기에 등대가 개방됐구나, 하고 서둘렀다오.

등대 초입 전시실에는 세계 유명 등대 사진과 등대에 관한 도서가 비치돼 있더이다.

그보다는 태풍 후려쌔리기 전에 등대 위로 올라가 봐야지 싶어 성큼 계단 쪽으로 향했소.



소라고동처럼 빙빙 돌며 아찔하게 위로 치올라가는 계단을 쳐다보기만 해도 고마 오금이 저리더이다.

한 굽이돌아 오르자 벽면에 세계 최초의 배 사진이 붙어있어 얼른 폰에 담은 다음 계속 올라갔다오.

또 한 굽이돌 때마다 새로운 배 사진이 한 장씩 기다리기에 홀린 듯 자꾸 올라가게 되더이다.

점점 내부가 조붓해지며 고층이 되자 난간 잡은 손이 경직되면서 다리가 풀리는 느낌도 들었소.

손엔 땀이 나고 무릎은 후들거려졌소만 나도 오를 수 있다, 괘안타 괘안타 최면을 걸었다오.

사진을 보면 알다시피 갈수록 어찔 아찔, 중심 잡기가 힘들어져 피사체가 제멋대로 흔들리더이다.

안 그래도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여기 오를 줄 알았다면 청심환이라도 먹고 왔으련만...

도대체 후대에 남길 명작도 아닌 이 사진을 찍어 뭣에 쓰자는 건고?

진짜 못 말리는 기벽(嗜癖)이군 기벽! 스스로도 어이없어 쯧쯧 혀를 차기도 했다오.

딴엔, 태종대 등대를 올라가 본 적 없는 이들과 사진 나누는데 의미가 있다는 거창한 사명감까지 애써 끌어 붙여봤으니 히말라야 등정도 아니면서 이 무슨 오지랖이겠소.

하여간 심호흡을 해보고 그래도 진정이 안돼 슬며시 주저앉았다가 벽에 기대섰다가 그렇게 정신 줄 가다듬으며 아주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소.

잔뜩 긴장한 채 벌벌 떠는 내 모습이 우스운지 애들은 힐끗거리며 지나친 다음 아무 두려움 없이 척척 올라들 가더이다.

그럭저럭 거의 다 올랐으나 결국 유리로 된 상층 전망대까지는 못 오르고 말았소.

괜히 오기 부리다가 엄한 사고 칠 거 같아 그쯤에서 퇴각키로 했소이다.

계단 내려오는 일도 생각처럼 수월하지 않아 걸음마 배우는 얼라처럼 더듬적댔다오.

태종대 영도등대,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 높이는 35미터며 불빛은 40킬로미터까지 나아간다 하오.

1906년 12월에 설치되어 백여 년간 부산항 길목을 지켜왔는데, 시설 노후로 2004년 새로운 등대 시설물로 교체되었다 하더이다.

후덜덜~ 얼빠진 표정으로 출구를 나와 새삼스레 백색 원형 건물 등대를 올려다보니, 바짝 겁에 질려 얼어붙을 만큼 그다지 높아 보이지도 않지 뭐겠소.

기분학상 괜히 무서웠던 모양이다, 하며 싱글거렸소만.

그래도 여전히 데크 난간만은 단디 부여잡은 채 웃고 있더이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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