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세제가 떨어져 오후 들어 이마트에 갔는데요.
마침 그랜드 세일 마지막 날, 글쎄 세제를 50%나 대폭 할인된 가격에 샀으니 얼떨결에 수지맞은 셈이지요.
과일코너를 지나는데 맨 앞줄의 살구가 눈에 확 들어 오더군요.
그 옆에 뉴질랜드 산 키위가 세일이라며 한 무더기 쌓여있었고요.
미국에서 수입한 체리도 세일하더라구요.
빨갛게 잘 익은 체리의 때롱때롱한 눈빛을 보자 반가움에 아는 체를 했지요.
포장된 팩에 절로 손이 가더군요.
세제 덕에 올해도 때 놓치지 않고 체리와 살구를 맛보게 됐다며 흐뭇한 기분으로 사가지고 왔지요.
식초를 탄 물에 체리를 씻어 긴 꼭지를 집어 들자 홀연 흔들어 보고 싶었어요.
어쩐지 유리종에서 들려오는 투명한 종소리가 들릴 거 같았지요.
물기를 뺀 다음 체리와 살구를 접시에 수북 담아 앉은자리에서 반 정도나 먹었는데요.
몸이 먼저 싱그런 제철 과일을 알아보고 좋아~좋아~손뼉 쳐 주더라구요.
순간, 소쿠리 채로 체리를 설렁설렁 물에 휑궈서
수잔나 자매님하고 오물거리며 체리씨를 뱉던 날이 떠오르더군요.
그럭저럭 벌써 십 년 전 글이 됐네요.
오나가나 인복이 많은 사람인가 봐요.
나눈 것도 별로 없이 자꾸 받기만 하니 민망스럽고 염치없을 정도랍니다.
수산나 자매님이 댁의 뒤뜰에서 방금 땄다며 체리 한 봉지를 갖다 주셨는데요.
그분 댁에서 보니 아몬드꽃 살구꽃이며 매화 도화도 다 진 다음에 체리꽃은 가장 늦게 피던데
그새 체리가 익어 제철을 맞았나 봅니다.
지난 주말엔 딸내미가 노랗게 익은 살구를 사 왔던데 봄과일이 지금 한창인 모양, 곧 매실 철도 다가오고요.
탱탱히 물기 머금은 빨간 체리에 곁들여 딸려온 이파리까지도 살아있는 듯 싱싱하니 새파랬어요.
농장에서 대량으로 출하되는 상품만큼 알이 굵진 않아 긴 꼭지만 아니라면 언뜻 앵두 같은 게 때깔 참 고왔지요.
더구나 집 뜰에서 가꾼 체리라 농약 같은 환경오염 염려 없이 안심할 수 있거든요.
소쿠리에 담아 물에 흔들어 들고 와 즉석에서 거진 한 공기 남짓이나 먹었네요.
한옆에 오소소 빼놓은 귀여운 체리씨를 보자 자동으로 '이해의 선물'에 나오는 사탕가게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사탕을 고른 다음 은박지에 꽁꽁 싼 체리씨 여섯 개를 내밀며 돈이 모자랄까 걱정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대목은 가겟집 할아버지가 아이를 안심시키려 오히려 돈이 남는다고 페니를 거슬러 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정경이 상상되자 소복이 모아놓은 체리씨가 더 귀엽고 이쁘지 뭡니까.
송홧가루 날리는 숲에선 뻐꾸기 소리 한가롭고 연보라 오동꽃 아삼삼하게 피어나는 마당가.
감나무 아래 허옇게 떨어진 감꽃 주워 조르름 긴 꽃목걸이 만들던 오래전 유년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재넘어 보리밭 눗누래지며 보리 이삭들이 구수하게 여물어가는 오뉴월 이맘때쯤일 겁니다.
외갓집 뒤란 굴뚝가에 서있던 아담스러운 물앵두나무는 온통 홍보석으로 치장한 것 같았지요.
자잔한 연분홍 꽃이 피고 난 뒤 얼마쯤 잊고 지내다 보면 어느 결에 앵두 볼 저 혼자 붉어져 갔는데요.
앵두나무 키가 별로 크지 않아 어린 나도 따먹을 수 있었지만 앵두 잎 여기저기 지독하게 따가운 쐐기가 꼼틀거려 엄두를 못 냈지요.
그러면 외숙모는 얼른 바가지를 들고 와 앵두를 그들먹하게 따서는 씻어주셨어요.
이끼 하늘거리던 샘터, 물꼬 따라 무리 지어 노닐던 피라미, 모내기 끝낸 푸른 논배미엔 새하얀 황새가 긴 목 쳐들고 우렁이를 삼키는 중이었고......
무논에서 꼬물대는 징그런 거머리조차, 음험하게 생긴 두꺼비조차도 그리워지는 날.
체리를 또 하나, 아득히 먼 그리움 대신 집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