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 밤 닷 되

2016

by 무량화

삭삭기 셰몰애 별헤 나난 / 구은밤 닷되를 심고이다.

그 바미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 / 유덕(有德)하신 님믈 여의와지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익힌 고려가요 <정석가> 원문 일부다.

유덕한 임과 작별 없이 태평성대에 노닐고 싶다는 아름찬 염원을 갈무리려는 건 아니다.

지난겨울, 학교 다닐 때 외운'구운 밤 닷 되'가 몇 번이나 떠올랐던 데는 까닭이 있다.

'옥토도 아닌 모래 벼랑에 구운 밤을 심어놓고 백날 천날 움트기를 기다려봤자..' 헛되더라는 실패담을 쓰게 된 전말은 이러하다.



고맙게도 캘리포니아에 겨우내 비가 내렸다.


감질나는 비가 아니라 흡족스러운 비였다.


유례없는 일이었다.

옳다구나~ 때는 이때다! 메마른 대지에 은혜로운 비, 그것도 넉넉한 강우량을 보인다니 지금이야말로 씨앗 뿌릴 적기다.

텃밭 채소 씨는 시월 말에 뿌려 이미 싹이 텄는데 또 무슨 씨앗을 심는다는 건지?


이번엔 잔디씨였다.

비 소식에 감지덕지, 부분적으로 잔디가 타 죽은 땅을 다시 고르고 손질해 잔디씨를 조르름 뿌렸다.


위쪽에다는 거름흙을 부드럽게 덮어줬다.

그간 텃밭을 가꾸며 익혀온 자신 있는 파종이라 조건만 맞으면 씨앗 발아야 당연한 거려니 했다.



잔디 씨앗 파종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햇살 완연히 순해진 가을, 날을 잡아 누렇게 말라버린 잔디부터 싹 걷어냈다.

삽질로 흙을 뒤엎은 다음 배양토를 고르게 뿌리고 흠뻑 물을 주었다.

다음날 촉촉해진 땅에다 사놓은 잔디씨를 골고루 정성껏 뿌려줬다.


큼직한 비닐포대 안에 든 씨앗 3분의 1 가량을 묻어놨다.

매일 물을 주며 싹트기를 기다렸다.


일주일... 보름..... 한 달...... 암만 기다려도 고대하던 푸른 기척은 보이질 않았다.

실패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해 보니 아무래도 바짝 메말리는 날씨라, 물이 충분치 않아서 촉을 틔우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던 중 겨울이 되고 비 소식이 들려왔다.


예보대로 홍수가 날 정도의 많은 비가 내렸다.


흔감스런 단비였다.

웬 떡이야! 싶게 지심 깊이까지 물기 스민 잔디밭에 다시 씨를 뿌렸다.


결과를 기다렸으나 여전히 감감무소식.

기상예보는 연달아 또 비가 온다고 했다.


그것도 장마철처럼 한동안 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얼씨구나~바로 지금이야! 삼세번이라 했으니 설마 이번에야 틀림없겠지.


성공을 확신하며 쾌재 부를 날을 기다렸다.

그 한편엔 제비뽑기하듯이 우연한 행운을 바라며 요행을 기대하는 마음까지 고개를 쳐들었다.

밤마다 봄비 같은 보슬비가 소리 없이 내렸고 한낮 햇살은 따사로웠으니 발아에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일기였다.

그럼에도 잔디씨는 종무소식, 내내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나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최적의 조건에서도 발아가 안된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아무리 요모조모 짚어봐도 모를 일이었다.

사용법이 틀렸나 싶어 씨앗 포대 뒷면을 찬찬히 읽어내리며 재확인해봤다.


잘못된 점은 없었다.

씨앗 한 포대를 세 차례로 나누어, 끝에는 탈탈 털어 몽땅 뿌렸건만 결국 잔디 한 포기 구경 못했다.

실패로 끝난 까닭은 해묵은 씨거나 함량 미달의 엉터리 불량 종묘에 있으리라는 추측뿐, 하릴없이 그냥 손을 씻고 말았다.

수고한 보람 없이 올해도 앞뒤 잔디밭은, 볼품은커녕 추레한 잡초밭 되어 '황성 옛 터'나 들려줄 수준이다.



재작년 여름이 시작될 즈음부터 심한 가뭄으로 급수 제한 소리가 들려왔다.

뛰어난 치수정책에도 불구하고 캘리는 메가 시티로 커갈수록 물 수요 증가에 따른 물 부족 사태에 시달려왔다.

태생적으로도 사막에 선 도시인만치 만성화된 물 부족 지역이긴 하지만, 엎친 데 덮친다고 가뭄의 장기화까지 겹쳤다.

가뭄 해결방안은 뚜렷하게 나온 게 없는데 반해, 원인은 학자마다 제각기 짚어내 학설만 무성하게 쏟아져 나왔다.

기후변화 때문이라느니, 지구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아서 그렇다느니, 위기감을 부채질하듯 한마디씩 보탰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건 휘트니나 비숍을 오가며 본, 바짝 말라붙은 채 먼지만 날리는 오웬스 밸리 강줄기를 통해 진작 절감했다.



호수마다 바닥 가까이 내려간 저수량을 보인 사진들을 클로즈업시키며 시 수도국이 절수를 당부하더니 후엔 주당국도 나섰다.

기상관측 사상 역대 최저의 강수량에다 연평균 온도가 연일 최고점을 찍으면서 강제 절수령이 내려졌다.

잔디에 주 2회 이상 물 주는 것까지 제한당하자 많은 가정이 잔디밭 유지를 접어버렸다.

그 당시 정원의 잔디를 걷어내고 돌을 깔거나 인조잔디로 대체하는데 따른 리베이트를 시에서 제공해 주기도 했다.

허나 그 정도 대책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것은, 실제 캘리포니아 물의 과반수 이상이 사막을 농지로 활용하는데 따른 농업용수에 들어가기 때문.

녹색 황금이라는 과일과 채소류를 생산해 내는 엄청난 규모의 농산물 산지를 끼고 있는 캘리포니아다.

그해 샌프란을 가다 목도한 대로 대단지 농장의 아몬드나무, 오렌지나무가 경작을 포기한 채 베어지거나 누렇게 고사해 갔다.

아무래도 상승하는 물값 대비, 타산이 맞지 않아서 포기할 터였다.


아무튼 그해 우리도 고분고분 시 정책에 부응, 매일 잔디밭을 적셔주던 스프링클러 가동을 중단시켰다.

대신 한낮 땡볕이 기록적으로 100도 넘게 올라가는 날 저녁이면 호스로 물을 뿌려줬다.

그래봤자 그쯤 물기는 새 발의 피, 언 발에 오줌 누기 같았다.

사람도 한낮엔 밖에 나가 일분을 서있기 힘든데, 연약한 식물들이 쨍쨍 내리쬐는 불볕을 맨몸으로 견뎌내기란 역부족이리라.

그 여파로 탐스러운 장미 포기가 어느 결에 시들어버렸고 사이프러스 나무도 황갈색으로 말라갔다.

잔디 역시 누렇게 변했다.


강인한 야생성으로 뿌리야 살아있겠지 믿고 싶었지만, 이미 인위적인 보살핌에 길들여진 잔디였다.

이듬해 봄이 되어도 잔디밭은 깨어나지 않아 기계충 걸린 머리처럼 군데군데 맨송한 땅바닥을 드러냈다.



어느 날, 같은 성씨란 인연으로 친분을 튼 부부를 점심에 초대한 적이 있다.

미국인인 그 집 남편이 심란스러운 표정으로 뜰을 보더니 도저히 간과할 수 없다는 듯 잔디 관리에 대한 화제를 자꾸 꺼냈다.

그는 자신의 이웃인 필리피노 가정이 잔디를 돌보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면서 불편한 기색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오지랖이 아니라 솔직한 미국인 성격상, 그것도 퇴근만 하면 뜰에 엎드려 잔디에 공을 들인다는 남자다.

그런 사람답게 남의 집 일일망정 황폐해진 잔디밭 꼬라지를 그냥 묵과할 수가 없었던 모양.

잡초가 멋대로 자라 수풀 이룬 잔디밭을 주말에 자신이 와서 정리해 주겠노라 했다.

손사래를 치는 내 등이 후끈해지며 창피하기도 했지만 내심 충격이 적잖았다.

아내가 눈치를 주자 그는 일단 부분적인 파종이라도 해보라는 조언을 남기고 돌아갔다.



한인들 경우, 가관인 잔디밭을 보고도 속으로야 혀를 찰지언정 내색을 안 한다.


아주 절친이 아니라면 당연히 바른말도 못 한다.

무참해질 상대방을 고려해 자존심 상하는 표현은 되도록 조심하는 것이 타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우리다.

어쨌든 그담부터 뜨락 잔디밭이, 퇴락한 채 버려진 황성옛터처럼 형편없이 청승맞아 보이며 그 스산함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날의 자극적인 충격 덕에 곧바로 홈 데포에 가서 잔디 씨앗 포대를 싣고 왔음은 물론이다.

잔디밭을 처음대로 똑 고르고 푸르게 복원시키고야 말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서.

그러나 '구운 밤 닷 되'를 심어놓고 움트기를 속절없이 기다렸더라는, 생밤이라면 아무렇게나 던져놨어도 싹이 돋을 최상의 호기를 놓치고만
안타까운 실패 사연을 지금은 웃으며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아래 지도상으로는 사실상 이제 '가뭄 적색경보'가 해제되며 캘리포니아 최악의 가뭄 사태는 끝났다.

하지만 아직도 메말라 있는 지하수 현황으로 물 부족 현상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학계 진단이다.

너무도 뻔해서 식상할 정도인 자연보호 구호 같지만, 실없는 실패담의 마무리로 한마디 추가한다.

'나부터' 후손에게 잠시 빌려 쓰는 이 땅의 자연환경, 비록 물 한 방울일지라도 아끼는 일 게을리하지 말기를.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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