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일찍 찾은 익선동.
다섯 번 놀랬다.
첨단도시 서울 안에 비좁기 짝이 없는 옹색진 골목들이 이리 꼬불탕 나있다니..
고층 빌딩 숲이 된 수도 한복판에 낡디 낡아서 허름하다 못해 누추한 집들이 이토록 많다니..
바로 곁의 종묘, 인사동은 알아도 핫 프레이스로 뜨기 전까지는 거의 존재감이 없던 동네였다니..
분명 길 잘못 들었다며 이마 찌푸리고 서둘러 나올 거 같은 지역을 일부러 찾아들게 만들다니...
깔끔하고 세련된 현대적 감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이 동네가 다 서울의 명소라니..
그것도 변두리 달동네가 아닌 버젓한 사대문 안이다.
사라져 가는 옛 것에 대한 향수로 잠깐 일고 있는 복고풍의 물결인가.
몇 해 전 겨울, 서울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하러 온 아들이 엄마가 좋아할 만한 곳이라 찜해놨다는 곳.
스케줄 막간을 이용해 같이 둘러보자고 해서 언니와 조카랑 찾게 된 익선동이다.
나들이 나오기엔 아직 이른 정오도 안된 시각이건만 삼삼오오 찾아드는 인파로 서로 어깨 부딪칠 정도로 비좁은 골목길이 그새 붐비기 시작했다.
어느 식당과 빵집에는 순번표를 빼들고 문 앞에서 대기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한국에서 근자 남녀노소 가릴거 없이 한창 뜨고 있는 트렌드인 패딩 재킷들이 나직나직 이마 맞댄 한옥골목을 속살대며 누비고 다녔다.
1900년대 초, 당시를 재연하는 영화라도 찍듯, 롱 코트에 숄 두르고 한갓지게 골목 거니는 신여성 차림이 눈길 끌게 하기에 이 촌사람 한참을 멈칫거리기도 했다.
조선조 마지막 옹주가 착용했던 망사 장식 모자에 허리 잘록한 스커트 차림의 고풍스러운 치장을 한 여인들이 인력거 대신 광고 촬영 스텝들에 싸여 골목에 들어서는 이색지가 익선동이었다.
의열단 영화나 찍으면 모를까 여간해선 만나기 어려운 근세 신여성의 외출 현장이 예사로이 눈에 띄는, 그래서 흥미로운 익선동.
연탄 리어카나 겨우 드나들 정도로 비좁은 길이다,
얼기설기 어지러운 전선줄이 늘어져 있고 보일러 시설물이 그대로 드러나보였다.
다듬는다고 다듬었어도 여전히 우중충한 골목길에 초라히 엎딘 기와집들.
일부는 보수공사 하느라 흙벽 헐어 가려놓은 차단막 너풀대기도 했다.
얼마 후면 보나 마나 그 집들도 마술 부리듯 변신해 있을 터였다.
허름하니 남루한 한옥들을 고쳐 개성 있는 상호에 인테리어도 멋스럽게.
단, 익선동의 느낌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용히 스며들 듯 거기 자리할 것.
어디까지나 한옥의 명맥을 그대로 살려야 하므로 외벽을 허물거나 골목을 확장해서도 안 된다는
그 골목만의 암묵적 규칙은 지켜져야 한다.
날아갈 듯한 추녀선을 문 양반가가 밀집한 북촌,
중인들의 거주지였던 서촌에 이어 세 번째 한옥마을로 지정된 익선동 일대는 서민들의 삶터답게 집 규모가 작고 오밀조밀했다.
1920년 일제강점기.
근대식 문물이 들어오며 초가마을 익선동에도 신식 조류가 밀려들어왔다.
땅부자로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독립운동 후원가였던 정세권은 일본식 건물 대신 고집스레 한옥들로 익선동을 채웠다.
그렇게 다다익선 익선동 백 년 역사가 시작되었다.
서울 종로구 정중앙에 위치한 사대문 안의 핵심지역이 익선동이다.
한옥마을로 지정된 익선동 165번지 일대는 원래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사저인 '누동궁'이 있던 자리였다.
경술국치 이후 조선이 망하자 전계대원군의 현손이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일대 땅을 매각했다.
일제의 민족말설정책에 강력히 맞서면서 독립운동가들에 군자금을 대던 정세권은 이 땅에 서민들을 위한 작은 평수의 개량한옥을 촘촘히 지었다.
당시 이 일대는 구한말 이후 신흥 세도가와 왜넘들에게 기생하는 화류계 종사자들이 주로 살아 근처에 한복집과 고깃집이 즐비했다고 한다.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다,
나날이 낡아가던 마을에 몇 년 전부터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본래의 한옥을 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리모델링으로 현대 감각에 맞게 꾸민 샵들이 들어선 것.
도심 안이니 당연히 재개발되리라 여겨 언젠가는 허물 거라서 거의 집수리를 하지 않았기에 그 덕으로 고스란히 옛 모습 그대로 남을 수 있게 된 익선동이다.
실제로 이 동네는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 있었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재개발로 사라지고 말 처지였다.
헌데 몇 해를 표류하던 재개발 추진 위원회가 계획을 철회하면서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서서히 상권이 형성되자 주체적으로 햡의체를 만들어, 높이 제한은 물론 한옥을 변조하거나 마구잡이식 개발을 지양하기로 의결했다,
이처럼 원형보존안을 택하므로 한옥마을 중에서도 가장 서민적인 고유의 한옥 모습을 오롯이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는 술도 가벼이 즐기는 정도껏만, 따라서 소주같이 높은 도수의 술은 판매하지 않는다.
주민들 삶의 질을 최대한 배려해 음악은 물론 소음을 줄이고 저녁에는 불빛의 조도를 반으로 낮췄다.
지하철 종로3가역 6번 출구 앞의 익선동 안내도를 반드시 눈여겨본 다음 골목 동네 문화체험에 들어가길 권한다.
눈부신 번영의 시대조차 슬쩍 비껴간 서울의 오지.
소리소문 없이 스러져갈 뻔한 익선동의 화려한 부활이 다행스럽기만 했다.
벽화마을로 되살아난 달동네와는 또 다른 센스 있는 컨셉이 대박을 치며 뉴트로 신드롬이 확산돼 오늘의 익선동이 탄생한 셈.
아기자기 감성적인 복고풍이 신세대 기호에 적중했다니 신통스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