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칠십리 따라 푸른 밤 산책

by 무량화

어제오늘 삼십 도를 흘쩍 웃도는 무더운 날씨다.

태풍이 올라온다더니 바람도 없이 습도까지 높아 후덥지근하다.

약간 선들해진 일곱 시 무렵 저녁 산책을 나섰다.

한라산 인근 노을빛 은근스럽기에 허니문 하우스에서 낙조도 볼 겸 칼호텔 쪽으로 갔다.

허니문 하우스에 들렀다 올레길 6코스로 열려있는 칼호텔 정원에서 운동을 할 생각이었다.


이박사 별장

폭염 식히려 석양 내리며 노을빛 어리인 한라산.


바삐 내닫는 구름장마다 화려한 오렌지빛 황혼에 젖어들었다.


대숲에 가려진 조촐한 과거 이승만 대통령 별장 자리는 어느새 어둑스레하다.


회랑으로 호텔과 이어진 허니문하우스는 옛 파라다이스 호텔의 전망 좋은 연회장이었다는데 이미 여섯 시 반에 영업종료.

기대 이상으로 고운 노을 어리인 허니문하우스 뜰에서 오래 거닐다가 되돌아 나왔다.

칼호텔로 내려가려면 검은여를 지나야 하는데 해안 할퀴어대는 파도가 하도 기세등등해서다.



거문여 해암에 달려와 하얗게 부서지며 으르렁대는 파도소리.

도저히 벼랑길 내려가 바닷가 가까이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신 자구리해안까지 걷기로 했다.

가로등 불빛 환한 서귀포 칠십리 길 따라 성큼성큼 걸어갔다.

밤이라서인지 별로 바람기 없어도 시원한 것이 기분 절로 쾌적해졌다.

저 아래 검은 바다엔 동그마니 섶섬이 떠있었고 방파제 조명 환한 문섬도 수평선에 고깃배 거느리고 나타났다.


문섬의 한자 蚊은 '모기 문'으로, 유난히 모기가 많아 '모기섬'이라는 썰도 있으나 기실은 문섬 인근에 아름다운 산호가 많아 일본인이 섬사람들 접근을 막고자 퍼트린 낭설에서 유래했다고도.


집어등 환히 켠 고깃배가 문섬 좌우 수평선에 점점이 떠있다.

정방폭포 주차장과 왈종미술관을 지나 서복전시관 스친 다음 칠십리음식특화거리로 내려갔다.

자구리 해안가. 솔공원으로 주민들이 열대야 피해 야외 나와 해풍 쐬면서 노닐고 있다.


태산을 등에 짊어진 사슴처럼 저마다 등짐 지고 걷는 사막길 조각품은 볼 적마다 묵지그레해진다.


공원 한 바퀴 돈 다음 이중섭거리로 올라와 식당과 카페 불빛 휘황한 거리를 스친 다음 올레시장에 이르렀다.

올레시장 지나면 편안한 쉼자리가 기다린다.

두 시간 남짓 걷고 나니 아홉 시, 이제 비로소 정신이 쇄락해졌다.


오늘 밤도 숙면은 예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