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섬 문주란꽃 피었디?

by 무량화


정방폭포 가는 길가에 무리 져 피어난 문주란 흰 꽃을 보았다.

그렇다면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을 가 봐야겠군.

'난들여'라고도 불리는 토끼섬은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국내 유일의 문주란 자생지다.

군락 이룬 문주란이 활짝 피어나면 섬 자체가 새하얀 토끼처럼 보인대서 이름 지어진 토끼섬.

열대식물인 문주란 씨앗이 해류 타고 표류하다가 이 섬에 뿌리내린 지 꽤 오랜듯.

칠월이면 섬 전체에 백색 꽃 피어나 향 내뿜는데, 천연기념물 19호로 지정됐다.



모처럼 하늘도 푸르러 상큼한 기분으로 토끼섬 향해 출발했다.

남원쯤 달리는데 멀쩡하던 날씨가 흐려지는가 싶더니만 표선에 이르자 해무 뿌옇게 밀려들었다.

비는 안 오니 그래도 괜찮았다.

일출봉도 안개에 숨어버리고 종달리 지미오름도 발치만 겨우 드러났다.

하도리 해녀마을에서 하차해 토끼섬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 따라 걸었다.

안갯속에 고즈넉이 안긴 마을 벗어나 바닷가로 갈수록 뭍 쪽으로 빠르게 스며드는 해무.



굴동포구에 이르자 동남 방향으로 희미하게 토끼섬이 보였다.

바닷가에는 토끼섬을 배경으로 한 포토존도 마련돼 있었다.


해녀마을 하도리에서 바다로 나가던 기나긴 물길도 차가 드나들 수 있게끔 시멘트로 잘 닦여있었다.


싱싱한 선도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므로 어획물의 신속한 운송로는 필요할 터.


그러나 해안을 시멘트로 포장하면서 따르게 되는 환경훼손 문제도 이제는 염두에 두어야 할 때.

올레길 21코스 따라 환해장성 터, 각시당집, 해녀불턱, 멜튼개 등이 연달아 나타났다.


말이 각시당이지 바람의 신인 영등할망에게 해녀와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 무탈하게 어로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는 당집이다.


동시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액막이굿을 하던 장소였다 한다.


이 신당에서 매년 음력 2월 13일 영등맞이 굿을 올린다고 했다.


해녀불턱은 동절기에는 불을 피워 몸을 녹이는 곳이다.


또한 물질에 대한 기술을 배우거나 정보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물론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장소였으나 고무옷을 사용하면서부터는 역할이 사라져 버렸다고.


해녀불턱 옆, 제때 수거하지 않은 성게 껍질 수북하게 싸인 채 썩어가니 몰려드는 파리 떼 심했다.

토끼섬 가까이에 있는 멜튼개는 빌레(너럭바위)와 바닷돌을 이용한 갯담(원담)이다.

밀물 때 들어온 멜(멸치) 떼를 바위 담 안에 가두는 돌 그물 장치로, 제주도만의 독특한 어로 유적 터다.



지척거리에 누워있으나 자욱한 해무로 저승이듯 아득한 토끼섬.

낚시꾼과 스노클링 즐기는 팀은 이쪽 해안에, 조를 짜서 토끼섬으로 향하고 있는 팀도 있었다.

가슴께까지 차는 물살을 헤쳐나가더니 모래사장 가까이 갈수록 점점 얕아지는 수심.

그들은 군락 이룬 문주란 잎새라도 만져보고 싶은 걸까.

봉오리는커녕 꽃대조차 올라오지 않은 문주란.

문주란 꽃 대신 인근 모래비탈이나 현무암 바위틈에 자생하는 염생식물인 순비기 덩굴만 꽃 함빡 피어났다.

애월 쪽 해안에선 벌써 사윈 연보랏빛 그 꽃이 여기선 지금 한창이었다.

숨비소리처럼 애연한 순비기 꽃이나 잎으로 귀를 막고 잠수하면 물멀미를 덜 한다고 알려진 식물.

또한 순비기 잎 뜯어 수경을 닦으면 물속이 환히 보인다니 해녀들의 친구이기도 한 순비기다.

순비기 열매를 베갯속에 넣어두면 두통이 사라져 숙면을 취할 수도 있다 하였다.


올 가을엔 순비기 열매를 구하고자 하도리나 무릉리 해변가를 찾아봐야겠다.


알쓸잡학 궁글리며 토끼섬 막연히 오래 바라보다가 하도리를 뒤로했다.


꾸역꾸역 밀려드는 해무에 눅진히 젖은 채 달리느라 속도를 못 내는 버스.


그 덕에 성산 일출봉을 지나면서 뜻밖의 신비경을 접했다.


시시각각 일출봉을 어루만지듯 놀라운 묘기를 보이는 해무.


안개처럼 구름처럼 스쳐가며 스며들며 농무가 펼치는 황홀한 유희야말로 놀라운 선물이었다.

표선에선 안개비 순하게 내리더니 위미마을 이르자 장대비가 좍좍 쏟아졌다.


정녕 변화무쌍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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