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점은 달랐어도 종착지는 항상 대평마을 난드르였다.
어쩌면 너른 들판 난드르라는 이름에 이끌려서였던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럭저럭 사흘거리로 난드르 길을 걸어 다녔다.
걸으면서, 아암! 차로 이동했더라면 이리 골골이 알뜰살뜰 둘러볼 수 있겠나 혼자 거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맞다. 매사엔 장단점이 있고 따라서 응달과 양지 양면이 있다.
차로 기동성 있게 움직이면 속도감은 뛰어나지만 길섶 앉은뱅이 제비꽃 양지꽃과 조우하기 쉽잖으며 바람결에 묻어오는 결결이 다른 꽃내음도 놓친다.
반면 찬찬히 구경하는 것까진 좋으나 기능적 측면에서는 영 쳐지고 여러 제약이 따르며 시간이 한결 더 들기에 아무나 하기도 어렵다.
일단 걷는 걸 즐기지 않으면 발상 자체가 불가능, 은퇴 후 심신 여유로운 입장이 아니라면 그도 쉽지 않다.
다행히 아직은 다리 튼튼한 덕분에 오늘은 이 길로 가봤으니 다음은 저 길로, 이런 식으로 오만데 휘젓고 다녔다.
사흘째 대평마을을 찾았다.
그물로 촘촘히 고기 몰듯 하면서 구석구석 어지간히도 쏘댕겼다.
고산자 선생이 대동여지도를 만들며 꿈꿨던 고귀한 정신과 의지는커녕 가벼운 즐길거리나 찾아다니는 주제이면서.
하예마을에서 군산을 바라본 순간 흥미가 모락모락 일어서 이튿날은 산에 올랐다.
정상에서 진지동굴을 보고 그 옆엣 산도 마찬가지로 동굴을 뚫어놨다는 말을 듣자 서슴없이 월라봉으로 향했다.
원래 취향이 역사유적지 탐방에 있던 터라 인근 고인돌을 찾아보게 되었고 안덕계곡 그늘집 터도 더듬었다.
그렇게 박수기정을 찾고 당포연대와 환해장성에 눈도장 찍는 일, 그건 단지 호기심의 발로였다.
마치 구리알같이 모아둔 재산 긁어모아 제주에다 땅이라도 사두려고 육지인 들락거리듯 한 자신.
오늘은 산방산과 박수기정에 시나브로 내리는 노을빛에 취했던 하루였다.
대개 하늘빛 선명하게 푸르른 날은 바다 쪽을 찾아다니듯 사흘 내리 청명한 날씨였다.
바람 잠잠한 바다는 꼭 얼음 두터이 언 호수처럼 고요했다.
어쩌다 귀항하는 배나 있어야 하얀 물길이 일어설 뿐 거울 같은 수면.
구름 한점 없이 탁 트인 하늘, 해서 낙조가 그리 멋스럽진 않을 수 있다.
약간의 부드러운 구름층이 받쳐줄 때 일몰 순간은 한층 극적이기 마련이니까.
서서히 바다 쪽으로 스며들듯 빠져들어가는 태양.
은은하지만 황홀한 장엄낙조다.
이윽고 누리에 번지는 노을.
개와 늑대의 시간까지 오직 침묵 속에서 고즈넉이 멈춰서 있었다.
'수평선이 수평선을 구경하지 않듯이
통통배가 통통배를 구경하지 않듯이
일몰이 일몰을 구경하지 않듯이
별빛이 별빛을 구경하지 않듯이 또한
그 무엇도 다른 무엇을 구경하지 않듯이... '
문인수의 시 <2박 3일의 섬>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