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복 신사와의 교류기

by 무량화

물 찬 제비 같다는 말이 있는 데요.

몸매가 매우 날렵하니 태도 맵씨 있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이지요.

행여 제비족부터 상상한다거나 꽃제비 같은 걸 언뜻 떠올린다면 길조이자 익조에 대한 모독 아닐까요.

제비는 겨우 16그램 나가는 작은 새이지요.

따뜻한 강남 어딘가에서 월동을 하고는 봄에 돌아오는 철새라 신춘의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상징으로 반긴 길조가 제비거든요.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어릴 적 고무줄 놀이하며 불렀던 노랫말처럼요.

예전엔 자기 집 처마 밑에 제비가 둥지를 틀면요.

길조가 찾아왔으니 복이 들어온다고 얼마나 반겼는지 몰라요.

지난해 우리집에 깃들었던 제비 가족 중 하나가 돌아왔나 싶어 말도 걸어보며 정겨이 올려다보던 제비집.

그땐 새똥 지저분하다고 홀대받기는커녕 새집 아래 받침대 만들어 주며 보호해 준 제비였어요.

제비는 우리 곁에서 가까이 지낸 새로, 사람들 훈기가 스며든 민가에서만 보금자리 틀고 번식을 했는데요.

빈집이 된 폐가에 둥지 짓는 제비는 절대 없었어요.

하나 더, 왜 제비가 익조로 분류되는 걸까요.

제비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곤충이나 벌레를 먹이 삼아 살아가요.

새끼를 거두는 제비 부부를 보면 동터오는 새벽부터 하루 종일 들락날락 먹이를 바삐 물어 나르더라고요.

하루에 수백 마리의 모기 파리 날벌레 등을 잡아먹으니 자연 방제자 노릇을 하는 이로운 새라 익조인 거지요.

그 무엇보다도 착한 흥부네를 통해 권선징악을 가르친 제비를 소환해 보세요.

제비는 그래서 행운의 상징이 된 거잖아요.



올핸 징조가 좋아 제주살이 중 또 다른 행운이 생길 모양이에요.

우연히 길조라는 제비와 얼마간 특별하고도 찰진 인연의 시간을 가졌거든요.

그 덕에 칠월 내내 까만 연미복에 하얀 턱시도 차림의 신사 가족들교감을 나눴답니다.

모든 시작이 그러하듯 아주 사소한 우연에서 우리의 교류는 비롯되었는데요.

대표적인 환경지표종이라는 제비가 얼마 전부터 동네에서 자주 눈에 띄더라고요.

지표면에 닿을 듯 바짝 낮게 스쳐 지나는 제비 무리를 보자마자 대뜸 옛날 생각이 나더군요.

장마에 대비하려고 활발히 움직이는 벌레나 곤충들을 잡으려, 제비가 낮게 나는 거라고 들었던 오래전 기억도 떠올랐고요

모내기 마친 논바닥 위로 혹은 감자 캐는 밭고랑 따라가면서 획 스쳐 지나며 날벌레나 잠자리를 채가던 제비.

돌봐야 할 새끼들이 입 벌리고 기다리는 데다 장마나 태풍이 오기 전 비축도 철저히 해둬야 할 테니까요.

그러자니 부지런히 먹잇감을 잡으려고 제비가 낮게 비행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던 거였어요.



환경변화나 이상기후 때문일까요.

삼월 삼짇날 강남에서 돌아온다는 제비를 올해 저는 7월에야 뒤늦게 만났네요.

시절인연이 늦게사 닿아 내 눈에 띈 것이 칠월이었는지 모르긴 하지만요.

제비는 번식기가 두 번이라니 애초엔 제비에 대해 태무심했던 터여서 모르고 지나쳤지 싶기도 해요.

아무튼 7월 5일, 일본대지진설에 잔뜩 겁을 먹고 비자림에 가서 온종일 죽치고 있다가 밤이 돼 세화에서 차를 기다렸는데요.

그때 우연히 제비 무리를 만났던 겁니다.

정류장 근처 땅바닥에 새똥이 하얗게 깔렸길래 머리 위를 쳐다봤더니 가로수와 전깃줄에 제비 떼가 나란히 앉아있더라고요.

아하, 그러고 보면 지난해 해비치 해수욕장 여름축제를 보고 밤늦게 오다가 표선 읍내 사거리에서도 그런 풍경을 본 적이 있었어요.

당시 보도에 의하면 제비들이 먼먼 남쪽으로 가기 위해 남해바다 건너와, 표선에서 5만여 마리나 모여서 체력보충도 하면서 쉬어 가는 중간 기착지로 삼은 곳이 제주래요.

가로수인 벚나무와 전깃줄에 빼곡이 앉아 제비꽃 만개시키는 새들 땜에 지역주민들이 골머리를 앓는다는 당시 신문기사도 봤지요.

포도에 새하얗게 깔린 제비똥으로 피해 속출, 오죽하면 제비 떼 쫓아내려 나무가지를 마구 흔들기도 한다더군요.



아마 그때부터 제비가 돌아간다는 따뜻한 강남땅이 어

딜까? 은근 궁금증이 생기며 호기심이 동했지 싶어요.

맞아요. 궁금증과 호기심이 모락모락 일더라고요.

하긴 이 나이에도 호기심 잃지 않고 산다는 건 얼마나 한 축복인지요.

막연히 중국 강남지방 어드메일거라 여겼던 그곳 지명이 정확히 어딜까?

뭐든 관심 갖는 만큼 보이고 또 아는 만큼 볼 수 있다지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고 했잖아요.

'지즉위진간(知則爲眞看)'이란 말대로, 알아야 참을 제대로 보게 된다고 했던 대로이지요.

마음속에 지극히 담아두면 영이 연결해 준다더니 어느 날 거처에서 가까운 서귀초 학교 앞 주차장에서 제비집을 발견했어요.

밤중에 세화 버스정거장에서 제비 떼를 본 날로부터 일주 정도 지났을 시점이었어요.

길을 걷다가 문득 제제재~ 시끄러이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주차장 안을 기웃거리다 흙둥지를 보게 됐지요.

주차장 코너에 지은 제비집, 흙을 물어다 제비 부부가 지은 둥지와는 근 칠십 년 만의 조우였습니다.

세상에나! 도심에서 제비집을 다 만나다니.....

예전처럼 초가집이 있어야 처마나 서까래에 의지해 집을 지을 거라 여겨 둥지를 찾아볼 생각도 안 했어요.

쌀쌀맞은 도심, 냉혹한 사각의 콘크리트 건물 어디에 둥지를 틀 수 있겠나 싶었거든요.

무릇 모든 생명체는 현실에 적응해 제각금 살아가게 마련인가 봅니다.

어느새 보금자리에 알도 낳아 속닥하니 품어서 솜털 부스스한 새끼가 네 마리나.

어미새가 먹이를 물고 나타나면 아기새는 저마다 일제히 노란 부리 커다랗게 벌리고 요란법석이었어요.

새끼새를 처음 봤을 때는 부화된 지 며칠 밖에 안 된 듯 부리만 눈에 띄고 생김새는 아주 꺼벙했더랬지요.

애기 제비는 시간당 근 서른 개의 곤충이나 벌레를 먹어야 한다더니 제비 부부는 교대로 먹이를 물어 나르며 연신 나래짓하기 바빴어요.

먹이만 나르나요, 새끼들 배설물도 입으로 물어다 멀리 내다 버려야 했으니까요.



어딘가 꺼칠한 제비는 엄마 제비, 매끈하니 꼬리 긴 쪽이 아빠 제비랍니다.

어미새는 보통 네다섯 개의 알을 품고 보름 정도 지나야 부화가 되는데요.

처음엔 ET 보다 더 괴이쩍게 생긴, 털도 없이 발갛게 꼼지락거리던 새끼가 먹이를 받아먹으며 차츰 제비 꼴을 갖춰가는데요,

솜털에 싸인채 어설프기만 하던 처음과 달리 하루 다르게 깃털 매끈해지며 검은 윤기가 돌더군요.

그러자니 제비 부부 얼마나 바쁘겠어요.

조류학자에 따르면 보통 하루 370회 정도를 드나들며 먹이를 물어다 새끼를 보살펴야 한다더군요.

매일 800킬로미터를 날아다니며 벌레를 잡아다 새끼를 먹이려면 제비는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되겠더라고요.

그러니 낚아채온 벌레를 잽싸게 새끼 입에 넣어주고는 잠시도 앉아있을 없이 후딱 날아가지요.

비가 잦은 철인 요즘이라 더 바빠진 제비 부부.

장마에 대비하려고 활발히 움직이는 개미나 곤충들을 잡으려 제비는 낮게 비행을 하며 먹잇감을 채왔어요.



7월 중순이 지나 20일 무렵, 다시 와보니 새끼들이 날개깃을 연신 퍼덕대더니만 그 이튿날부터는 나는 연습을 하느라 새집 아래 받침대로 내려오거나 벽에 붙어 수선을 피우더라고요.

이때 훈련은 제비 부부가 교대로 시키고 있었는데요.

practice!

practice!!

practice!!!

새끼들 앞에서 곤두박질치듯 하강했다가 날아다니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나래짓 하도록 독려하더군요.

그 와중에도 짬짬이 곤충이나 벌레 물어다 먹이면서요.

어언 새끼 제비들도 날갯짓 익혀 제힘으로 먹이 헌팅하는 기술도 배우면서 서서히 둥지 떠날 준비를 마치게 된답니다.

7월 22일 아침에 와보니 정말 거짓말처럼 깜쪽같이 제비 둥지가 비어있더군요.

마치, 애들 다 외지로 대학 보내고 남겨져 빈둥지증후군을 앓는 오십 대 엄마처럼 괜히 허전해지는 심사.

한편 새집 향해 성원의 박수라도 쳐주고 싶더라고요.

그처럼 새끼가 부화한 지 이십일이 지나면 제비 가족은 비좁은 둥지를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거라네요.


텅 빈 둥지

제비 월동지가 어디인지를 추적하는 다큐 동영상을 보게 됐어요.

아주 작은 0.45그램의 위치추적기(지오로케이터)를 달아 날려 보낸 제비를 통해 제비의 이동경로가 밝혀졌는데요.

제주도는 제비가 남녘 뭍에서 바다 건너 먼먼 월동지로 떠나기 전 한 달 정도 머무는 중간 기착지이고요.

두 차례의 번식을 통해 가족을 늘리면서 이동준비 겸해서 7월에서 8월 초 사이는 제주도에 머문다네요.

체력 보충이 되면 태평양을 건너 일본 오키나와 섬들과 필리핀 루손 섬들을 지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까지 날아간답니다.

종착지에 닿는 건, 11월 말에서 12월 초 사이로 거기서 2월까지 월동을 하며 머문다네요.

그리고 한국에 봄이 오는 3월이면 다시 행로 되짚어 북상을 해 우리나라로 찾아드는 제비.

하루 평균 600킬로미터를 날아, 월동지와 번식지를 왕복한 거리는 1만 4천 킬로미터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고작 16그램 나가는 작디작은 새가 1만 4천 킬로미터 여정을 비행한다니요.

그처럼 어렵게 이 땅을 찾아오는 제비, 이젠 애정 어린 마음으로 환대해 줘야 마땅하겠지요.

반갑고 고맙고 기특해, 응원한다! 연미복 신사 제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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