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대단한 연순 씨

by 무량화

연순씨는 언니 친구다.

중학 동창이나 서울에서 같이 대학을 다닌 가까운 친구 사이다.

현재 그녀는 1인가구, 함께 사는 가족이 없는 말하자면 독거노인이다.

그러나 연순씨는 놀랍도록 자기 관리가 철저한 멋진 노인이다.

지금도 칠첩반상 골고루 식탁에 올려 항시 자기를 대접한다.

여든 넘은 나이라 상노인 같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아직도 매일 수영장에 다니고 뒷산에 올라 운동을 한다.

젊어서부터 규칙적으로 다져 온 루틴들이라 일상화된 삶의 패턴일 뿐 새삼스러운 노력이 아니다.

작은 키에 곱상한 외모지만 강단진 그녀, 걷는 자세 반듯하고 의연스러워 뒤에서 보면 나이 가늠이 어렵다.



연순씨는 주사 심한 남편을 오십 줄에 떠나보내고 드넓은 집을 홀로 지키다 이젠 살림 줄여 거처도 옮겼다.

딸네와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한 그녀지만 그렇다고 딸을 귀찮게 하는 엄마는 전혀 아니다.

노인이라도 자식에게 집착 심하거나 의존하려는 나약함 자체를 수용 못하는 '놀랍도록' 강하고 독립적인 연순씨.

슬하에 딸만 둘인 연순씨, 독신인 큰딸은 미국에서 지내고 결혼한 작은 딸은 지난가을 입대한 아들이 하나.

연순씨 가계도는 이렇듯 아주 단출해 귀하디 귀한 외손자가 군대 가기 전에 시간을 맞춰 삼대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 여행은 아주 특별한 여행이었다.

그녀는 힘들기 짝이 없다고 알려진 췌장암, 그것도 두 번째 수술날짜를 받아놓은 입장이었다.

조기발견이 어렵고 예후도 좋지 않은 데다 수술을 해도 완치 확률이 낮은, 곧 생존율이 극히 적은 암의 하나가 췌장암.

첫 수술을 받을 당시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기에 친구들은 전혀 몰랐다.

항암치료받는 동안까지 연락두절 상태, 친구들은 미국 딸 집에 갔으려니 했다.

언제나 단아하게 가꾸고 다니던 그녀는 머리칼 빠져버린 모습을 아무한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터.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비밀에 부친 암수술인데 병원 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동창을 통해 소문이 번졌다.

세상 어떤 비밀도 끝까지 감춰질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녀는 자기 차 직접 운전해 퇴원을 했듯 이후에도 전과 똑같이 차를 몰고 운동하러 다녔다고 한다.

반년만에 동창모임 자리를 찾은 그녀, 굳이 친구들도 아는척하지 않았다.

다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무상심하게 대해줬다.

그 모임은 줄곧 계절별로 단체여행을 가졌던 터, 강릉으로 봄여행을 가게 됐다.

이때 가려먹어야 하는 음식문제로 연순씨는 비로소 근황을 간략히 밝히며 이해를 구했다.

누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묵연히 고개만 주억거렸다고 한다.



그렇게 이태가 지난 작년 여름 그녀는 췌장암이 재발해 다시 입원을 했고 또 수술을 받았다.


세번 째다.


수술대에 실려가면서까지 흐트러진 모습 보이지 않으려 머리에 말았던 롤 하나가 귀 옆에 남아있더라는 연순씨.

내공 단단해 강인하게 견뎌온 그녀도 반복수술에 자신감을 잃고 심신이 확연히 지쳐갔다.

재차 받게 된 항암 방사선치료로 그녀는 완전 기진맥진, 미국에 사는 딸이 와서 한 달간 머물며 간호를 했다.

지난달 언니는 동창들 넷이서 연순씨와 함께 사흘간 고향 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전히 삶에 대한 굳은 의지를 놓지 않았으나 화상 입은듯한 피부를 보자 친구들 가슴이 쩌르르했다고.

시어른께서 췌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 운명하셔서 그 지독한 고통을 곁에서 지켜본 바 있다.

평소 그리 당당하셨던 분이 참다 참다 신음이 고함으로 변해 소리 지르기 일쑤였다.

진통제로 연명하다시피 하며 신장투석까지 받다가 끝내는 돌아가셨다.


생명 받고 태어난 모든 것에 필연적으로 공평하게 다가오는 죽음, 결국 우리 모두 홀로 가는 그 길이다.


그 길 위에 세워진 연순 언니는 그러나 친한 친구에게조차 고통을 내색하거나 호소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아강도(ego strength)가 높을지라도 수시로 갉아대는 통증에 압도당하지 않고 그 언니는 놀라운 인내심으로 고통을 제어해 왔으니 생각사록 대단하다.


힘겨운 상황을 자신의 강한 의지로 정확히 인식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여 적응하는 일, 과연 아무나 가능할까.


심리적 면역력이기도 한 자아강도가 높은 연순 언니는 여태껏 잘 버텨왔듯 어떤 상태에 이를지라도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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