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왕성한 칡덩굴에 칡꽃

by 무량화


염천 이글거리는 성하.

산자락은 한창 녹음 깊어 갈매빛 수해를 이루고 있다.

대지의 왕성한 기운을 받아 하루 다르게 쭉쭉 뻗어나가는 칡덩굴은 8월의 짙푸른 산야를 더욱 건강하게 장식한다.

나무를 기어오르거나 하다못해 전선을 타고서라도 한사코 지평을 넓혀가는 칡은 한 치 빈틈도 없이 녹색의 성을 쌓아 올린다.

허공으로 이리저리 벋어 오르는 덩굴손은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휘어 감는다.

도무지 주춤거리거나 거리낌이 없다.

그렇게 나무줄기건 무엇이건 의지처 삼으면 온 산을 다 점령해 버릴 듯 영역 무섭게 확장해 나간다.

저희끼리도 얼크러설크러 져 그 기세 때로는 굼실대며 승천하는 청룡과도 같다.



요사이 들어 종종 무성한 칡덩굴에 눈길 보내지만 예전엔 칡뿌리가 관심의 주대상이었다.

두터이 쌓인 눈 녹아내리는 봄이면 산으로 나무하러 간 머슴아재에게 은근 기대하는 게 있었다.

나뭇짐 가득한 지게 한켠에 굵직한 칡뿌리나 새빨간 열매 윤나는 망개 가지가 실려오곤 했으니까.

줄기를 낫으로 쳐버리고 황토 깊이 보얗게 뻗은 뿌리 더듬어 괭이로 살살 파낸 칡뿌리.

때론 장정 팔뚝만큼 한 것도 있었고 길쭉하기가 어른 키만 한 것도 있었다.

망개열매는 달달하면서 새큼한 맛이 났고 칡뿌리는 죽죽 찢어 씹으면 단물이 흥건하게 배어 나왔다.

어릴 때 몇 차례 맛을 본 이후로 나이 들어 칡뿌리를 구경한 곳은 칡즙 판매처, 허벅지만 한 칡뿌리를 알맞게 토막 내 압축기로 짜면 갈색 물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숙취에 최고라며 90년대 한때 인기 상종가를 쳤으나 칡뿌리 대부분이 중국산이란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거품 폭삭 잦아들었다.


계란까지 인조로 만들어 유통시키는 가짜천국이라지만 산천이야 무슨 거짓을 꾸미랴만.



한방에선 칡의 뿌리인 갈근을 불면증이나 입이 마르고 건조해지는 소갈증상 치료에 쓰며 알코올 분해 촉진 효소가 있어 숙취해소에 칡즙을 이용한다.

동의보감에도 칡은 두통을 없애주고 인체에 수분을 보충해 주는 효능이 있으며 술에서 빨리 깨어나게 해 준다고 쓰여있다.

칡꽃 역시 같은 효과를 보여 음주 뒤 갈증이나 오심, 구토를 완화시켜 준다지만 요즘에야 편의점에서도 각종 숙취해소 음료를 판매한다는데 누가 역부러 칡꽃을 찾아다니랴.

사진에 담는다고 바짝 칡꽃에 다가가 향 음미해 보니 아카시아보다 연하고 은근스러운 향기에 곁들여진 달착지근한 내음이 후각을 간질인다.

그래서인지 벌떼가 분주히 잉잉거리며 꽃을 넘나 든다.

과학적인 연구 결과 칡꽃에 함유돼 있는 이소플라본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며 혈관질환 개선에 도움을 준다고 나와 있다.

특히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많이 포함돼 있어 갱년기 장애를 치료해 주며 피부에 콜라겐 생성을 활성화시킨다고 하였다.

콩의 세 배, 석류의 600배인 에스트로겐 성분이 함유돼 있다 하나 실제 칡은 시퍼러니 원기충천 힘차게 덩굴졌어도 그에 비해 꽃은 성근 편으로 그리 흔치 않았다.



칡은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다.

뿌리와 꽃은 약제로, 잎은 차 대용품으로, 성장촉진물질이 들어있어 녹용보다 낫다는 칡순으로는 장아찌까지 만든다고 한다.

이처럼 전체가 자연 건강식품으로 귀히 쓰임 받으니 탐날 법도 하지만 글쎄올시다.

워낙 지천이라 생각만 있으면 채취는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아니올시다, 저 욱욱하게 뻗어나가는 생명의 찬미가를 어찌 훼절하랴.

육이오로 황폐해지고 땔감으로 남벌해 전국의 산들이 헐벗었던 5~6십 년대, 산림녹화에 온 국민이 전력을 기울였기에 당시,

우리는 학교에서 정해준 풀씨 할당량을 채워가야 했고 송충이잡이에 동원되기도 했다.

그런 세월을 살았기에 지금의 울울창창한 산림을 보면 마치 내 산이나 되는 것처럼 대견스럽고 흐뭇한 기분이 든다.

더구나 칠팔월의 녹음방초 밀밀한 숲을 바라보노라면 그 얼마나 뿌듯한지, 거기 한몫 거드는 칡이라 더욱 미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