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바람처럼 자유로워라

El Camino de Santiago

by 무량화


얽매이는 규제 없어 한껏 자유로운 발길은 구름처럼 바람처럼 어디에도 걸림이 없다.

온전히 내 뜻대로 내 삶을 이끌어 나가며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이므로 행복은 당연.

집시족의 존재 이유가 납득된다고나 할까.

이쪽으로 가고 싶으면 이 길로 가고, 저 산 넘어가 궁금하면 그리로 가보고, 쉬고 싶으면 맘껏 쉬었다 간다.

풀꽃 보며 새소리 귀 기울이기도 하고 천천히 걷고 싶으면 느릿하게 걷고, 감당이 된다 싶으면 속도도 내본다.

아무런 간섭도 없을뿐더러 무엇이든 하기 싫은 건 안 하기.


모든 결정과 선택은 스스로, 해서 곤란한 상황과 맞닥뜨려져도 불평이 있을 수 없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아무튼 산티아고에서 카미노 걷기 중반쯤 되던 어느 날 사연이다.



새벽부터 꽤 많이 걸었기에 지치기도 하고 땀내도 심해
유령마을이듯 텅 빈 동네라 분위기 별로였지만 폐허 같은 성당 앞 조그만 알베르게에 짐을 내려놓았다.

우선 개운하게 빨래부터 한 줄 가득 해 널고 저녁거리를 사러 나갔다.

시에스타 시간과 맞물려서인가 문을 연 가게가 없기에

을씨년스러운 골목 이리저리 누비며 식당이라도 찾으려 돌아다녔다.

그 마을에는 마켓이 아예 없었고 알베르게 운영하며 약간의 식품을 파는 바가 있었으나 거기서는 자기 집에 머무는 손님 외엔 음료는 물론이고 빵 쪼가리조차 팔지를 않았다.

짐을 푼 우리 알베르게는 침상 깨끗한 것까진 좋았으나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곳이라
우리는(수녀님과 나, 춘천에서 여고 동창끼리 온 오십 후반의 아낙들까지) 그날 밤 큰 불편을 겪게 되는데...



우선 저녁 끼니부터가 간곳없으니 곱다시 굶을 판이었다.

전혀 예측 못한 돌발 상황, 카미노 걷기 보름 여 만에 이미 비상식은 거덜 났으니 현지 조달만이 답.

적막강산인 이곳 실정이 우리 모두를 더 감질나게 해 마구마구 시장기가 돌았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뉘어 골목을 샅샅이 뒤졌다.

흐릿한 불빛 아래 카드놀이하는 노인네 몇이 앉아있는 바를 가까스로 발견해 감지덕지하며 음식을 주문했다.

메뉴는 고를 것도 없이 단 하나, 햄과 베이컨 몇 쪽에 계란 프라이 둘 그리고 마른 빵 약간과 생수 한 병.

자칫 굶을뻔했는데 그나마 이게 어디냐며 시장했던 우리는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쓸어 담았다.

젊은 청년 하나 머무는 외엔 단지 한국여인 몇뿐이라 좀 휘적거리는 밤,

바람도 없는데 기분 고약스레 삐걱대는 나무 문소리에 고단한데도 깊이 잠들 수가 없었다.

길고양이는 괴이쩍게 울어대고 잠은 안 오니 베드 버그라도 기어 다니는 양 괜히 전신이 군실거렸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한 달간 어디에서도 베드 버그란 벼룩은 만난 적이 없다.)

공포영화 세트장 수준, 다들 잠을 설친 채 동도 트기 전인 깜깜한 시각임에도 꼭두새벽같이 길을 떠나기로 했다.

헌데 현관문은 밖에서 잠겨져 있는 데다 명색이 공립 알베르게인데 관리자는 전화조차 받지를 않고...

기다려봐도 소용없자 우리는 창문을 열고 펄쩍풀쩍 뛰어내려 겨우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 무슨 시추에이션? 큼직한 망태 하나씩 짊어진 도망자 꼴에 우리는 서로의 등을 쳐가며 한바탕 웃었다.



성 야고보 형제회에서 운영하는 직사각형의 낡아빠진 성 니콜라스 성당을 필두로 옹기종기 몇 가구씩 모인 촌락마다 하릴없이 웅장스레 버틴 교회 건물들만 잇따라 나타났다.

과거에는 인구 번창했는지 모르나 현재 불과 여남은 집이 있을 뿐인 마을조차 터무니없이 큰 교회당이 한 동네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고 있는 팔렌시아란 지역.

팔렌시아만이 아니라 스페인 어딜 가나 수도 없이 치솟은 성당 건물들을 보면서 내면에 저마다의 성전을 이루라고 누누이 이르신 하느님 말씀 정면으로 거슬렸구나 싶었다.

허울 그럴싸하나 내실 없는 돌탑 세우기에 몽매한 민초들 동원시키는 일을 과연 얼마나 참아주실 수 있었겠는가?

바벨탑을 쌓고 면죄부를 팔 정도로 타락했으니 중세의 종교개혁 바람은 교회 스스로가 자초한 셈이었다.

그리도 공을 들였건만 종내는 푸석푸석 먼지와 흙으로 화할 물질의 허망함,

곧 무너져 내릴 듯 완전 쇠락해 주일미사조차 집전 못하는 곳이 현재 적잖았다.

고작 유적지 관광장소로 전락했거나 그도 아니면 새와 박쥐가 둥지 튼 스산한 폐허로 변한 교회.

비록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했을지라도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했다.

규모 거창스러운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 성전이며 비야 무리엘의 산타 마리아 라 마요르 성당 등등은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건축양식의 변천사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원래의 취지대로 하느님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는 이제 아니었다.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정성 들여 장식한 아치며 종탑, 품위 있는 고전미를 간직하고 있음에도
제 기능 잃은 성당이며 수도원은 숙박시설로 변용되거나 맥없이 삭아내리고 있었으니...



종탑이나 지붕에 황새 같이 커다란 새가 둥지를 틀어
부스스해진 모습 하도 수수한 것이 내도록 심란스럽게 만들어 그야말로 아니 본 만 못했다.


얄궂게도 카미노를 걸으며 신심이 더 단단해지기는커녕 얕은 신앙심에 혼동이 일며 분심 들어 한동안 성당에 소홀하게 됐으며...

지금은 그 온갖 기억들마다 미쁘게 채색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