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체감

1997

by 무량화

풍류 읊으며 몽환적 도취에 빠져 지낸 나날들. 너무도 세상물정 모르고 철없이 살아왔음이 순간 부끄러웠다. 현실을 직시했더라면 도대체 무슨 소견머리로 음풍영월 일삼으며 태평성세 구가했을까. 고작 손끝에 박힌 가시 하나 가지고도 대단한 고통인 양 호들갑을 떨 수 있었을까.



남북분단 상황이라는 우리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휴전선을 사이에 둔 채 전쟁과 평화의 중간쯤에 놓인 어정쩡한 위치. 더군다나 미사일 협상을 벌이는 척하면서 핵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한이다. 자칫 머리에 핵을 이고 살 수도 있는 남한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처한 입장임을 짐짓 모른 척 외면하려 한다 해서 회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건만.



북에서 내려온 잠수정이 좌초되어 공비가 떼거리로 강원도 산간을 누비던 지난해 가을. 연일 뉴스는 준전시(準戰時)의 긴박감을 전해주었다. 이차선 국도를 따라 이동하는 병사들이 중무장을 한 체 행군하는 모습이 화면에 자주 등장했다. 헬리콥터가 낮게 뜨고 지역에 따라 통금이 내려졌다. 작전 중 전사자도 적지 않았는가 하면 버섯을 따다가 무참히 죽어간 민간인도 있었다. 때는 늦가을, 동원된 병력 수대로 차디찬 가을비에 젖어 떨기도 많이 떨었으리라.



하지만 설마? 하면서 우리와는 거리가 먼, 강 건너 불같은 이야기로 치부했다. 일촉즉발의 긴장이 떠돌아도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실제로 특별한 연결고리가 맞닿지 않는 피상적 관념이란 절실히 와닿는 그 무엇이 없게 마련이다. 나아가 어떤 경우이든 현실체감 없이는 막연한 추측에 그칠 뿐 파장 깊은 교감은 기대하기 어렵다.



당시 외신은 한반도에 전쟁불안이 고조되고 있다며 우려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정작 우리는 무감각했다. 오히려 아프리카의 궁핍과 러시아 연방국의 내전을 걱정했다. 또한 우리의 관심사는 경기침체 국면이 언제 회복세로 돌아서나 하는 점이었다. 곪을 대로 곪아 경제파탄이 언제 도래해도 이상하지 않은 한국이었음에도. 우리는 그만큼 무신경했다. 아니, 남북대치 국면에다 국가부도사태가 임박해 있는 엄연한 현실을 까무룩 모르고 산 셈이다.



일부에서는 공비 침투 사건조차 조작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유언비어까지 퍼뜨리는 판이었다. 과거에 이른바 평화의 댐 따위 안보를 빙자한 위기관리용 위정자의 농간에 속아 본 전력이 있다 보니 나옴직한 발상이었다. 자폭으로 최후를 맞은 추레한 행색의 공비들을 목도하고도 그런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태백산맥을 따라 공비 잔당을 뒤쫓던 군병력이 철수하며 그 가을은 겨울로 접어들었고 다시 오월이 왔다.



눈부신 신록의 계절, 저마다 색감 다른 잎새들의 반짝거림. 안개 흐르는 숲에서 구성지게 들리는 뻐꾸기 소리. 소낙비 내리 듯한 계곡 물소리. 설악의 치마폭 깊이 주름져 골을 이룬 내린천 언저리 풍광들은 이렇듯 서정적이기만 하였다. 장엄한 산세에 격을 맞춘 힘찬 계류. 주변경관은 연거푸 경탄과 환호를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들떠 오르는 기분을 움츠러들게 하는 또 다른 배경의 비중이 만만치 않다. 착암기 소리 같기도 하고 건축현장의 중장비 굉음과도 닮은 장갑차 지나가는 소리. 그야말로 지축을 울리는 소리다. 거기에다 총소리는 아예 예사롭다. 마치 총격전 일상다반사로 벌어지는 서부영화처럼. 피융 피융, 사격 연습은 밤낮도 가리지 않는 성싶다.



그뿐인가. 힘찬 함성이 산마루 따라 메아리치기에 밖을 내다보면 유격훈련에 들어가는 일단의 얼룩무늬들이 일사불란하게 행군하는 모습이 보인다. 얼굴 군데군데 검은 칠을 바르고 철모에는 나뭇가지가 꽂혔다. 완전무장을 한 채 실제로 산악훈련에 임하는 군인을 대하기도 처음이며 움직이는 장갑차를 보기도 난생처음이다. 괜히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눈시울 뜨거워진다.



저마다 집에선 얼마나 귀한 아들들일까. 금쪽같이 여기는 아들이 실전을 방불케 하는 고된 훈련을 받는 장면을 접한다면, 면회장에서도 눈물을 쏟고 마는 모정일진대 대견함에 앞서 안쓰러움이 오죽하랴. 아마도 목이 메이다 못해 기어이 눈물바다를 이룰 것이다. 그렇지만 국방을 책임 맡은 젊은 병사들의 눈빛에는 고단한 기색이나 감상적인 구석이 전혀 없다. 오히려 어떤 결기 같은 게 엿보인다.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꼭 다문 입매가 다부지다. 그 표정이 “부모님, 안심하십시오”하는 것 같다.



강원도에서 머문 일주일 여. 인제는 군의관 근무를 하게 된 큰애의 발령지이다. 부산에서 장장 여덟 시간 거리. 멀리 떠나보내는 마음이 애틋해 이삿짐을 따라왔다가 그럭저럭 여러 날을 보냈다. 그러면서 부산에서는 상상도 못 한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 터였다. 동시에 머릿속에는 여러 가닥의 상념들이 감돌았다. 주로 떠오른 건 전방에서 얼마간 지내게 하고 싶은 사람들의 부류였다.



첫 번째가 나라와 국민의 내일을 진정으로 배려하기보다 당리당략에 놀아나는 한심스러운 정치꾼들이다. 다음은 철 지난 이념투쟁으로 붉은 머리띠 두르고 수상스런 구호 외쳐 대는 주체가 애매모호한 시위꾼들이다. 생산적이지도 않은 사업 벌여 놓고 은행돈 끌어 쓰느라 수단방법 가리지 않으며 세금포탈 일삼는 파렴치한 경제인들이다. 흥청망청 카지노장 돌면서 외화탕진에다 꼴불견 사치와 환락과 퇴폐로 지새는 골 빈 연예인들이다. 그 외에도 매사 불평과 불만이 들끓는 사람, 평범하고 단조로운 생활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일면 포시러운 사람도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이 나라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 특수계층의 자제들에게는 이런 지역에서의 군복무 기회가 필수일 것 같다. 올바른 정신자세의 확립은 물론, 일생의 몇 순간이나마 진지하게 나라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테니까. 하지만 정작 그들 자녀들은 전방 근무는커녕 국방의무조차 교묘히 빠지기 일쑤다. 한국전 당시 미군 장성 아들들이 참전해 최전선에서 교전 중 사망한 사례들을 다수 접해봤을 거다. 중동전이 발발하자 유학생활 접어 둔 채 귀국하는 이스라엘 학생이 줄을 이었다는 외신보도를 그들은 감동 아닌 비웃음쯤으로 받아들였을까.



우리는 통일전망대에 올라, 혹은 땅굴 견학을 하며 나름대로 분단조국의 현실을 체감해 보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잠시 순간 감회에 젖어 각오를 다져 보기도 하지만 그 기분은 얼마가지 않아 빛바래지고 만다. 아마도 현대인의 삶, 그 일상의 분망함에다 팽배한 개인주의 사고가 그런 감정을 희석시켜서 쉽게 망각상태로 이끄는지도 모른다. 그저 잠깐 감상에 잠겨 보았을 뿐 깊은 각성이나 정신무장을 공고히 다지는 단계로 이어지지 못함이 안타깝기만 하다.



전쟁. 그것은 컴퓨터 게임기에서 푱푱거리며 총알이 튀는 놀이가 아니다. 장난도 아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냉엄한 현실이다. 근자의 북한 내부사정이 우리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고 있다. 제발 전쟁만은 없기를… 기도 올리는 심정이 된다. 하긴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 입장에서야 별스럽지 않은 사태에도 과민반응이 나오게 마련이니까. 어쨌든 평화통일을 갈구하는 우리의 마음과 많이 어긋져 있는 북쪽의 실정이 아니길 기구할 따름이다.



휴전선과 지근(至近) 거리에 위치한 큰애의 근무처. 관사로 배정된 아파트에서 보이는 정경이라곤 앞에도 산, 뒤에도 산, 그리고 군부대와 군인 일색이다. 시내와 떨어져 있다 보니 밤에는 도통 불빛 구경이 어렵다. 깜깜절벽에다 암흑천지가 따로 없다. 들리느니 쉼 없이 흐르는 계류 소리, 힘차게 치달리는 내린천 물소리뿐이다.



그 외의 조건은 대체로 만족할만 한 수준이다. 본가가 있는 부산에서 멀리 떠나 와 있다 뿐이지 살기 불편할 만큼 외진 오지도 아니다. 첩첩산중 설악의 기운찬 위용과 수시로 마주할 수 있는 곳. 전쟁의 염려만 완전히 사라진다면 알프스 못 지 않은 빼어난 경관지, 최적의 관광보고가 강원도 아닌가.



물 좋고 공기 맑은 이런 곳에서 언제 살아보겠니, 잘된 일이다. 말은 그렇게 하고 돌아섰지만 애들을 떼놓고 오는 발길이 비에 젖은 새 날개처럼 쳐진다. 그간 힘겨운 공부에 진이 빠진 심신의 기력도 보충할 겸 좋은 곳에서 휴양한다 생각하거라. 혼자 속으로 후렴을 달아본다. 자꾸만 아려 오는 마음을 그렇게 달랠 뿐이다.



지구상에 하나뿐인 분단국가로 남과 북이 첨예히 대치하고 있는 현실. 더구나 전쟁 준비에 열 올리며 핵개발에만 혈안이 돼 설치는 북쪽이다. 우리가 처한 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때 저마다 정신자세가 새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역사의 교훈은 똑같은 불행을 반복지 않으려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던가. 1997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Park ;워싱턴 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