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가 어디 있어요

1993

by 무량화

창조주의 실수였던가, 바다보다 낮은 땅 쓸모없는 늪지 투성이의 네덜란드. 그래서 네덜란드인이 네덜란드를 새로이 만들어 냈다지요. 사람들이 지혜와 힘을 모아 제방을 튼튼히 해서 북해의 거친 파도를 막고, 흔하디 흔한 물길을 다스려 운하로 정비하니 비로소 북구의 낙토가 되었다는 네덜란드. 풍차와 튤립으로 상징되던 이 나라에 대한 첫 느낌은 오히려 운하와 양 떼와 다이아몬드로 강하게 인상 지워졌소. 시대가 변하고 동력이 따라 변하니 풍차가 어디 있어요? 채근하며 일부러 찾아 나서지 않으면 만나기조차 힘든 것이 네덜란드의 풍차였소. 우리의 경우, 민속촌 전시용 외에 물레방아가 흔치 않은 거와 비슷한 맥락이 아니겠소.



이번 여행을 마무리 짓는 종착지 암스테르담에 닿은 것은 저녁 무렵. 도처에 깔린 운하에는 무수한 금 비늘이 반짝댔고 버드나무는 질펀한 황금빛 강물에 머리를 감고 있었소. 고흐미술관과 치즈공장 등 예정된 답사 코스를 주마간산 격이자 수박 겉핥기식으로 바삐 돌아다녔소. 그다음, 왕궁을 품어 안은 담 광장의 오렌지빛 가로등 아래 일단의 흑인 청년들이 펼치는 토속 악기 연주를 잠시 구경하기도 했소.



약간 침침하고 음산한 거리. 물로 에워싸인 도시라서인지 서늘하다 못해 어깨 움츠리게 하는 기온이라 서둘러 숙소에 들기로 했소. 어둠에 잠긴 호텔 주변에도 목장은 아득히 깔려 있었소. 또한 호수와 연결된 운하가 길게 이어졌으며 그 둑길에는 달맞이꽃이 지천이었소. 인광 내쏘는 고목 등걸인 양 밤이 깊어갈수록 자태 선연해지는 달맞이꽃들은 마치 하늘의 은하수 무리와도 같았소.



새벽의 정적을 걷어내듯 한 물새 소리에 잠이 깨었소. 창을 열자 엷은 안개가 밀물 져 안겼소. 다분히 몽환적인 초원의 양 떼 그리고 은백색 운하에 뜬 목선. 부들이 키 세운 호수에 물오리 몇 마리 둥둥 떠다니니 실크 주름 같은 부드러운 파문이 뒤를 따르더이다. 유럽에서의 마지막 날인 오늘 일정은 큰 욕심부리지 말고 저 물새 몸짓처럼 잔잔하게 지내기로 내심 결정을 지었소. 경주에 들러 석굴암을 만나지 않을 수 없듯 풍차가 있는 마을을 거쳐 <안네의 집>을 찾은 다음 생활의 온기가 느껴지는 주택가 골목길을 거닐 작정이었소. 어차피 짧게 주어진 시간 동안 한 나라의 모든 것을 다 챙겨 돌아본다는 것은 무리 중의 무리가 아니겠소.



암스테르담 가로에 거미줄 쳐지듯 한 운하와 드넓은 초지는 이방인에겐 분명 유다른 감동이었소. 또한 세계적인 꽃 시장과 더불어 사계에 정평이 난 다이아몬드 가공 기술. 그런지라 남아공에서 산출된 원석의 대부분이 여기 이르러서야 제대로 보석 대접을 받는다는, 자칭 다이아몬드 도시이기도 하지요. 그에 연유해서인지 거리 곳곳에 다이아몬드 숍이 붙박여 있었소. 보석과 여인과 범죄가 밀접한 고리로 맺어져 있듯 네덜란드의 관문인 스키폴공항은 국제 범죄를 다룬 영화에 곧잘 등장하는 터라 낯설지 않은 이름이지요. 떠돌이 펑크족이 판을 치고 마약과 섹스가 공공연히 거래된다는 도시. 그것은 어쩌면 자유가 넘치도록 보장된 사회의 당연한 그늘이 아닐까 싶었소.



물어물어 간 곳에 사진으로 익숙한 풍차가 있었소. 날개를 쉬고 있는 묵직한 풍차와 어렵사리 상견례를 치른 뒤, 운하 위에 더러 걸린 도개교와는 먼빛으로 만 일별하고 담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소. 일단 광장을 중심축 삼아 행선지를 검토하는 것이 편리했기 때문이오. 견실한 주택과 교회 건물이 운하에 되비치다가 오가는 배들이 일군 물결로 쉼 없이 술렁대고 있었소.



고만고만한 운하를 앞에 깐 암스테르담에서야 흔히 보는 별 특징 없는 골목에 안네의 집은 끼어있었소. 갈색 단아한 4층 건물의 뒷집, 다락방에 숨어 지내며 쓴 한 소녀의 일기는 강렬한 웅변보다 더 큰 목소리로 전 인류에게 나치의 죄를 고발했더랬지요. 언제 맞닥뜨릴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쓴 안네의 일기. 열세 살 생일을 맞아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일기장을 채워나갔던 안네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게슈타포에게 붙잡혀 종당엔 아우슈비츠로 몰리고 말았지요.



길고 긴 줄 서기 끝에 안네의 집 현관으로 들어섰소.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니 책장으로 위장시킨 입구가 나왔소. 나치의 유태인 탄압을 피해 고향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암스테르담에 온 안네 가족. 그러나 세계 이차 대전이 시작되어 네덜란드마저 침공당하자 다시 불안에 떨어야 했던 그들. 그 와중에도 꿈 많은 소녀로 자라난 안네는 제 방에 어린 날의 사진을 촘촘히 붙이는가 하면 로버트 테일러 등 당시 배우 사진을 오려 벽면에 장식해 놓았더군요.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소녀. 하지만 공포의 나날을 보내며 숨죽여 기록했던 일기가 훗날 반 인종주의 운동의 깃발이 될 줄이야 어찌 짐작했으리오.



조그만 다락방의 손수건만큼 한 창문 너머로 교회당 종루가 잡히는 순간, 느닷없이 눈시울이 젖어드는 거였소. 정녕 신이 있다면 청순한 어린 소녀의 생을 그렇게 마감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소. 안네는 아마도 작은방을 채우고 넘쳐나는 저 종소리 들으며 자유와 평화를 기대하는 간절한 기도를 무수히 바쳤을 것이오. 아무 죄 없는 안네를 지켜주지 못한, 구원이 되지 못한 십자가는 부끄러움을 아는지 가로수 무성한 잎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었소. -1993-

사진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