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쓰러움

1992

by 무량화


무성하던 녹음 차차 빛바래가는 추분 무렵. 자꾸만 나른하게 만드는 날씨다. 한낮의 무료를 털고자 지척에 둔 자성대 공원을 찾았다. 도심 한가운데일지언정 공원의 밀밀한 숲은 그래도 나무 향기로 산뜻하다. 저 아래 도회의 소음이 딴 세상 소식 같다.



공원 안은 텅 비어 있다. 아니다. 벤치에 한 남자가 팔베개를 하고 길게 누워있다. 차림새로 보아 장년이다. 햇살 줄기가 발치에서 어른거릴 뿐 인기척에도 미동조차 않는다. 깔끔한 구두가 오히려 맘에 걸린다. 기온과 상관없이 왠지 추워 보이는 큰 키. 얼굴에 덮은 신문이 어지럽다.



어쩌면 구인난에 기대 걸고 산 신문일까. 아니면 시간 때우기 위해 들고 나온 걸까. 스물네 면의 온갖 기사는 물론 크고 작은 광고까지 활자 하나 놓치지 않고 다 훑었는지도 모른다.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일거리를 깜냥껏 맞춰보다 한숨 삼키고 사원 모집 공고 더듬다 지쳤는지도 모른다.



근래 들어 경기 침체가 심각하다고 야단들이다. 경제 난국이란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불황의 여파는 사회 곳곳에 무겁게 깔려 있다. 아시아의 용으로 부상하던 한때. 산업 전반은 미증유의 성장을 기록했다. 경제는 호황을 누렸고 덩달아 너도나도 흥청망정, 과소비에 사치 향락 즐기며 허영심을 맘껏 풀어놓고 살았다.



돈은 한낱 깃털마냥 가벼웠다. 그러나 수출 부진에 이어 증시 침체가 가속화됐다. 천정부지의 부동산 값이 고삐를 잡히자 턱없이 부풀어 오른 거품 삭아내리듯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버리는 경기. 뒤이어 도처에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 문 닫는 기업체가 늘고 있다 한다. 졸지에 실업자가 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이렇듯 밑바닥을 헤매는 경제가 회생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며 우려의 소리가 드높기만 한 이즈음.



지금 시각으로 봐선 당연히 일터에 있어야 마땅할 사람이 어이해 공원에서 무료히 죽치고 있는 걸까. 잠시 바람 쏘이려 나온 여유로운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그렇다고 무위도식하는 생짜 백수건달은 아닌 성싶다. 실직한 가장인가. 도산한 사업주인가. 한창 일할 연배 같은데 이런 곳에서 한나절 소일해야 하는 사연이야 오죽 기막힐까. 그 답답한 가슴 막막한 심정을 남이사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생면부지의 타인이지만 보기에 그저 딱하고 안타깝다.



몇 해 전. 그는 매일 낚시를 다녔다. 평소 낚시를 즐기던 바도 아닌 데다 불자가 되면서는 도통하지 않던 짓이었다. 헌데 낚시 도구 챙겨 아침마다 바다로 갔다가 저물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소금기와 함께 옷에서는 담뱃내가 진하게 밴 채로. 한 번도 낚은 고기를 들고 온 적은 없었다. 울적함의 무게를 덜어보려 짐짓 빈 다랭이 치켜들며 많이 잡았네! 호들갑을 떨면 그는 조금 웃는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저녁 내내 줄창 담배만 피워댔다. 곤비한 나날이었다.



냉동공장을 운영하던 시어른은 일찍이 자수성가한 분이셨다. 어른 계산으로는 대학원까지 보낸 아들이 고작 월급 몇 푼에 매달려 사는 게 딱해 보였던지 눈 감고 벌어도 그건 벌겠다며 무참스러운 핀잔으로 주눅 들게 했다. 맏이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하는 일마다 마뜩잖게 여기기 일쑤라 때로는 야속할 적도 없지 않았다.



안 그래도 직장에 매여 틀에 박힌 생활 하는데 심한 저항을 느끼던 그였다. 그만둘 궁리만 하던 차에 핑계까지 그럴듯해진 셈이다. 결국 고생할 거면 아이들 어릴 때 하자며 사직원 내는데 나는 동의해 버렸다. 괜찮은 직장을 그렇게 버렸다. 그때 나이 서른넷이었다.



말이 좋아 사업이지 세상물정 모르고 덤빈 결과 일 년도 못돼서 손을 들고 말았다. 까딱하면 집마저 날릴 뻔했으나 다행히 그 지경에 이르기 전 백기를 들었다. 얼마간은 불빛 한 오리 없는 칠흑의 동굴 속을 헤맸다. 혹독한 단련기였다. 우여곡절의 끝. 더듬더듬 밖으로 나오니 무던히 지치긴 했지만 다시 마주한 햇살은 그지없이 빛났다. 덕택에 생활에 임하는 자세는 훨씬 단단해질 수 있었다.



돌이켜 그 어려운 고비에서도 시댁 쪽에 의존할 생각은 물론 구차한 내색 안 하고 잘 견뎌냈다는 점이 신통하다. 당시는 오기도 작용했으리라. 시원찮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곧 죽어도 빳빳한 자존심으로 버틴 것이다. 그렇다. 겨울을 나지 않은 장미는 진실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다 하지 않던가.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첫걸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처럼 한 단계씩 밟아 오르는 과정인 지금. 비록 꿈은 이것이 아니었고 하는 일이 성에 차지 않을지언정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믿음직하다. 허황된 생각이나 무모한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그런 한편 안타까움도 크다. 그의 그릇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오늘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다. 한편 아직은 젊기에 초조감 누르고 기다려 본다. 우리에게 할당된 시간은 충분하니까.



산다는 게 빤한 평면도이거나 일직선의 행로뿐이라면 무미건조할 테지만 곳곳의 고빗길로 하여 양지와 그늘을 고루 음미할 수 있는 것. 실패와 좌절 끝에 맛보는 성취감은 비록 보잘것없는 가치를 지닐지라도 여간한 보람이 아니지 않던가. 따라서 저 벤치의 남자를 안쓰러운 심정으로 바라봄은 괜한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거센 바람 앞에 쓰러진 풀잎조차 끈기 있게 되일어나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거늘 하물며 천지의 중심인 사람임에랴. 아마도 자신에게 할당된 빛나는 시간을 기다리느라 잠용처럼 누워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믿어보며 어설픈 연민의 시선을 거둔다.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