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혹은 '진지 잡수셨습니까?'
어릴 적만 해도 주변에서 예사로이 듣던 인사말,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인사다.
일 곱해에 걸친 모진 왜란은 차치하고라도 36년의 수탈로 피폐해졌던 일제강점기에 이어진 삼 년간의 참담한 동란의 뒤끝인 50년대.
그만큼 험한 세월을 살아야 했던 민초들이기에 밤새 아무 변고 없이 살아있음을, 끼니나 옳게 챙겼는지를 서로 물어야 할 만큼 강퍅진 목숨들을 이어왔다.
반면 현대는 넘치는 풍요가 가져다준 성인병에 따른 혈관질환이 급증해, 한 해 1만여 명이 넘는 돌연사가 발생한다는 한국이다.
이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곱이 넘는 수치라고.
본인을 포함, 건강에 관한 한 그 누구도 자신 있다고 큰소리치며 장담할 것이 절대로 아님을 요 근래 절절히 실감하였다.
이래저래 밤새 안녕은 아직도 유효하다.
지난 금요일, 삼십 분이면 족한 하굣길이 세 시간도 넘어버렸다.
미풍에 실려오는 향기를 따라가다 보니 때마침 팝콘 튀듯 예서제서 꽃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었다.
길가 담벼락에 말라붙은 담쟁이덩굴은 추상화를 보여주었다.
꽃에서 꽃으로, 가로에서 가로로, 무언가에 홀린 듯 무한정 쫓아다니며 사진에 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집에 도착하자 얼른 봄소식 하나 간단히 포스팅하고 점심을 먹어야지, 생각하면서 랩톱을 열었다.
그런 열성을 공부에 기울여 예습 복습 착실히 했다면 이미 영어는 마스터했을 거였다.
사진 몇 장을 주르륵 올리면 되므로 금방 끝날 만만한 작업이라 여겨 맨바닥에 엉거주춤, 삐딱하니 앉은 채로 시작했는데 결국엔 답글 댓글도 달고 몇 곳 마실까지 다니느라 두어 시간이 휘리릭 지나버리고 말았다.
손주넘에게는 한동안 그리 야단을 쳐댔건만, 사실 컴퓨터란 요물단지는 누구나 한 번 그 마력에 빠져드는 순간 잠시 현실을 잊고 딴 세상에서 헤매게 만든다.
애진작 학문에 그리 몰입했으면 박사 하고도 남았으련만. ㅉㅉ
아무튼 자세를 바꾸기는커녕 요지부동, 한참을 컴퓨터에 매달린 터라 불현듯 다리가 저려왔으며 가시가 찌르듯 따끔하는 동통도 따랐다.
늦은 점심을 먹고는 주말에 오는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텃밭에 나가 배추와 갓을 솎아 다듬느라 또 쪼그린 자세로 한참을 일했다.
푸성귀를 뒤란 수돗가에서 씻은 다음 소금을 쳤다가 밀가루 풀을 쑤어 김치를 버무리고 나니 밤이었다.
약간 다리께가 묵지근했으나 평소 자신하던 건강/건각이라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
해서 날마다 또 하나의 취미인 걷기를 즐기며 여기저기 맘 내키는 대로 성큼성큼 산책인지 배회인지 하면서, 생각 혹은 공상에 빠진 채로 걷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끼던 나였다.
토요일 아침,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려는데 다리 어딘가에서 아찔한 통증이 뻗는다.
몸을 일으켜보려 하나 아주 예리하고도 심한 통증에 도시 꼼짝할 수가 없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괴변이었다.
치과에서 신경 치료 시 느꼈던 찌릿함이 강도를 최대치로 높인 양, 시리고 아리면서 형언할 수 없이 아팠다.
어찌 운신을 좀 해보려 하면 그때마다 저절로 아구구~신음부터 터졌다.
동작 그만! 지엄한 명령이 내린 듯 이후, 옴짝달싹도 못한 채 한일자로 반듯한 미라 자세가 되고 말았다.
가만히 누운 채로 꼼꼼하게 더듬어가며 몸을 관찰해 보니 좌측 고관절 주위에서 통증이 예리하게 짚인다.
요셉은 평소 조금만 열이 나도 아주 쉽게 약병 뚜껑을 여는 편이다.
열난다고 무조건 해열제에 쑤신다고 곧바로 진통제는 곤란하다는 게 나의 지론으로 약은 어디까지나 약 이전에 독이기도 하므로 가능하면 안 먹고 버티는 쪽으로 기운다.
요셉에게 감기 기운이 든다거나 어디가 좀 불편하다고 말하면 무심코 애드빌이나 타이레놀을 건네주곤 했다.
그러나 먹는 척 시늉은 하지만 아직 한 번도 그 약을 복용해 본 적이 없다.
몸살은 몸이 힘드니 쉬라는 부탁이고 배탈은 장 청소가 필요하다는 내부 신호이며 열이 나면 백혈구가 균과 전투 중이라는 신호.
무작정 증세부터 잡는다고 약을 삼키므로 기껏 적과 싸우려 나선 아군까지 죽게 만들 수 있다.
우연히도 최근에 읽은 <우리 몸은 석기시대>란 책에서 밑줄 친 부분도 바로 그 내용이었다.
독일 의학자가 의학전문 기자와 같이 엮은 책으로 '진화의학이 밝히는 질병의 이유들'이란 부제가 딸린 책이다.
밑줄까지 친 22~24페이지 내용을 옮기자면 이러하다.
"우리는 흔히 질병과 증세를 혼동하고 있다. 기침이 나고 두통이 있고 열이 나고 설사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 모두는 병이 아니라 병의 증세다.... 증세란 무엇인가? 대개 질병의 반갑잖은 작용으로 여겨 이를 억제시키거나,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여기며 받아들이고 참고 견딘다. 이에 따른 통증은 불쾌하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우리에게 유리한 신체 반응이다."
그렇듯 임시방편으로 증세를 눌러둘 것이 아니라 잠자코 내 몸을 통증에 맡겨두되, 염증을 가라앉히려고 찜질을 계속해 주었다.
그러자 한결 몸이 유연해져 절뚝거리면서라도 걸을 수는 있었다.
그 와중, 친구가 함께 들길 걸으며 바람 쐬러 가자는 전화가 왔으나 그리도 건각을 자랑하던 자신이 무참스러워 지금은 나갈 형편이 아니라고만 둘러대고 말았다.
한편으론 여기저기 정형외과 사이트에 들어가 고관절에 좋은 스트레칭을 찾아 나비 자세며 여러 동작을 따라 해 보았다.
운동만으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하는 수 없이 딸내미에게 상태를 자세히 고했다.
차렷 자세를 취할 때 손목이 닿는, 허리 아래 다리 연결 부위 뼈 근처가 아픈데 고관절 염증인 거 같다고 하니 퇴행성 신경통인지도 모르겠다는 첫마디에 대뜸 '곡조 슬프게 무슨 퇴행성?' 하며 발끈 화를 냈다.
하긴 하루에 13~15 시간 내처 산행을 해도 끄떡없던 것은 사십 대 일 적이다.
설악 봉정암에서 대청 중청봉을 지나 공룡능선을 타거나 지리 천왕봉을 넘어 칠선계곡을 따라내려 와 추성마을에 이르자면 그 정도로 걸어야 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나이가 있는지라 보통 서너 시간, 길어야 대여섯 시간 걷는 게 고작으로 만용은 금물이며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것도 문제겠다.
이튿날은 일요일, 심하게 절뚝거리면서 새벽 미사에 참례했다.
제가 아주 고약하게 아파요ㅠ 하소하며 십자가를 바라보자 문득 사순시기라 고통에 대해 묵상하라는 뜻인가 보다, 란 생각이 들었다.
조제약을 지어가지고 딸내미가 와서 아픈 부위를 진맥해보고는, 고관절 염증이 맞는다며 무리한 자세나 너무 많이 걸어서 생길 수도 있다면서 생전 첨으로 치료를 위한 침과 뜸 요법에 한참 동안 몸을 맡겼다.
모르핀 맞듯 단박에 신통한 효과가 나타나는 건 아니었지만 차츰 걸음 딛기가 수월해지고 도저히 안되던 양반다리 자세(고관절에 문제가 생기면 양반다리를 할 수 없다)도 가능해졌다.
저녁엔 침몸살로 열이 났으나 견딜만했고, 이상스레 소변이 잦아 수차 화장실을 들락거리게 되기에 물어보니 처방약의 예후가 아주 좋은 거라고 말해 안심이 됐다.
학교에서 본초학 강의를 맡은 지도 제법 되었으므로 딸내미의 능력을 믿는지라, 전적으로 한약을 신뢰하고 이에 모든 걸 맡겼다.
사실 '네 죄는 네가 알렸다!'처럼 관절이 느닷없이 성나 열이 오른 이유, 곧 탈이 난 원인이 자신에게 있으니 뭐라 입도 뻥끗할 계제가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나 바른 자세, 삐딱하니 앉았다간 건강 자체가 삐딱선을 타더라는.
된통 혼나고 나니 제법 철든 생각도 하게 돼 잘못했슈~천지신명 하느님 조상님 몸님 찾으면서
머리 조아려 사죄하고 참회하며 용서를 빌었다.
정녕, 사지 멀쩡해 가고 싶은 곳 맘대로 쏘다니는 거 보통 감사할 대목인가. 아파보니 정말이지 감사할 거 천지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천만에 말쌈.
사오십대까진 정말 겁없었다.
생전 이 외엔 아픈 적이 없었으니 건강 자신했었다.
병원이라야 충치땜에 치과나 다니고 출산하러 산과만 갔을 뿐이며 미국 와서 15년 하늘의 돌보심 덕으로 무탈하게 지냈는데 이번에 진짜 정신 번쩍 나게 혼났다.
딸내미는 이번 주 계속 쉬도록 하라고 했지만 내심 월요일엔 학교에 가리라 작정했으나, 식겁하도록 혼이 나야 정신 차린다 싶은지 기대만큼 빠르게 원상태로 회복되지 않아 딸의 의견에 따르게 될밖에 없었다.
사대육신 오장육부 그 어디나 중요하긴 마찬가지이겠으나 특히 다리가 불편하니 걸을 수가 없어 만사가 다 제약을 받게 돼 더 버거웠다.
어떤 움직임이든 시도해 보기조차 겁나게 느닷없는 통증이 불시에 찾아오면 쩔쩔매며 자연스레 동작 멈춰! 모드.
더구나 잠잘 때 외엔 늘 걸어 다니는 다리에 탈이 났으니 어쩔 수 없이 착실한 범생이가 만판 게으름 부리며 결석을 하게 됐다.
워낙 극심한 통증에 놀란 터라, 나 역시 충분히 쉬어주는 게 최선책일듯해 느긋하니 누워 지냈다.
덕택에 편히 누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며 <연암 일기> 상하권을 다 읽어치웠다.
알아봤자 어쩔 도리도 없기에 한국 사는 아들에게는 회복 단계에 이르러 아팠던 얘기를 했더니, 관절에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아 그만도 다행이라며 웃는다.
관절뼈를 감싼 연골 주변엔 물주머니 같은 게 한 겹 신경 보호막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그게 가끔 염증을 일으키나 별 걱정 말라면서 믿을만한 전문의가 거듭 안심을 시킨다.
덧붙여 이참에 아예 차를 하나 뽑으시지요, 권하기도 한다.
됐다야~ 앞으로는 나 자신을 맹신하지 않을 것이며 나이 염두에 두고 걷는데 너무 무리하지 않으마, 하고 치웠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만일 차가 있으면 쏘다니기 즐기는 성격에 자제 못하고 사방팔방 나돌아 다닐 테고, 그러다 행여 애들 신경 쓰이게 하는 일 괜히 만들 수도 있어 이대로가 나는 좋다.
이번에 하도 식겁을 해서 이젠 살살 몸 상태 눈치 보며 조심하고 살리라 작정도 했다.
건강 과신은 금물, 웬만큼 맛보기로 아팠으면 여전히 겁 없이 설칠 건데 공부 단디 하고서야 잘못했습니다! 하고 꼬리 바짝 내렸다.
밤새 안녕은 사실 누구에게나 유효하며 이 인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그 인사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곧 밤새 무탈히 별고 없이 지냈다는 증표이니까.
그간 두문불출에 두 손 맺고 꼼짝없이 누워 지냈던 터라 집안 청소로 하루를 보내고 오후녘 뒤란 텃밭으로 나갔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