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의 뜰

by 무량화


포도를 먹다가 불현듯 떠오른 상념이외다.

신사임당(申師任堂), 조선시대 여류 문인이자 서화가가 태어난 집이며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 오죽헌을 그래서 쓰기로 했다오.

먹물의 농담만으로 포도알이 농익고 덜 익은 걸 절묘하게 표현해 낸 사임당.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익히 알고 있어 부연설명이 필요치 않은 평산 신 씨 사임당.

산수도와 포도그림이 뛰어나기로 당대부터 유명했으며 초충도 등을 남긴 화가이자, 아홉 차례나 장원급제를 한 조선의 대학자 이이를 길러낸 분이외다.


한국을 종횡으로 여행 다니던 중에 오죽헌을 찾았는데 60년대 봤던 조촐한 오죽헌의 기억 무색할 만큼 하도 거창스레 변모한 모습이라 내내 어리둥절하더이다.

오죽헌은 모든 여성의 사표로 추앙받는 신사임당의 친정집에 있는 별당으로, 사임당이 게서 태어났고 훗날 사임당께서 율곡선생을 잉태하여 출산한 집이라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건물로 알려져 있어 건축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건물이라 하외다.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꾼 다음 율곡이 태어난 방이라 하여 별당엔 몽룡실(夢龍室)이란 현판도 붙어있다오.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렸던 율곡은 이조판서를 지낸 조선조 문신이자 성리학자외다.

당쟁 조정을 평생 정치 이념으로 삼았으며 10만 양병설을 주장해 온 분이셨고, 글을 배우는데 기초가 되는 지식교육서인 격몽요결 (擊蒙要訣)등 다수의 저술을 남겼소이다.


<집 둘레를 감싼 검은 대나무가 있는 오죽헌(보물 제165호)의 몽룡실>


지아비 보필 잘하고 대학자 율곡 외에 장녀 매창은 서화가로 자녀 모두 반듯하게 길러낸 사임당.

흔히 현모양처의 틀에다 사임당을 비끌어 매두려 하나
이는 추켜세움이 아니라 조선을 지배한 가부장적 유교사회와 일부의 이미지 메이킹에 의한 것은 아닐지.

사임당의 부친 신명화는 네 살 때부터 사임당에게 남아 못지않게 글공부를 시켰다 하오.

그뿐 아니라 일곱 살짜리가 안견의 그림을 그럴싸하게 모작하는 솜씨를 통해 일찍이 여식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꾸준히 재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오.

모친 용인 이 씨는 문장이 뛰어난 분으로 부덕을 가르친 외에 예능의 피도 물려주었다 하더이다.

애시당초 사임당은 양반댁 규수를 넘어 강릉에서도 제일가는 명문가 별당아기씨 신분.

노비만도 백 수십 명 거느렸던 사임당 아버지는 가난한 집 아들 이원수를 데릴사위로 맞는다오.

해서 사임당은 경기도 파주 시댁에서 시집살이라는 걸 별로 해본 적도 없다 하오.

그러나 자주 시가가 있는 한성과 친정인 강릉을 오가며 지내야 했다 하더이다.

강릉집을 떠나며 읊은 아래 한시 '사친'에서 아녀자 한계가 밟혀 그만 싸해지고 말았소.



慈親鶴髮在臨瀛 / 머리 흰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身向長安獨去情 / 외로이 서울길로 가는 이 마음


回首北村時一望 / 머리 돌려 북평 땅을 한번 바라보니


白雲飛下暮山靑 /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위치한 '오죽헌'건물은 조선 중기 목조건물은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하외다

오죽헌 인근은 그 누구보다 사임당이 오래 거닐었을 사유의 뜰이 아니었겠소.


그 뜰 천천히 거닐었던 풍모 저리 오연한 신사임당의 착잡한 심곡이 헤아려지더이다.


홀어머니의 외아들로 빈한하게 살았던 이원수란 위인은 번번 과거시험에 낙방한 주변머리에 체신머리도 없었던 모양.


유능하고 사려 깊고 능력 있는 아내를 두고 하필이면 천출인 주모 권 씨와 정분까지 난다오,


해서 사임당은 나 먼저 죽더라도 재혼은 마시라고 신신당부하자 이 서방님 공자, 증자를 들먹대며 대거리했더라오.


사임당은 경전을 인용해 가며 조목조목 논리 정연하게 설명해 주나, 결국 사임당 사후에 권 씨 여인을 후실로 맞아들임으로 자식들 면마저 깎았다 합디다.


특히 율곡은 어머니 탈상 후 3년 시묘살이를 한 다음 아버지 곁을 떠나려 출가까지 했었소이다.


그러나 선영이 있는 파주 밤나무골을 사모하는 곡진한 마음에 밤골짜기 율곡이란 호를 지었다하외다.


외갓집에 있는 탯자리 오죽헌보다 선영에 이끌리는 남정네의 뿌리의식은 성리학자라서 더 공고했던지...


뛰어난 머리부터 품성까지 어머니 DNA에 강릉 명문가인 외가 학풍에 영향받은 바 크련만, 배경이 유교사회이다 보니 그 한계에 갇혀버린 것일지도.


어머니 신사임당을 비롯해 누이인 맏딸 매창과 셋째 율곡 이이, 넷째 옥산 이우의 유품들이 전시된 기념관을 둘러보며, 심정 가일층 복잡해지더이다.


신사임당( 1504 - 1551 )은 시서화와 자수에 능했으며 모든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한 현모였지요.


그럼에도 자신을 갈고닦아한 시대를 풍미한 자주적 인격체로서의 삶을 살았기에, 후세 영영토록 한국여성의 귀감이 되어 마땅한 분 아닌가 싶소이다.


<외가인 오죽헌 큰 마당에 선 대학자 율곡 이이의 동상>


<정조임금이 내린 어제각에는 격몽요결 머리글을 임금이 손수 썼고, 율곡이 어릴 적에 쓰던 벼루 뒷면에 율곡의 학문을 기리는 글을 새겨서 귀하게 보관하라 명한대로 어제각에 보존>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문성은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는 의미로 1876년 율곡에게 인조임금이 내린 시호. 문성사 현판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 휘호>


<오죽헌 경내에 들어서면 태극문양이 새겨진 광장이 있고 인성교육관과 강릉시립박물관이 자리했음 >


<전면에서 올려다본 오죽헌, 단정하면서도 마침맞게 배치된 건축구조>


<오죽헌 안채의 뒤뜰에도 오죽 무성, 선비의 기품이 느껴지는 오죽.나무에 먹물을 뿌린 것 같다고 해서 군자목으로도 불림. 오죽헌 경내에는 대가 검은 오죽, 홍매, 율곡송, 배롱나무가 이름난 명품임 >


<오죽헌 문안에서 바라본 건너짬 입지문을 지나면 향토민속관과 역사문화관>


<사대부 집안의 품격 있는 문향이 건물 곳곳에 배어있는 사랑채, 주련은 추사 김정희 글씨>


<저 층계를 올라가 자경문을 통과하여야 오죽헌으로 들어서게 됨 >


<강릉 역사, 유래 등 홍보 및 자료 전시실 겸 교육 영상 디지털관>


<율곡선생 당시에도 있었던 배롱나무 꽃은 끝물이라 띄엄띄엄 피었으나. 600년 묵은 위 목백일홍은 강릉 시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