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
신비롭기도 한 반면 약간 괴기스러운 붉은 달을 만날 기대로 설레는 아침.
몇 년 전, 아무런 사전대비 없이 맞닥뜨린 개기월식은 퍽도 불온스러웠다.
랭커스터에서다.
서늘해진 밤기운이 삽상하기도 해 달빛 완상하러 뒤뜰로 나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둥두렷 맑고 밝은 달이 슬그머니 핏빛으로 적셔지자 신라시대 백성들만큼이나 겁을 먹었으니까.
오늘은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다.
처서와 추분 사이에 있는 절기다.
이날 비가 오면 십리 천석(千石)을 늘린다는 속담이 있듯 풍년이 들 조짐이라는데 현재 기상상태로 미루어 비소식은 없을 듯.
다행이다.
농경사회에서야 적기에 내려주는 비만큼 고마운 게 있을까만은 오늘만은 비님, 참아주세요.
밤하늘에 펼쳐지는 우주쇼, 개기월식의 대장관을 보기 위해서다.
사이언스 타임지에 의하면 9월 7일 밤부터 8일 새벽까지, 한반도 상공에 장엄한 천문학상의 드라마가 펼쳐진다고.
이번 개기월식은 달이 지구 그림자의 중심부를 깊숙이 지나가며 약 1시간 22분간 지속되는 '대형 월식'으로, 전 세계 85% 인구가 관측할 수 있는 천문학적 빅이벤트라니 걸기대.
월식의 진행 과정은 5단계로 나뉜다.
먼저 달이 반영에 진입하면서 반영월식이 시작되고, 본영에 접촉하면 부분월식, 본영에 완전히 들어가면 개기월식이 된다.
개기월식 최대 시점을 지나 역순으로 진행되어 반영에서 완전히 벗어나면서 월식이 끝난다고.
반영월식 시작: 9월 8일 00:29
부분월식 시작: 01:28
개기월식 시작: 02:31
개기월식 최대: 03:12
개기월식 종료: 03:52
부분월식 종료: 04:56
반영월식 종료: 05:54
개기월식은 82분간 지속되며, 전체 월식 과정은 5시간 25분에 걸쳐 진행된다.
어제는 호미 하얗게 씻어두고 모처럼 농사일 쉬는 머슴날이라는 백중날.
조상덕 기리며 자손들 위해 기도하는 날이기도 하다.
기도는 찔끔 시늉만 내고 하루 죙일 노느라 바빴다.
백중 물맞이 약속을 했으니 소정방폭포에 가서 물놀이 삼매경에 빠졌다가 오후엔 법화사로 자미화꽃도 보러 갔다.
올 들어 법화사 방문 세 번째 만에야 만개한 백일홍 꽃숭어리와 랑데부한 자리라 차지게 잘 놀다 왔다.
예전엔 여름철 농사일이 거진 끝날 무렵이라 백중날은 머슴이 노는 날이었으며, 백로날은 아녀자들이 친정 나들이 가는 날이었다.
친정 대신 친구네 밭에 놀러가기로 어제 약속했으니 아침부터 부랴 사랴 급히 몇 자.
다녀와선 자정 넘어 달구경하려면 낮잠도 자 둬야 하니 이래저래 오늘도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