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성 푸조나무와 박견

by 무량화


오래전 신문사에 근무할 당시 문화면을 맡아 <역사 산책> 난을 꾸며나간 적이 있다. 평소 관심과 흥미를 느껴온 분야라 참으로 신명 나게 뛰어다녔다. 동으로 서로, 부산에 남겨진 조상의 자취를 더듬으며 자료를 모으고 현지답사를 나가 인근 정경을 스케치했다. 물 만난 고기처럼 생동감 있게 활기찬 생활을 한 화양연화의 한때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 했던가. 집 가까이 있어 오히려 소홀했던 곳이 수영공원이었다. 지척에 있건만 이 사적지는 아주 뒤늦게사 방문했다. 더러 한 번씩 수영팔도시장을 이용하기도 하던 터라 낯설지 않은 지리였다. 시장 거슬러 올라가 수영 시장 남문에 닿아 성지를 둘러보며 바로 곁에 이리 중요한 역사유적지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옛 이름은 좌수영 성지, 지금은 수영사적공원(水營史蹟公園)으로 불린다. 성은 허물어지고 성벽 흔적 일부와 성문만 남아 있다. 조선시대 동남해안을 관할했던 수군 군대인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던 자리다. 수영이란 지명도 수군절도사영의 앞뒤에서 따온 준말로써 현재의 이름으로 이어졌다. 뜻을 곰곰 새겨보면 역사와 전통의 맥이 닿아있는 아주 유의미한 장소인 셈이다.



남문에는 성벽 일부와 홍예석, 우주석, 하마비 등이 남아 있다. 입구 아치식 석문인 남문에는 사각형의 우주석 위에 화강암 박견(狛犬) 한 쌍이 양쪽에서 마주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입구에 세우는 해태나 범이 아니라 독특하게도 석물로 새긴 개다. 이 박견은 조선시대부터 원래 문 앞에서 집을 지키는 용맹스러운 동물이었다고. 그처럼 나라의 관문인 좌수영 성곽 앞머리에서 두 마리 개가 두 눈 부릅 뜨고 이빨 드러낸 채 버티고 앉아 지키는 문. 옛 수영 사람들 항전의 혼이 담겨 있는 역사의 터는 지금 인근 주민들의 운동장이자 휴식공간이 되었다.



공원 남문으로 들어가 왼쪽을 보면 수려한 노송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곰솔나무는 400여 성상을 넘긴 해송으로 천연기념물 제270호다. 경상좌수영 주둔 시엔 군과 군선을 보호하는 군신목으로 여겨 귀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곰솔은 워낙 키가 큰 데다(23m) 주위에 걸리적거리는 게 많아 사진 담기가 곤란했다. 따라서 직접이 아니면 곰솔 보기가 쉽지 않다.



수영공원 동쪽 비탈에는 우람한 수세로 그늘 넓게 드리운 푸조나무가 서있다. 위엄 어린 풍모의 푸조나무는 두 그루가 한자리에서 자라 북쪽은 할아버지 나무, 남쪽은 할머니 나무로 불리는 노거수다. 하도 거대해서 전체를 한꺼번에 사진 찍기 어려워 문득 유럽 대성당의 위용을 떠올리게 했다. 대체로 옆으로 기울어져 자라는데 줄기 여기저기 상처진 자취가 있고 혹도 생겼으며 심지어 왕버섯도 돋아있다. 수령 500년이 넘는 천연기념물 제311호다.



느티나무나 팽나무처럼 정자나무로 삼은 푸조나무는 바닷바람을 잘 견뎌내 해안지방의 방풍림으로도 많이 심었다. 가을에 까맣게 익는 열매는 달달해서 아이들이 따먹었다. 요즘은 비둘기들이 즐겨 먹는 식량감이 되었다. 이 푸조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목(堂山木)으로서 수호신이 깃든 지신목(地神木)이기도 하다. 당산제를 지낼 때 이 나무에도 제를 지낸다는데 주변에는 화사한 꽃무릇 한창이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인 수영야류, 수영 들놀이를 공연하는 놀이마당이 공원 북쪽 기슭에 자리해 있다. 전에는 탁 트인 공간이었는데 이번에 와보니 층계 자리에 지붕 덮개까지 말쑥해져 마당놀이 기분은 떨어졌다. 정월 대보름날 산신제(山神祭)와 함께 수영야류가 질탕하게 행해지곤 했는데 야류는 수영고적민속보존회가 주관했다. 직접 구경한 적이 있는 탈놀이는 수양반과 말뚝이의 능란한 재담이 박장대소하게 만들어 스트레스를 날려줬다. 하인 말뚝이가 독설과 신랄한 풍자로써 음흉한 양반의 이면상을 폭로하며 양반계급의 무능과 허세를 조롱하는 재담에 손바닥에서 불이 나게 손뼉을 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콩알 크기인 푸조나무 열매와 두터운 이파리, 그 아래 풀숲에 피어난 꽃무릇



공원 곳곳에 맨발로 걷는 지압터와 각종 운동기구가 구비돼 있다.



으르렁거리듯 이빨 드러낸 박견 잔등에 세월의 흔적 때처럼 얹혔다.



노거수 푸조나무는 줄기가 쳐져서 땅바닥에 닿아 빙 둘러 가며 지주목으로 든든히 받쳐놨다.



수영성 남문 입구를 장식한 이중 구조의 화강암 홍예문



수영성을 지킨 공덕비로 남겨진 뭇 영혼들



수영야류 민속놀이를 계승 발전시켜 온 민속예술관



전에는 지붕 덮개가 없었기에 여기 서서 휘둘러 보면 짙푸른 금련산과 광안리 바다 및 수영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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