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곶자왈에 겨울비 추적추적

by 무량화


산방산에 비구름 회색 너울로 드리운 한낮.

안개처럼 보얗게 밀려다니는 이슬비로 숲은 하냥 고즈넉하다.

엊그제 한파가 옛일인 양, 요 며칠 봄 같은 겨울 기온이라 빗발도 온유하고 바람결 실크처럼 부드럽다.

한라산 고지에는 지금 백설 자욱할 터인데.

그렇다면 자칫 설한풍 몰려들련만 서귀포는 딴 나라처럼 푹한 날씨다.

눅눅하게 비에 젖은 낙엽이 깔린 숲.

곶자왈 화산석 사이에서 색상 한결 묵직하게 깊어졌다

가장 늦게 단풍이 든 담쟁이에 시선이 확 끌린다.

마지막 축제를 위해 잎잎이 화려하게도 성장을 했다.



숲길 걷노라면 자주 만나게 되는 콩짜개난, 촉촉한 습기 반기며 포자마다 고개 한껏 젖혔다.

물기 방울진 망개 열매며 까치밥 더욱 붉고 탱자나무 가시에 맺힌 물방울 수정처럼 투명하다.

축 처진 개모싯대 마른 꽃은 빗물 함빡 머금어 거무튀튀한 채로 고개 푹 숙이고 있다.

우산은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일 정도였다.

야자 매트로 이어진 길은 푹신해서 걷기 좋았다.

반면 데크길 합판은 미끄러워 조심하며 걸었다.

처음 만났을 땐 쏜살같이 숨어버리던 노루다,

이제는 우리가 지나가도 느슨해진 경계심.

숨골 비탈길에서 노루가 빤히 쳐다봤다.

저를 아프게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이제사 들었던가?

공감의 표시로 반갑다며 손을 살짝 흔들어 주었다.


나목 끝에 앉은 새 한 마리 영락없는 수묵화였다.


담쟁이 & 오미자 열매
탱자나무 & 개모싯대 씨앗
망개 & 홍단풍 이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