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세계 만장굴과 미로공원

by 무량화

2023년 낙석 사고로 문을 닫은 뒤 2년 넘게 탐방이 중단됐던 만장굴이 2026년 봄, 정비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연다는 뉴스가 떴다. 방문 전 일단 운영 여부 확인

*오늘 현재까지도 휴업. *전화-064-710-7903


필름 누아르는 즐기는 편이지만 이처럼 어두침침한 검정은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오래전 다녀온 기억이 새삼스러워 어찌 변모했을지 궁금해서 일부러 찾은 만장굴이다.

입구 주변의 외관은 싹 바뀌었으나 동굴 안은 변할 수 없는, 변해서도 안되도록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는다.

영롱하게 반짝대는 종유석이 자라는 동굴도 아니고 표정 무덤덤한 용암동굴이라 별 볼거리는 없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긴 용암동굴로 기록되었다 하나 실제 1킬로 거리의 동굴만 개방돼 있어 그래봤자 왕복 2킬로라 반 시간 남짓 걸으면 된다.

시커먼 동굴 속에서 여유작작 노닐 수도 없거니와 사진 찍을만한 경관 또한 거의 없어 누구라도 오래 머물게 되질 않을 터.

더구나 색색 조명이 비쳐주는 대로 쏟아져 내리는 용암은 실체감이 드는 데다 낙석 위험 경고판도 목 움츠러들게 한다.

저 깊은 동굴 속 어딘가에는 박쥐까지 살 테고 발치엔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모여 곳곳에 물기 질척거린다.

전반적으로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동굴이라 어서 밖으로 나가 밝은 솔라 에너지로 눅눅한 느낌 털어내고 싶어진다.

만장굴의 만장이 제주 말로 '아주 깊다'란 의미라니 전체 굴의 길이며 수십만 년 전에 형성된 역사로 보나따나 대단한 동굴임에는 틀림없다.

오싹해지는 동굴 체험을 통해 맛본 지하세계에서 눈부신 지상으로 올라오니 예가 곧 천상세계 이상의 천상낙원으로 여겨졌다.



만장굴길 지나는 길목에 있기에 들르게 된 미로공원, 그러나 내 취향은 전혀 아니다.

어린이들이나 좋아할 장난감 고양이 숲을 거쳐 미로 같은 나무숲 통과해 골든벨을 흔들어보는 놀이터다.

제주에 매료된 미국인이 측백나무 닮은 상록수 랠란디를 흥미롭게 가꿔서 마치 미로처럼 만들어놓은 자그마한 규모의 공원이다.

입장료 내고 막상 들어가 보니 하도 싱거워 배불뚝이 미국 아저씨 험담 좀 하려던 순간 펼쳐본 카탈로그 내용인즉,

미로공원 수익금(일부? 전액?)을 제주도로 환원한다는 바람에 급제동 걸고 만 뒷담화다.

그러나 수벽(樹壁)을 이루도록 가차 없이 전지 시킨 랠란디 나무 지나치게 학대하는 거 같아, 보는 내내 안쓰러웠다.


산천을 구성하는 자연물 모두를 단순 무정물로 치부하고 느낌이나 지각과 감정이 없다고 뉘라서 감히 단언할 수 있을까.


불교 측면에서 살아있는 모든(유정 무정) 것은 불성(佛性)을 가진 중생이라 이른다.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 곧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모두 부처의 성품(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나아가 대승불교에서는 '무정불성(無情佛性)’이라 하여 감정이 없는 존재(무정물)까지 포함하여 유정(有情)과 무정(無情) 모두가 불성을 지니고 있다 하였다.


환경운동가들은 동물을 괴롭히거나 심한 상처를 줄 경우 동물학대라며 들고일어나던데 어째 식물엔 전혀 적용이 안 되는지?

미국 롱우드 가든 역시 이같이 수벽 길을 여기저기 만들긴 했으나 이처럼 빈사상태에 이르도록 나무를 혹사시키진 않았다.

나무 향 상긋하게 풍길 듯도 한데 마치 곡마단의 표정 잃은 호랑이처럼 생기 사라진 채 무기력하게 서있을 따름인 나무들.


새로운 장소라도 호기심 자극할만한 특별 포인트가 보이지 않아서일까.


게다가 돌아와서도 두 곳 다 심드렁하게 여겨진 것은, 아마도 어둡도록 차 기다리며 길에서 동동거려야 했던 기억 탓이리라.


귀갓길 차편이 끊기면서 택시조차 제까닥 연결이 안 되는 외진 지역인 까닭에 깜깜한 미로에 갇힌 듯 잠시 공황상태를 느껴야 했으니까.


서귀포 시내에서 가기엔 교통편이나 소요시간 만만찮은 동네가 구좌다.


주소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만장굴길 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