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에나 찾아갈 법한 서귀포항이다.
펄펄 뛰는 물 좋은 생선을 사기 위해 어판장에 갈 테니까.
밤바다에 집어등 불빛 밝혔던 고깃배가 밤샘 작업을 마치고 귀항해 싱싱한 생선을 풀어놓는 때가 해뜨기 전이니까.
일부러 생선을 사기 위해 서귀 포구로 나가본 적은 없으나 대신 일몰 시각엔 가끔 가곤 했다
엊그제 저물녘, 외사촌 동생과 저녁을 먹으러 나간 김에 노을 보러 포구 쪽으로 내려갔다.
지난해 태풍 몰아치기 전, 너른 바닷가 비좁도록 빽빽하게 모여든 배를 본 적이 있다.
고깃배 손질하고 있는 분에게 평소와 달리 어째 배가 별로 없느냐고 물었다.
밤에 어로작업하는 배는 벌써들 나갔고 포구에 묶여있는 배들은 내일 새벽에 출항할 배라고 했다.
잡는 어종에 따라 출항 시간대가 다르다는 것.
저 멀리 새연교 날렵한 자태 어렴풋해졌는데 새섬 앞 하얀 뱃전엔 금빛 찬연히 스며들었다.
선착장에서 휴식 중인 서귀포 유람선 너머로는 한라산 백록담 뚜렷했다.
다음날이면 동생은 일 주간의 제주여행을 마치고 귀경한다.
둘째 외삼촌 고명딸인 그녀와는 어릴 적 숱한 추억을 쌓은 사이다.
친동기처럼 아주 살갑게 지낸 우리지만 반세기도 넘어 이제야 겨우 얼굴을 마주했다.
그간 통화는 가끔 나눴으나 모습은 얼마나 변했을까?
제주공항으로 마중 나가 출구 앞에 서며, 서로 못 알아볼 거 같아 마스크를 벗고 그녀를 기다렸다.
멀리서 그녀가 내게 손을 내저으며 언니! 하고 크게 불렀다.
여고 시절 모습이 신기하게도 그녀의 웃음 진 눈가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긴 세월의 강을 단숨에 뛰어넘어 우리는 바로 어제도 만난 사람처럼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내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조잘거리며 온갖 추억들을 소환해 냈다.
세 살 즈음의 아슴한 외갓집 기억에서부터 여중고 시절 주말마다 삼 십릿길 오가며 나눴던 그 많은 이야기들.
그녀가 서귀포에 와서 며칠 함께 지내며 시공간 자재로이 넘나들었는데 아쉽게도 그럭저럭 마지막 밤이 되었다.
우리 둘 다, 석양으로 향하고 있는 연륜이라 더더욱 그러했으리라.
말없이 노을 바라보노라니, 지나온 세월 동안 쌓인 뭇 상념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고즈넉한 이 무렵은 유달리 애틋한 정서를 자아내게 하며 누구라도 왠지 침묵 속에 멈춰서 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