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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14. 2024

아르카를 지키는 위풍당당한 수탉

카미노 스토리

'바람은,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서로 손짓하며 부르는 소리'라는 시가 있다.

숲을 건너온 바람 맛은 그처럼 정스럽고도 감미로웠다.

비구름 밀어내는 바람이 아침부터 서늘하게 불어왔다.

걷기 매우 좋은 날씨였다.

산뜻하고 쾌적한 기분이라 얼마든지 슝슝 빠르게 전진해 나갈 수 있으나 서두를 까닭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일정 조절을 더 느슨하게 해야 할 상황이라, 일찍부터 부지런 떨지 않고 일부러 느지막하게 길을 나섰다.



카미노에 나서면 하나부터 열까지 뭐든지 혼자 정하고 혼자 해결하고 혼자 수습해야 한다.

매사 다 자신이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 점이 무엇보다 카미노의 큰 매력이랄 수 있겠다.

주체적 존재라는 자각과 자아정체성을 확인한다는 게 이토록 뿌듯할 줄이야.

마치 뒤늦게 자기 정체성을 찾은 이민 소년이듯 숫된 회심의 미소마저 일렁댄다.

나는 왜 여기 왔는가에 대한 답도 얻어냈으니 수확 알찬 셈이다.



무언가를 제때 꼭 이뤄내려는 강박증도 피곤한 일이고 자로 잰 듯 정확하게 귀 맞춰져야 하는 결벽증도 불편하다.

카미노에 오른 것은 스스로 정한 이런 틀로부터 벗어나려 함이며 가쁘게 옥죄는 질곡들과 결별하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그 과정에서 자주 자신을 되짚어보게 되었고 자연스레 자기 성찰이 따르면서 자숙의 시간도 갖게 되었다.

여유롭게 세상을 관조하게 되니 삶에 대한 시선 한층 너그러워져, 부족하다고 늘 자책했던 내 어깨도 토닥여주고 싶어 진다.

그동안 호기심, 열정, 자신감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로 알았다.

해서 나이 생각하라며 자꾸 누르기만 했던 호기심, 열정, 자신감이다.

카미노 완성을 목전에 두고서야 그들과 더불어 공유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있었으니 이 또한 큰 수확이겠다.




속히 목적지에 닿고 싶은 마음에 급한만치 경쾌하게 내딛는 발걸음은 저마다 가벼웠.

그럼에도 동서양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액자 안 풍경이 괜찮다 싶으면 주저 없이 멈춰 서서 한 컷 누르게 된다.

거진 다 왔다는 기쁨에 긴장 풀고 들이킨 빈 맥주병을 이용한 인테리어, 길가 레스토랑인데 얼핏 벌집 같은 정경도 담아둔다.

꼬루냐 지방의 선돌 고인돌 등 거석문화 흔적인 고인돌을 식탁과 의자 삼은 휴게실에 앉아 도미니카 공국에서 온 코랄과 간식을 나누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최종 목적지에 이르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기다리고 있는 아르카 마을이 서서히 모습 드러냈다.

갈리시아는 공립알베르게 표식을 표주박 둘러맨 귀여운 고양이 아이콘으로 통일, 저 아래 알베르게 입구 사진에 남겨둔다.

카페에서 휴식 취하며 담소 나누는 순례객들과 더불어 애견 데리고 걷던 프랑스 아저씨도 거기 한몫 낀 모습도 찍고.

이 마을엔 이름난 와이너리가 있다고 하나 그 외 주민 대부분은 순례객 대상인 숙박업과 레스토랑, 바를 주업으로  삼는다고 한다.


그에 기인한 지역적 특성인가.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섞인 Santa Eulalia de Arca 성당은 스페인답지 않게 이상하게도 마을의 유일무이한 성전이었다.

아들이 카톡으로 거듭 당부하길 쉬엄쉬엄 다녀오시라, 일등 할 필요는 물론 체력 자랑할 일도 아니라 했다.

분초 다투며 시간 재는 마라토너도 아닐뿐더러 백 미터 달리기 경쟁하러 온 게 아님을, 안 그래도 스스로에게 줄창 주입시켰다.

설렁설렁 걸으며 이런 여유 허락해 주신 하늘의 은총에 감사했고, 자연과 하나 되어 걷는 동안 힐링이 무엇인지도 체감됐다.

이곳은 아르카( Aeca)라는 작은 마을, 굳이 멈추지 않아도 됐으나 페드로우소(Pedrouzo)만 지나면 콤포스텔라에 입성한다.

그전에 카미노 마무리를 위한 제반 준비도 필요할 것 같았고, 콤포스텔라만은 심신 정결히 가다듬은 다음 들어가고 싶었다.

이삿날 택일하듯 일진 좋은 날짜 뽑기까지야 하겠나 마는 진작부터 일기 화창한 날 들어가자며 기상상태 나름 고려해 온 터다.

그 조건에 맞추려면 하루 더 외곽에서 뜸을 들여야 하겠기에 머물 장소로 택했는데, 의외로 성당 조촐해서 외려 더 돋보였다.

풍성하게 진열된 상품들 특히 채소류 싱싱해 마켓도 구경할만했고 기프트 가게며 카페가 짜임새 있게 들어서 있는 마을이 아르카였다.  

시청 앞에 선 커다란 수탉 동상이야말로 아르카의 최고 명물.

깃털이 실제처럼 윤기 나는 청남빛인 데다 투우 경기장 가듯 멋스럽게 묶은 수건이며 거친 발로 위풍당당 버틴 자세가 눈길 사로잡았다.

새벽마다 시청사 종소리 대신으로 우렁차게 꼬끼요오~새 아침 힘껏 열어젖힐 기상이었다.

고색창연한 Santa Eulalia de Arca라는 성당은 벽체가 많이 헐었고 문이 굳게 잠겨있기에 사용하지 않는 줄 알았다.

옆 건물인 사제관에 가서 물으니 순례자를 위한 저녁 미사가 있다고 했다.

되돌아가는 길에 바삐 슈퍼에 들러 저녁거리를 사서 내일 먹을 도시락까지 미리 챙겨 두었다.

시간 맞춰 다시 성당으로 가 미사 참례를 하고 강복을 받았다.

경건한 분위기로 인해서인가, 느닷없이 눈가가 매워지기에 얼른 천정을 바라보았다.

샹들리에 불빛이 빙그르르 돌았다.

제대 위의 가리비가 환한 빛줄기와 함께 바투게 다가서는 느낌도 묘했다.

이 길이 곧 끝난다는 게 어쩐지 허전하고 아쉬웠다.

영원이듯 카미노 길이 계속 이어져 걷고 또 걷고 싶었다.

세상만사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기 마련이나 한편, 길은 또 어디에나 열려있고 이어져있다.  

닿게 되는 콤포스텔라는 우리 모두의 케렌시아(Querencia), 아득한 세월도록 기다렸다는 듯 두 팔 벌려 날 반가이 맞아줄 테고.

뱀꼬리로~~ 수탉과 인연고리 맺기를 즐겨하는 스페인 사람들 야그다.

수탉이 언제부터 스페인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자리잡게 되었을까.

 그에 관한 설화를 들어본 적이 있다.

스페인은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다.

로마 점령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에스파냐는 712년 무어인에게 정복당해 이슬람 국가가 됐었다.

그렇게 8백 년 가까이를 이슬람권 문화 속에서 살았으나 마침내 알폰스 6세가 무어인의 항복을 받아내고야 만다.

에스파냐는 끈질긴 투쟁 끝에 고토를 회복하여 1492년 스페인 왕국을 세우고 다시 가톨릭 국가로 돌아왔다.

뿌리 깊은 기독교 신앙이 유럽인들 바탕에 널리 깔려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무렵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의 거의 다, 캘리포니아에서부터 파타고니아까지를 휘하에 둔 대제국이 된다.

막강한 힘을 떨치던 16~7세기의 해양대국 스페인으로 어느 한날 독일 청년 우고넬이 산티아고 순례를 온다.

신앙심 깊은 부모님을 모시고 셋이서, 당시 유럽인들에게 평생의 선망대상이었던 카미노 길을 그들도 걸었다.

 순례 도중 머물던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숙소 주인집 딸이 청년의 준수한 외모에 반해 사랑에 빠져버렸다.

아가씨는 용기를 내어 마음을 고백했으나 돈독한 신앙심의 청년은 그녀의 사랑을 정중히 밀쳤다.

거절당한 보복으로 아가씨는 우고넬의 짐 속에 귀한 은잔을 몰래 넣어두고 도둑으로 고발을 하였다.

재판정으로 끌려간 청년과 그의 부모는 결백을 주장했으나 끝내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을 기다리게 되었다.

절망에 빠진 그의 부모는 순례를 계속하며 산티아고 성인에게 죽을 운명인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들은 귀로에 “산티아고 성인의 자비로 아들이 살아있으니 염려 말거라”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아들이 살아있다는 메시지를 듣고 기쁨에 찬 부모는 한달음에 재판관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전했다.

마침 닭고기 요리를 앞에 두고 저녁식사를 하려던 재판관은 그들의 말에 조롱하듯 답했다.

“당신 아들이 살아 있다면 내가 먹으려 하는 요리된 이 닭들도 살아나겠소.”

그러자 놀라운 기적이 벌어졌다. 식탁 위의 구운 닭이 살아서 날아올랐던 것.

누명을 벗고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 청년이 다시 이곳에 들러 야곱상 탑 위에 닭 조각을 세웠는데 그 조각품은 현재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던가.

또한 산토 도밍고 재판관들은 청년의 결백을 믿지 않고 유죄를 판결한 잘못에 대한 속죄의 뜻으로 몇 백 년 동안 굵다란 밧줄을 목에 걸고 재판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 한다.

 

 구운 닭이 되살아난 신비로운 기적은 이후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해마다 닭을 앞세워 작은북과 함께 행진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에스텔라에서 부르고스로 나는 냅다 점핑을 했기에 그냥 통과해 버린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란 지방이다.

대신 레온을 비롯 각처에서 수탉을 만났으니 스페인 어디나 지역마다 닭과 연관된 전설이 흔하다는 얘기겠다.

한국에서도 동해안을 가보면 수로부인 전설을 각 지자체마다 끌어다 붙여 관광자원으로 상품화시켰듯이.

모든 순례자들은 여행 중에 수탉 우는 소리를 들으면 좋은 징조라 여긴다.

농촌마을을 연속으로 지나가게 되니 길손 누구라도 닭 훼치는 소리건 길게 뽑아대며 우는 소리건 다반사로 듣게 된다.

이 또한 카미노 데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 행운과 축복이 함께 하리라는 암시를 은연중 각인시키려는 의도?

의도 같은 건 어쨌든 스페인에서 내가 유독 자주 계란을 샀던 이유가 있다


 닭장에 가둬 키운 닭도 아닌 데다 자연 속에서 암수 섞여 살면서 알을 낳았으니 틀림없는 유정란, 해서 기회 닿는 대로 사서 먹었다.

프랑스 순례자들은 길을 걸으며 닭의 깃털을 모았는데, 그게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부적같이 여겼던 모양이다.

 폴란드인들은 들고 다니는 지팡이 끝에 빵 조각을 얹어 닭에게 주면서 닭이 빵을 쪼아 먹으면

성공적 순례가 될 거로 믿었다니, 따지고 보면 독실한 신앙심의 저변에도 미신적 요소가 없잖아 의외로 많은 듯.

자존심 확실하고 용맹스러운 수탉은 정의의 표징으로 중세 이전부터 여러 국가가 선호했던 동물 중 하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한 다음날 첫새벽의 수탉 울음소리는 너무도 잘 알려진 얘기.

그 외에도 포르투갈 인들은 믿음의 증표로 수탉 장식물을 집안에 두었으며 프랑스에서는 독일의 독수리에 끝까지 맞서는 저항의 표상으로 수탉을 내세웠다고 한다.

 사실 수탉은 외관부터가 멋진 게 위풍당당한 풍모로도 한몫한다.

 가족을 보호할 양으로 서슬 퍼렇게 깃털 곧추세우고 위세를 펼칠 때의 아우라야 말로
가히 주변을 압도하고도 남는 장관을 보여준다.

수탉은 위엄차게 내지르소리로 꼭두새벽부터 밉상을 떨며 아침 기상을 재촉하는 신호를 보낸다.

유년의 뜰에 남아있는 풍경 하나 건져보면 늘 거기엔 구구거리는 암탉과 병아리 그리고 유난히 탐스럽고 윤기로운 깃 으스대는 수비대장 수탉이 있다.  

스페인 수탉이나 한국의 수탉이나 생김새며 우렁차게 꼬오끼요오~길게 빼는 소리도 똑같다.

다만 자연산 닭이 많던 스페인과 달리 한국엔 울긋불긋 토종닭 구경하기가 쉽잖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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