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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무량화
May 13. 2024
스스로 옷을 벗는 나무
카미노 스토리
갈리시아 지방을 지나는 동안 날씨는 대체로 습습하고 선선했다.
자주 비가 내렸으나 언제 그랬냐 싶게 금방 말짱 갠 하늘에는 구름장 푸짐히 드리워졌다.
비가 잦은 덕에 숲 무성했으며 나무 밑동마다 이끼 두터이 끼어 있었다.
춥도 덥도 않은 알맞춤한 기온, 나무그늘까지 있으니 걷기에는 아주 그만인 조건이었다.
풀 내음인지 나무 내음인지 기분 상쾌하게 이끄는 향기가 사방 숲에서 번져왔다.
바람 한자락 스치고 지나가면 그 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다른 감각보다 유독 후각이 발달한 편이라 냄새에 퍽 민감한 나.
멈춰 서서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신선한 내음의 출처를 좇아 근처 숲을 살폈다.
향방을
따라가 보니 어떤 나무에서 향이 풀려나오는 듯 하기에 버들잎처럼 길쭉한 이파리를 따서 비벼보았다.
온 숲을 향기롭게 적신 그 나무가 틀림없었다.
녹색
숲 속에서 사람들은 심적 안정을 찾으며 자연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그와 같은 영향 때문일 터이다.
유칼립투스(Eucalyptus), 캘리포니아 가로에서도 흔히 만났고 남미 페루에서도 본 바 있는 나무다.
여태껏 알고 있던 유칼립투스 나무와는 수형이 영 다르기에 다른 수종인 줄 알았는데
그 나무는 유칼립투스였다.
그간 보아왔던 유칼립투스 나무는 오종종한 데다 이리저리 비틀어진 볼품없는 나무였다.
유칼립투스 품종만도 700여 종이라니 과문 탓에 금방 알아채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처럼 잘못 알거나 모르고 대충 지나간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세상은 그만큼 너른 데다 희귀한 거 천지다.
유칼립투스만 해도 높이가 백 미터에 이르는 늠름한 거목도 흔해 건축자재나 펜스로 또는 전봇대 감으로 쓰이며
진
홍색과 호박색(琥珀色)을 띄는 목재는 명품가구를 만든다는 건 후에 알았다.
메마른 황야의 평원에서도 잘 자라는가 하면 산간 지방의 안개 잦은 환경에서도 무성하게 자라는 나무.
땅바닥이 갈라질 만큼 건조한 지역에서도 뿌리에 많은 양의 물을 저장하는 능력 덕에 능히 견딘다는 그 나무.
농업과 목축업만이 아니라 갈리시아 지방은 기름진 토양 덕에 임업이 성한 지역이다.
당연 산림녹화사업에 최적인 이런 수종에 주목하지 않았을 리가 없으렷다.
길을 걷는 동안 여러 곳에서 열을 지어 고르게 가꿔진 조림지를 수도 없이 보았다.
멀찍이서 봤기에 수종을 몰랐는데 아마도 거의 유칼립투스가 아니었나 싶은 것이,
길가
산지마다
쭉쭉 곧게 뻗은
나무
가 밀밀하게 숲을 이뤄 향을 풀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한하게도 유칼립투스는
허물 벗듯 스스로 표피를 벗겨내 매끄러운 하얀 속살을
드러내는 나무였
다.
하도 깔끔해 대패질은커녕 별로 다듬을 것도 없으니 벌목해서 그대로 당장 전봇대로 써도 됨직했다.
죽죽 벗겨진 나무껍질은 초가 한옥 짚으로 이엉 얹듯 지붕 위에 덮는다 했다.
전에 페루에서 그 얘길 들은 바 있는데 바닥에 떨어진 표피를 보니 그럴싸하다 싶었다.
속성수인 데다 탁월한 생존력을 타고난 나무라서 아메리카며 아프리카, 유럽 등지에서 다투어 유칼립투스를 들여다 심는다더니 갈리시아 지방 또한 이 나무를 조림수종으로
택했나 보다.
캘리포니아나 페루에서 본 유칼립투스는 외양이 지저꺼분하고 볼품없는 나무였는데
이 지역 유칼립투스는 삼나무처럼 똑 곧은 데다 키도 무척 크게 자랐다.
질 좋은 건축재에다 펄프의 원료로 쓰이는가 하면 고유의 휘발성 유기화합물에서 에센스 오일을 추출한다는 나무.
습기를 흡수해 들이는 특이 성질도 있다 하니 이용 가치가 여러모로 다양한 경제수종이겠다.
유칼립투스 에센셜 오일은 호주에서 예전부터 감기나 독감 증세 외에도 근육과 관절 통증에 전통 약제로 쓰였다 한다.
천연 항균제이자 천연 진정제로 알려져 피부질환, 화상, 수포, 피부감염에도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다.
요즘엔 정신적 긴장을 풀어주는 스트레스 완화제로 또 향수나 피부 보습 화장품의 원료로도 사용되는 등
용처가 매우 다양한 유칼립투스다.
모든 유칼립투스 나뭇잎마다 오일을 분비하는 샘으로 덮여있어 우리 건강에 도움을 준다니 당연 식재를 장려할만한 나무겠다.
호주에 널리 분포돼 있는 상록 교목으로 코알라와 주머니 날다람쥐가 그 잎을 먹고 산다는 나무가 유칼립투스.
캘리포니아에도 이 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이 몇 군데 있다.
태평양 연안을 따라서 이동하던 멋진 제왕
나비 떼가
유칼립투스 나무에 매달려
독특한 모습으로 겨울을 나며 장관을 이룬다고 들었다.
갈리시아의 카미노 길을 걷는
동안, 꺾인 그 나무줄기를 보면 이파리 따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향을 음미했다.
지금도 손끝에서 묻어날 것 같은 그 신선한 내음........
카미노 길이
다시금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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