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운이 좋았다.
제지기 오름과 섶섬 사이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
간밤 대보름달 또한 크기가 엄청 컸었다.
오늘은 새섬을 둘러싼 암반에 고인 물을 사진에 담을 목표점 뚜렷해서 발걸음 날듯이 가벼웠다.
며칠 비바람 치며 궂었던 날씨 화창하게 개인 바닷가.
강우량 그간 제법돼 새섬 둘레 갯바위 표면의 오목한 부분에 빗물이 모이면서 물 고임 형태도 다채로웠다.
작은 물 웅덩이 현상은 rock pools/pothole pools다.
며칠 전부터 글감으로 궁굴려왔는데 바다빛 우중충해 날씨 맑길 기다리며 미뤄온 터였다.
사진 찍는데 한창 신명이 올라 섬 둘레를 빙 돌았다.
한 바퀴 돌면 이십여분 걸리는 길인데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올 들어 처음 일터에서 섬휘파람새 소리까지 들었다.
좋을시고! 금맥 왕창 터질 듯 이미 흡족해진 심사.
새연교를 건너기 전, 먼저 서귀포층에 들렀었다.
다시금 서귀포층에 대한 복습 야물게 다져뒀다.
이는 새섬 암석 위에 고인 물을 그간 줄곧 접하면서 든 뭇 생각들을 정리해 세우기 위함이었다.
서귀포층(Seogwipo Formation)은 새연교 입구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해안단애를 따라 절벽면에 노출되어 있다.
해안 절벽에서 하부 36미터는 서귀포층이며 그 위로는 두꺼운 조면안산암이 덮여 송림 우거진 풍치 멋지다.
서귀포층은 신생대 말기에 형성된 지층으로, 두께가 약 100m에 이르며 주로 사암, 이암, 셰일 등의 쇄설성 퇴적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최하층은 과거 얕은 바다 환경에 의한 퇴적물, 상층은 화산쇄설물이 혼재된 특성을 보이는 지층대다.
여기에 다양한 조개류 화석이 포함돼 있는 특수 지층으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패류화석만이 아니라 제주도라는 화산섬 형성 과정이 서귀포층 속에 타임캡슐처럼 저장돼 있어서 학술적으로도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 이곳.
화산퇴적층인 서귀포층은 특히 제주섬에 물을 제공해 주는 아주 소중한 지층이다.
약 100만 년 전 섬의 탄생 초기, 육상 화산활동 전에 수중 폭발로 쌓인 퇴적물은 물이 잘 통과하지 못하는 지층으로, 지하수를 가두는 역할을 해주는 서귀포층이다.
현무암과 달리 물이 잘 새어나가지 않는 퇴적암 층이라 빗물을 스며들지 못하도록 막아서 용암층 사이에 가둬둠으로써, 용천수를 품는 역할을 하였다.
바로 제주 생명수인 그 용천수를 담은 지층인 특수 지질구조를 육안으로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여기다.
서귀포층은 이곳 절벽에 36미터만 노출되어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약 100미터 두께로 섬 전역에 지하로 연결되어 깔려있다고 한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천지연 폭포며 새섬에서 확인되는 서귀포층이다.
벼농사가 가능한 바로 이웃동네 하논을 비롯 쇠소깍 역시 같은 범주에 속하겠고.
우리가 현재 음용하는 삼다수는 30여 년 전 내린 빗물이 화산암층(현무암, 화산송이 등)을 통한 오랜 자연 필터링 과정을 거쳐서 만나게 된 물이란다.
지난여름 밤마다 새연교는 빛과 음악의 폭포를 화려하게 쏟아냈다.
새연교 금토금토 행사는 매번 펑펑 폭죽 터뜨리며 명멸하는 불꽃놀이를 펼쳤다.
새섬에선 몽환적인 빛의 축제가 열렸다.
숲 속은 수천의 반딧불이 유영하는 조명으로 환상의 세계를 연출해 냈다.
무지막지하게 푹푹 찌던 그 여름, 피서 겸 친구들과 여러 차례 새섬을 찾았다.
까만 밤, 바닷바람 시원스러운 새섬에 들어 서쪽 방향으로 걷다가 개구리와 맹꽁이 소리를 동시에 들었다.
처음엔 환청이려니 했다.
조그만 섬 어디에도 개구리가 살 만한 여건 아니므로.
다음 날 같이 온 친구에게 귀 기울여보라 하니 틀림없는 개구리 소리 맞다고 했다.
민물이 있을 리 없는 섬이라 아무래도 희한했다.
어디에다 투명한 우무질에 싸인 알을 낳았기에 올챙이 부화시켜 다리가 나오고 꼬리 짧아지며 개구리가 생기게 됐는지...
그럼에도 이 섬에 개구리는 분명 살고 있었으며 개구리만 사는 게 아니라 들고양이도 흔했다.
갯바위에 낚시꾼이 끊임없이 드나드니 생선 대가리라도 먹잇감은 얻겠지만 고양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은 누가 조달해 주나?
길고양이가 흔한 부산 해안가 방파제에서 찍은 퉁실한 길냥이들 사진을 딸내미에게 보냈더니, 내게 걔네들 물배달 임무를 단디 맡겼다.
살찐 냥이가 아니라 신장에 병색 깊어 부기 심하니 해안 산책 시 깨끗한 물을 갖다 주라고.
그래서 안다.
사막 고양이의 후예로 목마름을 잘 느끼지 못하고 물을 적게 마시는 고양이이지만 고양이에게 물은 건강과 직결되는 필수 요소라는 것을.
작디작은 신장이라 만성 탈수와 신부전 방광염 등의 질환에 취약한 고양이인데 물은 어디서 구하지?
바위에 고인 물이랬자 tidal, 곧 조수가 밀려왔다 갇힌 바닷물이려니 했는데 이 지대는 상당히 높직했다.
태풍때 외에는 파도가 올라올 지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바닷가 물=해수란 등식만 입력돼 있었으니.
내심 그래서 걱정했는데... 그러다 새섬 출입이 끊기며 까무룩 잊고 지냈다.
올 한해 도립공원 일터인 새섬에 다시 와서야 대낮에 접한 숲의 조경물에 대실망을 했고 새삼 길냥이가 먹을 물 생각도 났다.
이제야 비로소 확인이 됐다.
바로 이 섬 갯바위엔 민물, 곧 신선한 빗물인 담수가 처처에 고여있더라는 것을.
도립공원으로 매일 출근한다더니 서귀포층이며 개구리며 길냥이 사설만 길어졌고 도대체 본론은?
해양공원에서 안내나 해설사를 하느냐고?
아니다.
명칭도 엄중한, 바다를 지키는 순찰대원이다.
여학교 다닐 적에 걸스카웃 대원은 해봤지만 이 나이에 무슨 대원?
바닷가 주변은 경관 훌륭한만치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으려 갯바위에 올라가거나 위험지역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계도가 필요하다.
그밖에 기상상태에 따른 적절한 관광지를 알려주거나
새섬공원 주변의 포토죤에 대한 팁도 나눈다.
부탁할 경우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시니어클럽에서 고은층을 위한 일자리를 다수 마련, 이태에 걸쳐 다문화가정 한국어 교사를 하며 지냈다.
그 외 노인 일터를 관리하는 역할과 곶자왈 매니저도 맡아봤다.
시청 서포터스를 하면서도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루 세 시간씩 하는 짧은 근무라서 가능했다.
심신 건강만 하다면 팔십 넘어서도 일을 하려고 한다.
제주 관내, 일하는 노인층 중 105세 최고령자도 있으며 백세 이상자가 다섯 분이나 있다니 건강 허락될 경우 마다할 이유가 없을 터.
목적이 있는 삶을 살고자 평생현역으로 사회 속에서 일정 역할을 갖고 활동하길 원하며 그 점은 평소 나의 지론이기도 하다.
매일 일정시간에 목적을 가지고 밖에 나갈 수 있게 하는, 할 일이 있고 갈 곳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맡은 임무가 기다리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가 있어서 삶의 탄력을 느끼게 됨도 바람직스럽다.
시간을 쪼개 쓰는 재미에다 책임감에 따른 약간의 긴장감 역시 쫄깃해서 좋다.
고은층에게 일자리는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사회적 소속감과 정서적 교류 기회를 제공하므로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절대 필요하다고 본다.
내 역할이 있다는 것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핵심적인 요소이므로.
역할과 자리, 위치가 주어지면 "나는 아직 쓸모가 있는 존재"라는 가치 확인이 되며 자긍심 또한 높아진다.
일부러 작정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퇴근을 걸어서 하니 하루 만보는 저절로 채우게 된다.
하체근육 건강을 위한 걷기는 전자동, 바닷가 명상도 해보고 매일 여러 운동 골고루 하다 보면 세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활기찬 삶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바른 자세로 품격 있게 늙어가기 위해서도 적당한 일감은 있어야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것. 활동을 통해 자기를 증명해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게 되는 거 아닐지.
일이 있어서 역할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