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날 산방산 부처님 전에

by 무량화


오늘은 음력 1월 15일로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정월 대보름날입니다. 상원(上元)이라고도 하지요.

정월대보름이면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기 때문에 한 해 중 최고로 크고 밝은 달을 볼 수 있는 날인데요.

대표적인 세시 명절의 하나인 이날.

대보름날 아침 일어나서 밤 호두 등 부럼을 깨야 일 년 내내 부스럼도 안 나고 이가 튼튼해진다 하였고요.

한 해 동안 좋은 소식만 듣고 귀 밝아지라고 귀밝이술을 어른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도 조금씩 마셨지요.

대보름날이 되면 아홉 가지 나물을 마련해 오곡밥 등 시절 음식을 나누었는데요.

오곡밥 아홉 그릇을 먹는 날이자 나무 아홉 짐을 져오거나 우물물 아홉 동이를 길어오기도 했대요.

이건 한 해를 부지런히 일하며 살라는 뜻이라네요.

저녁이 되어 달이 떠오르면 동산에 올라가 달맞이를 하며 가족의 건강 등 한해 소원을 빌었으며 강강수월래 모둠춤도 흥겨웠지요.

전답의 해충을 없애기 위해 들판에서 쥐불놀이도 하고 달집 태우기 등 시절 놀이를 즐겼고요.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농악대가 풍악을 울리면서 마을을 돌았어요.

윷놀이 줄다리기 지신밟기를 하며 온 마을 사람들이 축제처럼 한데 어우러지는 날이 정월 대보름이었지요.

새해 첫 보름달을 맞을 수 있겠나 궁금해 일기예보를 살피니 서귀포는 내동 흐리므로, 대보름 만월을 기대하긴 어렵겠어요.


날씨가 괜찮다 해도 이번 대보름 달은 개기월식에 불러드 문이라니 휘영청 푸른 달은 아니겠네요.


그래도 설날 지나서 첫 번째로 맞는 큰 명절인만치

유의미하게 보내고 싶었지요.


하여, 산방산에 올라 마음 정결히 가다듬고 왔습니다.


산방산에는 산방굴사가 자리하고 있거든요.



산방산 중턱의 천연 석굴 사찰인 산방굴사는 기도처이기도 한데요.


고려시대 혜일스님이 도를 닦던 토굴로, 안쪽에 근엄한 석가모니불 정좌해 계신 석굴 법당이랍니다.


소원을 빌면 암벽 석굴 안에 모셔진 부처님이 한 가지는 들어주신다네요.


소망하는 바 누군들 없을는지요.


경사진 산방굴사 계단길을 올라가며 오래전 이 산길 걸었던 두 어른을 떠올렸습니다.


조선조 추사는 대정 유배 시에 스스로 유마거사(재가 불제자)라 칭할 만큼 불교에 심취, 산방굴사를 자주 찾았다지요.


유배 와있는 벗을 위로하기 위해 해남에서 험한 바다 건너 세 차례나 제주를 찾았다는 다성 초의선사는 산방굴사에 6개월 여 머물며 수행을 했다는데요.


이때 두 사람은 차를 나누며 학문과 불교에 관해 심오한 철학적 대화를 나누었다고 해요.


특히 추사가 유배처에서 아내의 부고를 들었을 때, 초의선사는 주저 없이 바다를 건너와 그와 슬픔을 공유했지요.


이에 추사는 편지를 통해 "자네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며 고마워했답니다.


그런가 하면 "차 시절이 아직 이른가, 아니면 따고 있는 건가? 몹시 기다리네."라며 차 재촉하기도 했다는 두 분 사이의 서찰을 통해 사십 년 넘게 이어진 우정의 깊이가 느껴졌어요.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써준 '반야심경' 등의 글씨가 전해지며, 다선일미(茶禪一味) 차와 선은 하나라는 정신으로 세운 두 거장의 고담한 교류.


일상 속의 도(道), 차를 마시는 것이 곧 수행이며 깨달음의 경지가 동일하다는 뜻의 다선일미 아닌가요.


그런 생각을 염주알 굴리듯 궁굴리며 오른 산방굴사는 늦은 시각이라 적요에 잠겨있었습니다.



종일 구름 어지럽던 일기인데 일몰 무렵의 서녘하늘은

의외로 눈부셨습니다.


산방굴사 아래 군집한 여러 절집 지붕 너머로 스러지는 태양은 하루 내내 못다 한 역할 아쉬운 듯 황금빛 광휘로웠지요


미동도 하지 않는 풍경을 바라보던 그 순간, 뎅그렁~ 여섯 시를 알리는 저녁 종소리가 누리에 퍼졌답니다.


축복이듯 스며드는 범종 소리는 경건하면서도 맥놀이 긴 여운 되어 가슴을 평온하게 다스려주었지요.


산방굴사에 이를 때까지 스러졌다가 되울리는 종소리와 동행하며 걷노라니 불은(佛恩)의 가피 은혜롭기 그지없었어요.


석굴 법당 안은 곳곳에 밝혀둔 촛불로 따스하도록 환했답니다.


마음 같아선 백팔배 사뿐 올리고 싶었지만 산그림자 짙게 내린 시각.


지난가을 결혼한 손녀가 아기를 가졌다는 기쁜 소식 들은 터라 새 생명을 위해 기도를 바쳤습니다.


손녀는 말했지요.


할머니가 제 뿌리가 되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요.


손녀를 처음 안아보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손녀가 한 생명을 품고 또 다른 봄을 기다린다니 얼마나 한 감격인지요.

손녀 안에 작은 심장이 함께 숨 쉬는 기적이 이루어졌다는 것, 엄마가 된다는 건 조금 더 강해지고,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길이라 했어요.

손녀가 받은 축복 위에 또 한 겹의 축복을 얹으며 몸은 평안하고, 마음은 밝고, 아가는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기원했습니다.


삼배 올리고 내려가려는데 학생 형제가 급하게 도착해 약수를 마시더군요.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기념사진 한 장 부탁한다고 했지요.


학생을 따라 산길 내려오는데 둥지에 모여든 까치가 깍깍거리며 요란 번쩍하게 축하해 주었답니다.


행운을 가져온다는 길조인 까치소리라 한층 기분이 고무되어, 돌아오는 내내 기쁨으로 입 벙글어졌어요.


대정마을 바굼지오름(단산)이 어둠속에 돌올히 떠으르고
9:15 현재 초승달 모양,, 오늘밤은 개기월식으로 레드문이라는데?
10:30 현재 은쟁반같이 둥근 대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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