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유일무이, 유엔묘지에 빚진 대한민국

by 무량화

정결한 젊은 영혼들의 넋인 양 순백의 매화 꽃잎 휘날리고 있는 오후. 부산 살 적에 두어 번 와본 적이 있었던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했다. 전에는 삭막한 느낌이 드는 공간에 황량스레 묘비만 서있었는데, 그곳 역시 십 년이 두 번 겹치는 동안 몰라보게 변했다. 자리도 드넓게 확장된 데다 새로운 조형물도 늘어났으며 녹지가 아주 잘 정비돼 있었다.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정문 건물만은 그대로라 반가웠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산화한 전몰장병들의 의로움과 눈물을 상징한 새하얀 정문이다. 입구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추모관도 전 그대로였으나 그 외에는 거개가 낯선 풍경이라 잠시 어리버리해졌다. 공원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조화로이 수목 어우러진 정원과 산책로 잘 가꿔진 조경은 훌륭했다. 겨잣빛 하늘거리는 녹지의 수양버들 춤사위만은 평화로웠으나 유엔군 위령탑, 기념관, 무명용사의 길,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 등의 조형물들은 경건한 분위기를 한층 돋구웠다.



지금은 학생들의 국가관 정립 교육과 국군장병들의 정신교육장인 이곳. 참전 우방국에서 방문한 분들의 참배 장소로, 또 지역주민들의 친숙한 산책지로 다양하게 활용되는 유엔 기념공원이다. 6·25 동란 참전국과 대한민국의 국기, 유엔기가 연중 게양되어 있는 상징구역을 비롯해 캐나다, 프랑스, 터키, 영국, 미국 등 전사자들의 주묘역이 전면에 배치돼 있었다. 또한 전 묘역을 경건하게 유지 관리하기 위한 완충 공간인 녹지구역을 적절히 조성해 놨다. 월요일인 이날도 단체 방문팀이 있었는데, 세종 1년 최초로 대마도를 정벌한 이종무 이름을 딴 해군 함정의 장병들이 교육받는 중이었다. 일반 시민 역시 우리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분들을 기리며 묵념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국동란 당시야 말할 것도 없고 1955년도 조차 GNP가 60달러에 불과했던 최빈국이, 기적처럼 70여년 만에 GDP 3만 6천 달러라는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룩한 대한민국. 이렇듯 자랑스러운 성과를 일궈낸 저력으로 모쪼록, 이념갈등 없는 국민 통합의 계기만 마련된다면 앞으로 우리의 잠재력은 최대로 발휘될 줄 믿는다.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 UNMCK는 유엔묘지라 했고 지금은 유엔記念公園이라 불리는 이곳. 한국전에서 전사한 유엔군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으며 1951년에 만들어졌다. 1950년 유월,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유엔군 산하 16개국이 전투 병력과 장비를 지원하며 참전하게 된다. 그밖에 병원선, 의료진, 의약품 등을 지원한 의료 지원 5개국, 물자 지원과 물자 지원 의사를 표명한 44개국 등을 포함하여 총 63개국이 대한민국을 방어하기 위해 참전하였다. 전국 곳곳의 격전지에서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면서 목숨을 잃는 유엔군이 늘어났다. 이에 가매장 형식의 임시 군사 묘지를 각처에 만들었다. 밀고 밀리는 전쟁터에서 전사자는 늘어났으나 거친 지형에다 불발탄과 부비트랩의 위협 등으로 유해를 봉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1950년 6월 25일~ 1953년 7월 27일까지 참전 17개국(의료지원국 중 노르웨이 포함)의 젊은이 40,896명을 희생시킨 한국동란이었다. 낯선 타국에서 숨진 자녀 소식 접하고 비통에 빠진 어버이인들 또 얼마나 많았으랴. 풍전등화 같았던 우리나라는 이처럼 자유우방국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빚을 졌다. 그 고마움 되새겨 잊지 않으며 은혜 갚는 길은 무엇일지 한국인이라면 모두 생각해 볼 일이다.



당시 요코하마에 주둔하고 있던 미 육군 유해발굴감식단인 영현등록부대(Graves Registration Company)는 1951년 1월 18일 부산 대연동 당곡 마을에 유엔군 묘지를 조성했다. 대전 대구 인천 밀양 개성 등지에 가매장되어 있던 미군 유해와 유엔군 유해를 4월부터 여기에 매장하기 시작했다. 매슈 리지웨이 대장을 비롯 약 1만 1천 구가 그때 유엔군 묘지에 묻혔다. 한국 측은 이 터를 유엔에 영구 기증하고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건의했다. 유엔총회 결과 이곳을 공식적으로 유엔 기념 묘지(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로 조성하여 유엔이 영구 관리하며 토지에 불가침권을 부여하기로 결의했다. 그 후 1974년, 유엔 기념 묘지의 관리는 유해가 묻힌 11개국으로 이루어진 유엔 기념 묘지 국제관리 위원회(Commission for the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CUNMCK)로 이관돼 지금에 이른다. 유엔기념공원을 돌아 나오며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거듭거듭 확인하게 되었으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 그 이전에 모쪼록 자유대한에 참 평화가 정착되길 기원하였다.



*전투 지원 (16개국): 미국, 영국, 터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콜롬비아, 그리스, 타이, 에티오피아, 필리핀, 벨기에, 룩셈부르크.

*의료지원 (5개국): 노르웨이,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스웨덴.

*물자 지원 (39개국): 과테말라, 도미니카 공화국, 서독, 라이베리아, 리히텐슈타인, 레바논, 모나코, 멕시코, 버마, 베네수엘라,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스위스, 아르헨티나,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이란, 이집트, 인도네시아, 일본, 아이티, 에콰도르, 오스트리아, 우루과이,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자메이카, 중화민국, 칠레, 쿠바, 캄보디아, 코스타리카, 파나마, 파라과이, 파키스탄, 페루, 헝가리, 교황청

*물자 지원 의사 표명 (3개국): 니카라과, 브라질, 볼리비아.


한국전쟁 기간 동안 (1950 년 6 월 25 일 ~ 1953 년 7 월 27일), 참전 22개국 중 17개국 (의료지원국 중 노르웨이 포함)에서 40,896 명의 유엔군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1951~1954 년 사이에 이곳 유엔기념공원에는 유엔군 전사자 약 11,000여 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벨기에,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그리스, 룩셈부르크, 필리핀, 태국 등 7 개국 용사의 유해 전부와 그 외 국가의 일부 유해가 그들의 조국으로 이장, 현재는 유엔군 부대에 파견 중에 전사한 한국군 중 36 명을 포함하여 11 개국의 2,309구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기념묘지의 면적은 14만 4,182m 2이며 최초 1만 1,000여 명의 전사자가 안장되어 있었으나, 이후 유가족이나 본국의 요청으로 이장이 되어 현재 2,309기(호주 281, 캐나다 380, 프랑스 46, 네덜란드 120, 뉴질랜드 32, 노르웨이 1, 남아프리카공화국 11, 터키 462, 영국 886, 미국 39, 대한민국 36, 무명용사 4, 비전투요원 11)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영국인 전사자들의 유해가 유난히 많은 것은 숨진 자리에 매장하는 자국 풍습에 따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