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상상, 하멜의 낯선 곳에서의 13년

by 무량화

오늘 오전과 오후에 받은 안전문자 내용이다.


제주 앞바다(제주남부 앞바다) 풍랑경보. 방파제 등 위험지역 출입 금지, 해안가의 낚시인, 야영객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세요. [행안부]


요 며칠 내내 날씨는 개갈 안 나게 흐렸다 비 왔다 심통만 부렸다.


풍랑경보가 발효된 오늘은 매우 바람 심하고 빗발 거칠다.


하릴없이 창밖만 내다보다가 불현듯, 비바람 치는 날 풍랑 심해 표류하던 배 한 척이 제주에 표착했다는 역사 속 사실이 상기됐다.


이는 1653년 8월 16일 암초에 부딪쳐 난파된 , 하멜이 타고 온 네덜란드 상선 스페르웨르(Sperwer)호다.


전에는 산방산 아래 연대를 거쳐 용머리해안으로 접어드는 길목에 버티고 섰던 커다란 목선.


고증에 따라 당시 표착지는 도구리알 해변, 지금의 대정읍 신도리로 밝혀져 용머리해안 시설물은 재작년 철거됐다.



외가에 누가 되는 맹랑 발칙한 상상일지 모르나 아무튼 오래전부터 들던 의구심 풀어보겠다.

혹시 가계의 먼 윗대에 서구인의 피가 섞이지 않았을까 하는 해괴망측한 망상 싱거이 펼쳐볼 참이다.

외삼촌은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고 인물도 뛰어났지만 유난히 하얀 피부였다.

시골에서 방앗간을 운영했으나 촌동네 다른 어른들과 달리 눈에 띄게 귀격인 상이었다.

물론 일본에 유학한 후광 덕도 있겠지만 분위기 자체에서 물씬 인텔리겐차의 도도함이 풍겼다.

아주 어릴 적에 뵌 외조부님도 빛나는 은빛 수염에 인물 훤칠하고 풍채 좋은 분이셨다.

외가는 의령 남 씨 가계다.

정묘호란 시 충장공 남이흥 장군의 의거를 기려, 일찍이 당진군 대호지면 전 지역과 정미면 일부를 사패지(賜牌地)로 하사 받아 씨족이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출가 전까지만 해도 당진 읍내에서 삼십 리 떨어진 대호지면 도이리에서 외가붙이는 실제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국가 민속 문화재 제21호인 남이흥 장군 유품을 전시한 모충관도 그곳에 자리했다.


그 후 삼일 만세운동에 앞장선 남상직, 남상락 할아버지 등을 추모하는 기념거리도 천의장터에 만들어졌다.



하늘 청명한 몇 해 전 산방산 아래 하멜 표착지에서 서른여섯 선원의 억류 내용을 읽어가다가 문득 외가 어른들이 생각났었다.

그 일만이 아니라 곰곰 따져보니 별나게 옅은 갈색의 머릿결이며 피부가 흰 스스로의 DNA에도 의아심이 솟구쳤다.


여태 머리 염색이란 걸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터다.


지금껏 흰머리가 별로 거슬리지 않는 색상의 머리는 아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어 운동장에서 여럿이 놀 때도 노리끼리한 머리로 아들은 눈에 잘 띄었다.

오래전 부산문학인들과의 야유회 자리에서다.

부산여대 정교수가 여류문인들 인상을 품평하며 구선생은 러시아계라고 분류를 했다.

작은 키에 몸집 왜소한 날 보고 러시아계라니 도무지 의아했던 기억 역시 떠올랐다.

쌍꺼풀 없는 넙데데한 얼굴에 몽고반점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한국인.

우리 민족의 주축을 이루는 혈통은 북방계와 남방계 양쪽에 뿌리를 두고 있다하니 그럴 수도 있긴 하겠다.

물론 다문화 가족이 흔한 요즘에야 단일민족 타령도 진부하긴 하다만.



지금은 사라졌지만, 산방산 아래 용머리 해안에서 읽은 네덜란드 선원 헨드릭 하멜(1630~1692)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1653년부터 13년 동안 조선에서 억류생활을 하며 보고 겪은 일들 소상히 기록한 하멜표류기를 남긴 그.

이 책을 통해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이란 나라를 유럽에 알린 하멜이다.

1600년대는 동인도 회사가 유럽의 해양권을 독점하다시피 한 네덜란드의 황금기였다.

스페인과 폴튜갈이 탐험지를 나눠먹다가 해가 지지 않는다는 영국에 제패당하기 이전이던 그 틈새다.

상선 스페르웨르호를 타고 나가사키로 항해하는 도중에 태풍을 만나 배는 난파당하며 제주도 해안에 표착한다.

배에 탔던 총 68명의 선원 중 28명이 죽고 36명만이 구사일생으로 해변에 떠밀려왔다.

겨우 목숨을 건진 그들이 해안에 텐트를 친 하룻만에 당장 소문이 퍼져 관아에서 수많은 병사들을 출동시킨다.

아무리 손짓 발짓을 해도 피차 의사소통이 될 리 없자 그들은 조선 병사들에게 친선의 뜻으로 포도주부터 건넸다.

<효종실록>은 난파선 안에는 목향(木香) 94포, 용뇌 4항, 녹피 2만 7천 장이 실려있었다고 기록했다.

당시 제주목사 이원진은 압송된 그들에게 비교적 우호적, 처우도 괜찮았으나 그들을 나라 밖으로 보내주진 않았다.

난파선에서 수습한 물건들을 목사는 순순히 일행들에게 되돌려주었고 겨울 겹옷 등을 넉넉히 제공했다.

하멜 일행은 이듬해인 1654년 6월까지 인조반정 후 귀양온 광해군이 거처하다가 그가 눈 감은 유배처에서 지냈다.

조정에 그간의 사실을 소상히 알려 비로소 통역관으로 박연이 내려온다.

박연은 자신과 같은 네덜란드인인 서양인들과 짧은 대화를 이어갔다.

"벨테브레이(박연)가 조선 표착 후 26년이 지나 모국어를 거의 잊어서 처음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동시에 하멜은 “훌륭한 통역자를 만나 우리의 불행한 처지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라고 <하멜표류기>에 남겼다.

한편, 정조 때 윤행임이 쓴 <석재고>에 박연은 하멜 일행이 네덜란드 사람인 것을 알고 “옷깃이 다 젖을 때까지 울었다”고 쓰여있다.

제주에서 한양으로 옮겨온 하멜 일행은 오매불망 북벌을 꿈꾸었던 효종에 의해 훈련도감의 포수로 배속되기도 한다.

임금 호위병으로 근무하던 중, 하멜 일행 중 두 명이 청나라 사신이 돌아갈 때 일본으로 건너가게 해달라고 청원을 넣는 돌발사고가 생겼다.

조정은 청의 문책이 두려워 사신에게 뇌물로 이 일을 무마시키고 하멜 일행을 1656년 3월 전라도 강진 병영으로 유배 보낸다.

강진에서 7년, 여수로 옮겨 온 지 3년 반 만에 그들은 구체적으로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마침내 그들 중 여덟 명은 1666년 9월 여수에서 배 주인에게 값을 곱으로 지불하고 배를 구해 타고서 조선 탈출에 성공한다.

하멜의 조선 생활은 제주도→한양→전남 강진→전남 여수로 옮겨 다니며 13년 28일 동안 이어졌던 셈이다.



배가 일본 규슈의 고토섬에 닿자 그들은 네덜란드 깃발을 꺼내 흔들었다.

일행은 나가사키에 있던 동인도 회사에 인계됐고 드디어 1668년 7월 20일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고국에 돌아간 하멜은 조선에서의 억류 기간 도중 받지 못한 임금을 청구하려고 꼼꼼하게 보고서를 썼다.

그 보고서가 바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그 유명한 하멜표류기다.

1670년 동인도회사 이사회는 그에게 15년 치 밀린 봉급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책이 출판되고도 이후 계속 동인도회사 회계사로 근무하다가 1692년 62세로 독신인 채 사망했다.

스물셋부터 청년기 내내 조선 땅에서 억류생활을 하다 고국에 돌아와 큰 자산가가 된 그는 왜 끝내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13년이란 세월 그것도 한창때인 젊은이가 조선 여인을 만나 순애보 같은 사랑을 맺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는가.

1663년과 1666년 사이, 유배처이지만 대체로 자유롭게 지내던 시기에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진 몇 몇 외인들은 또 어디로들 사라진 걸까.

그들은 효종에게 하사 받은 성씨인 남 씨 성도 가졌겠다, 조선말도 어지간히 통하겠다 그렇다면?

잔류한 일부는 강진과 여수에 정착한 뒤 조선 여인과 결혼해 태어난 자손은 후에 의령남씨 족보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의령 남 씨 가계도의 꼭짓점은 고려조의 남민(南敏)이며, 관조는 남군보(南君甫)이다.


그 후 사료에 오른 인물로는 조선개국공신인 남은에 이어 남이장군, 남이홍장군, 문신으로는 생육신인 남효온, 문인 남구만 등이 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란 시조를 남긴 숙종조 영의정이었던 남구만.


그분은 왜의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땅이라고 인정하는 서계(書契)를 받아냈으나 월경죄로 사형에 몰린 안용복을 사지에서 구하기도 하였다.


내가 들어 익숙한 항렬자는 외할아버지 대인 상(相)-우(祐)-기(基)-현(鉉)까지이다.


아무튼 하멜과 함께 서른세 명이 강진 병영으로 유배 왔다가 대기근으로 열한 명이 숨지고 나머지 스물두 명 중 8명 탈출, 나머지는 후에 송환됐다고 한다.

귀국을 거부한 그 외의 존재는 소재 불분명, 하여 비비람 심한 한낮의 백일몽, 허튼 꿈같은 얘기 중언부언 늘어놓게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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