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효과 만점인 광고를 이틀 연속 만났다.
어제는 버스 운전석 뒤편 노선정보판에 뜬 광고로, 오늘은 세바시 유튭의 한 스폰서 광고를 통해서다.
버스에서 본 광고는, 지난가을부터 서귀포 전역에 내걸렸던 '만다린 관세 폐지로 감귤농가 폭망! 미국산 만다린 수입 결사반대!' 같은 현수막을 떠올리게 했다.
감귤농가의 절박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 절박함은 자연히 목소리를 높이게 했고, 날 선 목소리로 인해 오히려 귀를 닫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광고는, 미국에서 수입하는 귤이란 직접언급은 없어도 넌지시 며칠 걸려서 바다 건너온 과일보다 제주에서 갓 딴 귤이 더 싱싱해서 맛 좋다는 내용이다.
상큼한 한라봉을 벗겨 한입 베어 물자 과즙이 뚝뚝, 싱싱함이 살아있는 영상은 침샘을 자극한다.
"수천 킬로를 건너온 과일과 오늘 아침 제주의 과일, 향이 다르고 신선함이 다릅니다. 제주 만감류는 지금이 가장 맛있는 시간, 멀리서 온 귤 말고 지금 제주의 귤, 제주가 키운 맛을 느껴보세요. 레드향, 한라봉. 천혜향."
이 같은 서귀포시의 광고문안은 각을 세우지 않은 조용한 메시지로 감성을 살짝 건드리며 호응을 유도한다.
관세전쟁을 정면으로 탓하거나 무엇을 금지하자고 외치지도 않았다.
설득은 논리의 힘이 아니라 절제의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거듭 하게 했다.
구구절절 설명하려 들지도 않았고, 옳고 그름의 저울을 들이밀지 않으며 전할 메시지는 다 건넸다.
그 조용한 문장은 논쟁 대신 감성의 현을 건드렸다.
굳이 신토불이를 들먹이지 않아도 눈짓 하나로 이심전심 수긍되고도 남는 멘트요 영상을 만들었다.
그래. 우리는 서귀포 맑은 햇살과 바람 속에서 농익은 감귤 싱그런 과육을 먹고살았지!
비요일이라 집에서 유튜브를 보다가 세바시 사이에 끼어든 TK?광고를 접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은 광고의 질도 선별하나? 싶을 만큼 그 광고는 프로와 격을 맞췄다.
잔잔히 스며드는 메시지는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다.
젊은 엄마는 아이가 커가는 장면 장면의 과정을 폰에 담아 저장한다.
몇 해 지나 아들이 폰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이르자 그 폰을 선물로 건넨다.
아기적부터의 모든 순간이 담긴, 이제는 자신의 폰.
새로이 출시된 신제품 폰보다 자신의 스토리가 순서대로 담긴 귀한 폰.
따순 일상의 체온과 삶의 결을 상기시키는 광고방식이 누구에게나 미덥게 다가오지 싶다.
영상은 아이가 폰 선물을 반기는 환한 표정을 수면의 파동처럼 동글동글 남겨놓았다.
묘하게도 그 표정이 마음에 오래 여운으로 남았다.
이 광고 역시도 전혀 강성 목소리가 아니었고
설명하려 들지 않으므로 가만히 가슴에 스며들었다.
보통 광고는 새로운 상품을 선보이며 시선을 유혹해 소비를 부추기곤 한다.
어떤 광고는 누군가의 슬픔과 아픔을 확대 현미경 아래 올려놓고 극대화시켜 호소하기도 한다.
자선이 마치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끌고 가거나, 맡겨놓은 듯 강압적으로 도와줘야 한다는 식의 광고.
눈물의 클로즈업, 비장한 음악, “그래야만 한다”는 단정적 어조로 밀어붙인다.
이런 경우 부담감 이전에 거부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마음은 방어태세를 불러세우고, 방어는 감동을 차단시켜 버린다.
외침으로만 다가오는 메시지는 어느 순간 피로감이 된다.
상대를 설득하려는 문장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문장은 설명을 덜어내고 신뢰를 더하게 한다.
조용한 광고는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에 내가 들어가 고요히 고개 주억이게 만든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효과 만점의 광고’가 아닐지.
강성의 메시지는 단호하지만 오래 남지 않고,
말랑한 메시지는 천천히 스며들어 오래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