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훠어이~~~
쬐끄만 참새들하고 날마다 눈싸움이다.
먹거리를 가지고, 치사하게시리.
올 가을에는 작년보다 텃밭 규모를 좀 줄이기로 했다.
그래도 밭을 만드는 과정은 똑같아서, 땀 흘리며 밭흙 삽으로 푹푹 파뒤집었다.
홈디포에서 끙끙거리며 큰 포대 거름 사다가 섞어 가을농사 준비를 야물딱지게 했다.
흙이불 아래 묻어둔 채소 씨앗들이 때가 되니 똑 고르게 솟아올랐다.
이쁘장한 고것들이 기특하고 신기해서 들여다보고 또 가서 보기를 아침저녁 수시로.
귀여운 새싹만이 아니라 생명 갖고 태어난 모든 어린것은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워 입가에 절로 미소 스미게 한다.
딸내미가 왔길래 구경도 시킬 겸 자랑도 할 겸 텃밭이 있는 뒤란으로 불러냈다.
헌데 일렬로 조르름 줄 서있던 것들이 지면에서 가뭇없이 사라져 버리고 희미하니 너저분한 흔적만 남아있다.
밭고랑에 바짝 다가가 자세히 살피다가 이런 고얀 것들! 허공에 대고 인상을 썼다.
낙엽 휘날리는 뒤뜰에서 웬일로 새들이 재잘거린다 싶더니 그간 오붓하게 샐러드 파티를 벌였었구나.
연둣빛 가녀린 탑을 쌓아 올리던 채소싹 연한 순들이 입맛에 딱 맞았던 모양이다.
달큰한 시금치가 제일 먼저 수난을 당했고 이어서 배추 상추... 쑥갓 아욱 갓은 별로인지 제쳐뒀다.
인기척에 놀라 휘리릭 나무 위로 날아간 참새는, 식사 후 냅킨으로 입을 닦듯 가지에 연신 부리를 씻어댄다.
느릅나무 가지 여기저기로 옮겨 앉을 뿐 멀리 날아가지도 않는 품새가, 사람 자취 떠나면 곧장 내려올 태세다.
콩닥콩닥 참새가슴, 겁도 많은 녀석들인데 신선하고도 보드라운 야채맛이 두려움마저 마비시켰나 보다.
전에는 괜찮았는데 작년 농사 때부터 새들이 청정채에 맛 들여 잔치판 펼치면서부터 소문 들은 온갖 잡새가 그악스럽게 텃밭으로 몰려드는 통에 새와의 전쟁선포 중이다.
지난봄에도 밭 한가운데 허수아비를 세운다, 빙 둘러 풍선을 띄워놓는다, 법석을 떨다가 멍이까지 보초로 내세웠다 경을 칠뻔 했다.
그래봤자 별 효과를 못 봤는데 해가 갈수록 새들의 극성스러운 작당질이 심해져 간다.
날마다 종일토록 새 쫓으며 밭만을 지키고 섰을 수야 없는 노릇으로, 아직은 신통한 대비책을 찾지 못했다.
가을 텃밭, 하루하루 부풀어가는 모습 지켜보며 대견해하던 내 일상의 싱그러운 놀이터였다.
갓 뽑은 채소로 쌈 거리 마련해 즐기던 부식공급처이자, 이웃들 더불어 나눔의 기쁨을 누리던 농사처다.
웬만하면 새랑 나눠먹을 텐데 초장부터 싹쓸이를 하니 이러다간 씨앗도 못 건지게 녀석들이 완전 거덜 내버릴 판이다.
떡잎 겨우 나온 걸 모지락스럽게 쪼아 먹어 몽둥발이를 만들어버리면 어쩌냐, 이 얌체들아!
치사하다, 치사해. 까짓 거 니들한테 다 양보할 테니 실컷 뜯어먹고 치와뿌라. 흥~
시침 떼고 돌아앉아있는 나무 꼭대기 참새한테 눈을 흘겼다.
바로 앞 전 봄이었다.
뒤뜰 채마밭에 장다리꽃 유채꽃 흐드러지더니 곧이어 즐기마다 씨앗 꼬투리가 실하게 맺혔다.
알이 통통해진 씨앗이 채 익기도 전인데 뭇새들이 몰려와 씨앗주머니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어찌 알았을까? 시각으로도 아닐 테고 후각도 아닌 먹이에 대한 본능적 이끌림일까.
먹거리인 줄 용케도 알고 떼거리로 마구 달겨들어 밭떼기 째로 아예 작살을 내려 드는 동네방네 새떼.
새들이 어찌나 극성스럽게 덤벼드는지 웬만하면 나눠먹으련만, 하도 알뜰살뜰 쪼아대니 밉쌀스러웠다.
동글하니 작은 배추씨나 무씨는 먹을만하다지만 뿔이 돋은 시금치 씨까지 먹어치우는 데는 어이가 없었다.
날이면 날마다 뒤란 텃밭에 온 동네 새떼가 모여 진을 치다시피 했다.
그냥 놀다 간다면 누가 말리랴만 허구한 날 거기서 먹자판을 벌렸다.
유채꽃 장다리꽃 시금치꽃, 꽃지고 씨 맺히자 새들이 연한 꼬투리를 쪼아 알맹이를 빼먹었다.
처음엔 밭두렁 뒤편에서만 거덜을 내더니 점점 앞쪽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래도 종자는 좀 남기겠지 싶었는데 날이 갈수록 새들이 늘어나며 밭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당하고만 있을 나도 아니었다.
못 입는 옷가지로 허수아비를 만들어도 보고, 반짝대는 풍선을 사다 띄워도 보고, 얇은 천으로 망을 씌워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떼거리로 모여든 새들은 씨앗 대궁에 앉아 맛나다고 재잘거리며 신나게 씨앗을 쪼아댔다.
워낙이 씨앗 대궁이 실해 내 키를 웃돌게 자란 데다 씨주머니도 아주 단단했다.
시효 지난 종합 비타민, 홍삼, 로열젤리와 오메가 3를 대야 물에 밤새 녹여 밭에다 뿌려준 덕인가.
암튼 지난 채소 농사는 제법 성과를 이뤘고 따라서 씨앗도 예년에 비해 풍성하게 맺혔다.
이번엔 종자를 알뜰히 채취해 채소씨 원하는 이웃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게 되었다 싶었는데.
이대로 두었다가는 새들이 씨를 다 먹어치워 채소씨를 건지기는 애진작에 글러버릴 판이었다.
궁리 끝에 멍이를 뒤란 텃밭 앞에다 보초를 세우기로 했다.
낮 동안만 새들 파수꾼 노릇을 시킬 생각이지만 햇볕을 피하게 집까지 바깥으로 옮겨다 놓았다.
새들이 근처에 얼씬거리기만 하면 멍이는 제 영역을 침범했다고 길길이 날뛰며 왕왕 짖어댔다.
효과는 제대로 나타났다.
가까스로 약간의 씨앗은 챙기게 됐다.
며칠 후 주말, 딸내미가 왔길래 자랑삼아 씨앗 건진 얘길 늘어놨다.
딸이 화들짝 놀라며 눈 동그랗게 뜨더니 속사포를 쏘아댔다.
엄마, 목사리 채워 멍이 묶어놓은 거 동물학대한다고 신고 들어가면 어쩌려고!
동물학대로 고발당하면 개를 빼앗기는 데다 벌금을 문다며, 엄포인지 뭔지를 속사포로 쏟아붓자 순간 후덜덜.
게다가 얼마나 먹겠다고 새랑 싸우냐는 핀잔에, 그깟 씨 종묘상에서 사면될걸 괜한 짓 한다는 지청구에 잔소리만 한 바가지 들었다.
멍해지며 #&% 엉겁결에 띵해졌다.
참말 미국법은 요상도 스럽지 뭔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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