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고물고물~곰실곰실~쏙 쏙~~ 장하면서도 찡하다.
작디작고도 여린 것이 힘은 항우장사로구나.
온몸으로 기어코 태산을 들어 올렸구나.
순간 심봉사 눈뜨는 대목이 떠올랐다.
청이가 버선발로 우르르르~ 부친의 목을 안고, 아이고 아버지~~ 자진모리로 이어지는 판소리처럼 극적이다.
놀라울 것도 없는데 여전 놀랍다.
새로울 것도 없는데 여전 새롭다.
그리하여 경외로운 자연의 신비에 거듭 머리 조아리게 된다.
이런 일이 바로 경천동지 할 사건, 생명 움트는 만큼 신기한 일이 달리 어디 있으랴.
연약하기 그지없는 순들이 어찌 저 무거운 흙덩이를 비집고 올라왔는지 신통방통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늦가을에 싹을 올리는 저마다의 생존방식이 놀랍기도 하다.
알에서 부화한 아주 자그마한 새끼 거북이 본능적으로 바다 향해 질주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듯 생명의 신비 앞에 숙연해지기도....
동시에 시조시인 조종현의 <의상대 해돋이>가 오버랩된다.
천지개벽이야/ 눈이 번쩍 뜨인다/ 불덩이가 솟는구나/ 가슴이 용솟음친다/ 여보게/ 저길 좀 보아/후끈하지 않은가.
동해에서 해맞이를 하며 읊은 시로, 실제 의상대에서 일출 장관을 맞이하노라면 누구라도 벅찬 감탄사가 자연스레 터진다.
그처럼 감격스럽게도 비로소 싹이 튼 거구나~
세상에나~오늘 드디어 이리 이쁘고도 여린 새싹이란 빈객을 맞았구나.
그간 조석으로 물 뿌려주며 눈여겨보아도 도통 소식 없던 시금치와 상추 새싹이 돋아났구나.
무와 동시에 상추 시금치 부추 들깨 아욱 씨들도 뿌렸는데 무 외에는 한 달이 넘도록 이상하게 기척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생명의 단비를 맞고는 시금치와 상추가 고개를 내밀며 연한 순들마다 fun~fun~귀여운 소리로 노래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지난봄에 묻은 호박도 어쩌자고 지금사 부스스 일어났는가 하면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부추 아욱 등 씨앗이 더 있지만.
씨 뿌린 솜씨대로 밭에다 연두그림을 그려 놓다니.
11월의 반가운 손님맞이, 새 생명맞이는 이쯤으로도 대견하니 고맙고 기쁘기만 하다.
하늘을 우러르며, 감사합니다, 빗님!!
혼잣소리를 하고는 새순들처럼 덩달아 기쁨에 찬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봄에는 씨앗 뿌려~노래가사가 아니라도 당연한 일로, 늦가을에 파종하는 건 마늘뿐인 줄 알았다.
그러니 4월에 이사오자마자 부지런을 떨었더랬다.
헌데 봄엔 하나마나라며 시월말쯤 채소씨를 뿌려야 한다기에 긴가민가했는데.
위도에 따라 파종시기도 이처럼 다르더라는.
여름내 불볕에 주욱 펴널어서 소똥거름을 일광 소독시키고 흙과 뒤섞어 판판하게 고른 다음 골을 치고 씨앗을 뿌렸다.
물론 온 동네 파리 불러 모으게 소똥 냄시 장난 아니었다.
계분도 거름으로 좋은데 미국 농사꾼 왕고참 멘토에 따르면 잡초가 더 난다기에 제외.
이처럼 시비 튼실하게 줬으니 새싹들 무럭무럭 자랄 터였다.
집에서 가꾼 올개닉 시금치나 상추를 친구들에게 나눠주면 얼마나 반가워할까.
야들야들 부드러운 채소라 샐러드거리로는 최고이니.
상추 시금치 알타리무 배추 아욱 갓...
내 놀이터 중 하나인 텃밭에 심은 채소들 종류다.
고맙게도 파종을 한 그날부터 건조한 사막 지대 날씨가 흐려지며 간간 부드러운 이슬비도 내려주고 소낙비까지 선물했다.
조석으로 물을 주기야 했지만 날씨가 부조해 줘 물 절약 측면에서도 여간 도움이 된 게 아니다.
싹이 텄는지 여부가 궁금해 날마다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뒤란으로 안부인사를 다녔더랬는데.
드디어 엊그제 연둣빛 연연한 소식이 온 거다.
유치원 어린이마냥 나란히 나란히 일렬로 줄을 서서 떡잎을 치켜들고는 반갑다며 그 조그만 손을 내밀고 있는 새싹들.
마치 알을 품은 씨암탉 둥지에서 스무날쯤 뒤 일제히 노오란 햇병아리가 오소소 쏟아져 나오듯이.
제 몸피의 몇 십배인 무거운 흙이불 비집고 나와 씨앗모자 채 벗지도 못하고 올라온 새싹들이 어찌나 이쁘고 대견스러운지...
일일이 머리 쓰다듬어주고 싶고 잔등 두드려주고 싶었다.
조물주께서 어련히 알아서 섭리하셨을까마는 저마다 쏘옥 고개 내민 새순들이 기특하기 짝이 없어서.
산모가 건강한 신생아를 뿌듯하게 지켜보듯 흐뭇한 기분으로 새싹들을 바라보자니 내동 얼굴엔 미소가 어린다.
해마다 밭에 씨를 뿌리고 난 다음 싹이 돋기 전까지는 기우 아닌 기우를 하며 은근 노심초사하곤 했다.
씨앗을 너무 촘촘히 배게 뿌린 건 아닌지, 흙을 과하게 두터이 덮은 건 아닌지, 종자가 잘 야물어 믿을만한 건지...
기우는 어디까지나 기우라며 보란 듯이 단단한 겉껍질을 가르고 건강히 싹 틔워 그간의 우려감을 단번에 불식시켜 주었다.
아기를 출산해 본 여인이라면 대부분 수태기간 중, 내심으로 오만 상상을 다 하며 튼튼하고 무탈한 아기일까 하는 염려를 한다.
요즘이야 임신을 하면 매달 복부 초음파 검사를 받지만 그런 검진시설이 없던 과거에는 너나없이 괜스레 불안해했던 게 사실.
그러니 응애~하는 고고의 성을 들으면 산모는 윗몸을 일으켜 직접 신생아 손발부터 두루 확인해 보기 마련이다.
화초 키우듯 정원 돌보듯 가꾼 텃밭 새순들은 나날이 하루 다르게 무장무장 자라서 얼마후면 녹색 풍성한 밭이 될 터이다.
그렇다. 청산에 녹수만 절로 절로가 아니다.
세상만사 다 때가 있으니 매사 조급증 내지 말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면 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