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이 고랑 되고, 고랑이 이랑 된다”는 속담이 있다.
이랑은 높직한 밭두둑을 이르는 말이고 고랑은 제 흙을 이랑에 넘겨줘 약간 파인 낮은 자리다.
여기서 이랑은 채소와 곡식을 잘 기르도록 보필하는 역할을 한다.
밭을 관리하는 사람의 발에 밟히게 되는 곳이 고랑이다.
올해 우리 집 텃밭은 고랑이 없어져 버렸다.
물론 처음 파종을 할 때는 가르마처럼 반듯한 고랑이 있어 적당한 간격의 이랑을 따라가며 씨를 뿌렸다.
파종 후 열흘쯤 지나 새싹이 돋기 시작했는데
시금치 씨와 갓 씨에 문제가 있었던지 도통 발아를 하지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다시 씨앗을 구해 이번엔 고랑에다 파종했다.
혹시나 먼저 이랑에 뿌린 씨앗이 뒤늦게 움이 틀지도 모르기 때문에 고랑에다 뿌린 것.
배추며 아욱 상추 등 남은 씨앗들도 훌훌 털어 남김없이 뿌려뒀다.
얼마 후 채소들은 이것저것 뒤섞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움이 텄고
텃밭은, 골은 물론 숨 쉴 여유도 없이 빡빡해졌다.
채소들은 질서 없이 뒤죽박죽, 배추 사이에 아욱 나고 알타리무 새새에 쑥갓 시금치 싹이 돋아났다.
나중에 묻어둔 마늘까지 여러 종류가 뒤섞여 어수선할 정도이며
고랑이 없어져 버렸으니 풀을 매주기도 어렵다.
거기다 밭 가장자리 채소는 새들이 쪼아 먹어 볼품없이 줄거리만 남았지만
그래도 잦은 비 덕에 채소들은 무성히 자라 싱싱하게 우거졌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인디언 섬머가 지난
시월 말 들어서야 채소 씨앗을 뿌린다.
그전에는 햇살 뜨거워 씨앗이 발아했다가도 타 죽고 말기 때문이다.
노지 텃밭에서 키우는 채소 농사 시작은
그래서 서리 내리는 늦가을부터다.
몇 번인가 무서리를 맞아 폭삭 주저앉았다가 되일어나는 강인함을 보인 씩씩한 새싹들.
외유내강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하늘의 섭리다.
고물고물 돋아나 움쑥움쑥 자라는
그 기운이 대견스러워
수시로 뒤란에 나가 꽃밭 보듯 그윽하니 바라보면 잘 가꾼 정원이 부럽지 않다.
더구나 요샌 야채 사러 마켓에 갈 필요가 거의 없다.
금방 솎은 푸성귀들을 손질해 식탁에 올리니 그 모두가 친환경 유기농 웰빙식품들이다.
자연히 ORGANIC LIFE를 즐긴다.
모양새야 어떠하더라도 좋다,
무럭무럭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아가 채소야.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