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거기 있던 동해, 그러나

1992

by 무량화

김포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햇솜 무진장 펼쳐놓은 듯한 구름밭 위로 순조로운 항진을 계속했다. 1992년 여름, 처음으로 나라 밖에 나서보는 여행객의 들뜬 기분을 나이가 다스려 주지 않았다면 나는 첫 무대에 서는 숫된 배우처럼 긴장하고 흥분된 상태를 감출 수 없었을 터다. 행여 촌스럽게 멀미를 할지도 모르겠고 스무 시간 가까이 걸린다는 긴 비행시간도 염려됐지만 의외로 상태는 좋았다. 에어 프랑스의 기내 서비스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때까지도 한 시간짜리 국내선만 타봤지 국제선 비행기 탑승은 난생처음 일. 하긴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도 1989년에 이뤄졌다. 장거리 비행에 대비해 모니터 영상에 느긋하게 시선 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게 뭐지? 시선을 집중했다. 아시아 전도가 짙은 청색 바탕 위에 떠 있었으며 비행기가 날고 있는 방향을 표시하는 화살표가 백색 선을 그으며 또렷이 나타났다. 현재의 항로를 알리는 화면이었다. 이미 홍콩은 거쳤고 인도지나 아래쪽으로 흰 선이 바삐 달음박질쳤다.


대륙의 한끝에 콩 꼬투리처럼 매달린 우리나라를 자연스레 찾았다. 덩달아 그 발치의 일본 열도가 눈에 띄었다. 태평양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한반도의 방파제 역할이랄까? 그보다는 한국을 공손스레 두 손으로 받치는 형상을 한 일본과 사할린. 거기 싸 안긴 듯한 동해는 마치 푸른 연꽃 봉오리 같았다. 순간, 눈을 비벼대며 내 눈을 의심했다. 동해란 이름은 간 곳 없이 바다 전체가 '일본해'였기 때문이다. 통째로 일본해라 칭해지고 있는, 실종된 우리의 동해.


분명 지리부도에 동해라 명기돼 있고 그렇게 배웠으니 당연 동해는 우리 바다로 알고 있었는데 JAPAN SEA라니? 참으로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한마디로 땡감을 덥석 한입 씹은 기분이었다. 무언가가 가슴에 턱 걸린듯한 고약한 느낌이기도 했다. 동해가 버젓이 일본해로 표기된 채 이렇게 통용되고 있음에도 외국 드나들기를 제집 들락거리듯 해 온 외교관들은 어이해 수수방관만 했더란 말인가. 숱하게 외유 즐기는 금배지 단 치들은 또 어찌해 못 본 척 입 꾹 다물고 잠잠했더란 말인가.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많은 이들이 외국 나들이를 다녀와서 쓴 기행문에도 전혀 언급된 적이 없었던 건 내 과문 탓인지? 응당 분노하고 이의를 제기해 마땅한 일에 왜 여태껏 다들 조용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씩씩거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일본은 이 문제가 쟁점화되는 것을 꺼렸고 한국 측 협상 요구를 거부해 왔다. 그 이전, 일제 강점기인 1929년 국제수로기구 회원국이었던 일본의 주장에 따라 일본해로 표기하게 된 동쪽 바다다. 국권을 잃으면 땅만 빼앗기는 게 아니라 바다도 물론이요, 말과 얼까지 뺏기고 만다. 결국 국력이 쇠하면 억울한 꼴 당하게 마련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 첫 줄에 나오는 동해다. 아침해 솟아오르는 바다이자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가 떠있는 바다가 동해다.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영해 영공을 포함한다고 헌법 3조에 나와 있다. 일찍이 한국의 해양 주권 수호를 위해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선포한 평화선은 대체 어디로? 라인은 안타깝게도1965년 한일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유야무야 사라졌지만. 일본에 형편없아 뒤쳐진 식민국가에서 현재 이만큼 국력신장을 이룬 지금. 동해 명칭을 바로잡지 못한 채 일본해로 놔둔다는 건 우리 영토에 대한 주권 포기이자 국가 자존심에 관한 문제다. 안 그래도 툭하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과 입씨름을 벌여온 우리다. 배타적 경제수역 권리행사에 목숨 건 일본으로서도 져선 안 되는 싸움이다.


우리나라 최동단에 위치한 독도는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정벌하여 512년 신라에 귀속시킨 땅이다. 그와 함께 이용복이란 인물이 떠오른다. 전에는 들어본 바 없던 이름인데 수영성 역사탐방을 하며 알게 되었다. 그는 조선 숙종조 때 일개 수졸로 부산포 수영에 살았다. 전투가 없는 평상시엔 늘 고기잡이를 나갔다. 울릉도 근해에서 어로작업을 하던 어느 날 풍랑에 밀려 떠돌다가 영해 침범으로 왜군에 잡혀갔다. 오히려 그는 당당히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영토임을 분명히 하고 일본 막부로부터 그 사실을 확인하는 서계(書契)를 받아낸 돌올한 사나이였다. 일본 막부로부터 받은 서계를 대마도주에게 강탈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귀국하나 무단으로 국경을 넘었다는 죄목에 걸려 처형 위기를 맞는다. 조정의 남구만 등 원로대신의 탄원으로 겨우 생명은 건지나 귀양살이로 일생을 마친 안용복.



그를 기리는 비가 집 근처 수영공원 한편에 있어 가끔 만나게 되는데 용기 있고 의연한 범부의 기상에 고개가 숙여졌다. 수영공원은 조선시대 경상좌도 수군의 중심지였던 좌수영 성지(城址)로 안용복이 수영 출신 수군이라 거기 충혼비와 동상이 서게 됐다. 동해를 지켜낸 안용복의 남다른 기개에 탄복만 할 게 아니라 작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색창연한 유럽 고지도 대부분이 한국해라 명기해 놓은 우리의 바다 동해다. 어느 단체에서든 동해 명칭에 대한 국제적 공인 노력을 위한 범시민 서명운동이라도 벌인다면 맨 먼저 달려가 도장을 꾹 찍으련만.


1807년 에도시대 제작한 일본판 세계지도인 '신정만국전도'


1646년 영국귀족 로버트 더들리(Robert Dudley)가 제작한 고지도의 사본. 최초의 세계 해도(海島)인 'Dell'Arcano del Mare'에 포함된 지도다.

위 글을 쓴 한참 뒤인 2012년 연합뉴스판으로, 17세기 유럽에서 제작된 고지도 기사에서 발췌했는데 요즘 비행기 항로표시는 어찌 변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