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어르신~재작년에 치매검사받으시고 작년엔 검사를 건너뛰셨네요.
올핸 꼭 보건소 치매센터에 들려주세요.
아이 어르듯 상냥하게 말했다.
서귀포살이를 시작하면서 곧장 시청 서포터스활동을 했기에 젊은이들과 어울려 보건소에 가서 인바디 검사를 했었다.
그때 입력된 주소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관내 노년층 모두에게 치매예방을 위한 검사를 안내하는지 암튼지간.
재작년 보건소에서 처음으로 치매검사를 권하는 연락을 받고는 뭘 어찌하는 건가, 구경 삼아 가봤다.
거처에서 십분 거리도 안 되니 실실 걸어서 보건소 치매센터에 도착했다.
검사는 싱거웠다.
다음 해에 꼭 또 해봐야지,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해서 작년은 그렇게 넘겼다.
올핸 두 번씩이나 넘어지면서 머리를 세게 부딪혀 혹을 만들었기에 혹시나 싶던 차.
오전 일찍 보건소로 향했다.
비교적 얌전하고 착한 치매로 일 년 투병생활을 하다가 2004년 조용히 눈을 감은 엄마.
유달리 겁이 많은 엄마는 그 덕에 무서워하는 주사비늘 꽂지 않고 지내다 떠났기에 외려 다행이다 싶었다.
치매에 대한 생각은 그래서 나쁘지만은 않았다.
당시 오십 대 중반으로 이민살이 겨우 적응해 나가던 젊은 시절.
성당 레지오 활동의 일환으로 매주 한번씩 한인 너싱홈을 방문해 기도봉사를 하곤 했다.
그곳에서 지내는 대부분은 노환이 심하거나 치매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치매 환우 중에 놀랍게도 갓 오십이 된 새파란 목사부인이 있었다.
치매 외에도 그녀는 고혈압에 당뇨도 중증이라 했다.
아들 하나를 둔 그녀는 자기 아들도 몰라보는 딱한 상태였다.
단지 남편만 보면 희색이 만면. 좋아 어쩔 줄을 몰라했다.
비만형에 작달막한 그녀와는 달리 남편은 훤칠한 키에 용모 준수했다.
치매 발병의 원인은 지독한 의심증, 안절부절 불안한 상태라 교회 여신자들마다 의혹의 눈초리가 따라붙었다.
걸핏하면 폭력행사 같은 과잉반응도 서슴지 않았다.
목회일을 하는 남편에 대한 의부증은 갈수록 깊어져 갔다.
성격이 난폭해지며 기억력과 판단력이 현저히 저하되자 도리없이 너싱홈으로 옮겨진 그녀.
가정의 평화가 산산조각 난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녀를 보며 사람마다 노후에 가장 피하고 싶은 병,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병이 치매임을 알게 됐다.
흔히 노인성 치매라고 하지만 나이 상관없이 누구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이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 외에도 하나 더 추가하자면 엄마를 떠나보낸 몇 년 후, 책을 읽다가 가로 늦게 눈물바람을 한 적이 있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다.
혼잡스러운 서울역에서 아버지 손을 놓친 치매 엄마가 사라졌다.
실종돼 오리무중인 엄마를 찾기 위해 온 가족이 매달렸으나 행방은 묘연했다.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면서 그때, 내 일이듯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지.
검사실로 안내됐다.
담당자가 주민증을 확인했다.
그다음 책상에 놓인 질문지를 펼쳤다.
순서대로 체크하면서 공란을 채워나갔다.
채소나 과일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도 했다.
문항 중에는 금수강산을 거꾸로 말해보라는 주문도 있었다.
'민수는 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에 가서 열한 시부터 야구를 했다' 란 문장을 외워 뒤에 복기도 시켰다.
이 정도에서는 전혀 막히지 않고 술술 풀렸다.
나이 들수록 깜빡 증세도 자주 생겼으며 대화 중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잦았는데 그건 단순 건망증일 뿐이었나?
그렇다면 치매와 건망증의 차이는, 힌트를 주면 기억이 되살아나는 경우는 건망증이고 치매라면 힌트를 주어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치매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 아니라 뇌기능이 손상된 질병으로 일상생활 유지가 어려워지며 환청. 망상. 과다행동. 폭력성 등 정신과 행동상에 나타나는 이상 증상이다.
아직은 기억력이나 사고능력 등 두뇌활동에 별 문제는 없다며 담당자가 축하한다 치하했다.
이쯤의 나이에도 벌써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 적잖은데 반해 손수 조석 준비해 잘 먹고 내 발로 가고 싶은데 찾아다닐 수 있으면 예사 축복이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하루가 곧 축복이자 기적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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