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으로 산다

by 무량화


이따금씩 간헐적 단식(intermittent fasting) 은 했지만 몇 년 전부터 일 년에 한 번씩은 정식으로 단식을 해왔다. 사순시기에 주로 했는데 이번 사순에는 느닷없이 넘어져 다치는 바람에 때를 놓치고 말았다. 때마침 한국전쟁의 비극이 시작된 유월, 기아의 고통을 재체험해 볼 적당한 시기이기도 해 단식 준비에 들어갔다. 단식이라 해서 무작정 굶기만 하는 것은 아니듯, 전후 단계별로 지켜야 할 수칙대로 차분히 시작을 했다. 그에 앞서 반드시 먼저 참작해야 할 점이 있음을 당시 그만 간과해 버렸다. 나이 들어도 '마음은 이팔청춘'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듯 주제 파악 못하고 아직도 젊은 줄 착각했다. 나이 생각지 않고 현재 분수나 처지 모르고 무모하게 단식에 들어가다니. 수즉다욕(壽卽多辱)이 아니랴.


단식은 자발적으로 곡기를 끊는 것으로 우선은 자기를 조절하고 제어할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한다. 거의 중독이 되다시피 한, 입에 단 것을 찾아 배부르게 먹는다는 익숙한 감각을 한 번씩 '일단 멈춤' 앞에 세우는 일이 단식이기도 하다. 단식은 흔히 다이어트와 연관을 짓는다. 헌데 비쩍 마른 사람이 무슨 살을 빼겠다고 단식? 한시적으로 염분과 물 외의 음식 섭취를 중단하므로, 생리 활동에 필요한 영양소는 체내에 저장된 지방조직 등을 분해 연소시켜서 필요한 에너지를 얻게 된다. 단식으로 속을 비워 몸의 부담을 덜어줘 자정능력과 자생력을 증대시키게 되며, 당연히 단식을 통해 다이어트 효과도 얻는다. 다이어트는 꼭 몸만이 아니라 정신에도 필요한 터, 무거운 걸 덜어내고 가볍게 만드는 작업은 대부분이 좋은 일이리라.


요즘 들어 단식이 투쟁의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하였으나, 붓다는 설산에서 예수는 황야에서 기도하며 단식을 하셨다. 비폭력 저항의 간디는 단식으로 영국에 맞서 독립을 쟁취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의 단식처럼 뭔가 계산된 의도나 목적이 있어서만 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수행자의 고행 흉내를 내려는 허영 같은 건 없었다. 단지 하루 세끼 습관처럼 먹던 일을 멈추고, 잠시나마 자기 내면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때 저절로 따라오는 심신의 정화를 느껴보고 싶었다. 육십 대 초, 난생처음으로 닷새간 단식을 했을 때, 당시 너무나도 정신이 맑아지고 심신이 날아오를 듯 가뿐해지는 경험을 했었다. 그럴 수 없이 마음은 평온했으며 머릿속이 투명해진 기분이었다. 영적인 힘을 얻은 느낌도 들었고 의지력이 강화된 것도 같았다. 생식이나 소식하는 선승 고유의 분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듯 했다.



전에 했던 기존의 방식대로 단식을 시작했다. 당시, 닷새 동안 단식을 하면서 가게 일을 계속했지만 전혀 지장이 없었다. 콩 삶아 메주를 만들면서도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한마디로 참을만했다. 강단은 있으나 저력이 별로라고 여겼는데 의외였다. 견디기 어렵게 배가 고프다거나 기운이 빠지면 일상생활이 힘들 텐데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삼시를 꼭꼭 한식으로 챙겨 먹는 식습관이었음에도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도 않았다. 다만 음식을 만들 때 반찬 냄새가 유혹을 했지만 그 고비만 넘기면 되기에, 얼른 식탁을 차려놓고 식사 자리를 피해버렸다. 예정된 닷새 하고도 여력이 남아 일주일을 마저 채우고 싶었으나 나이와 체력을 감안해 그쯤에서 멈췄다. 그만큼 별 무리 없이 임한 단식이었다.



허나 이번은 상태가 전과 확연히 달랐다. 단식 이틀째, 힘이 쫙 빠지며 무기력감이 심하게 들었다. 앓는 사람처럼 늘어져 누워만 있게 되었다. 일어나면 눈앞이 캄캄해지며 별이 왔다 갔다 했다.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다. 열이 나는가 하면 메스껍기도 했다. 유난히 쿵쾅거리며 심장이 뛰었다. 눈도 침침해졌다. 더 이상 무리하게 진행하다간 큰일 당하겠다 싶었다. 무엇이건 중독되면 그전의 그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인다. 어떤 중독이건 그걸 쫓다가는 패가망신하는 지름길에 들어서고 말지 않던가. 의지력 시험장도 아니고 인내심 한계치를 재는 자리도 아니다. 이 무슨 만용인가 싶은 게 진땀이 버쩍 났다. 한 해 한 해 다르다는 나이 셈하지 않고 경거망동을 한 셈이다. 매사 과유불급이라는데 너무 무모했구나.



슬그머니 일어나 주방에 들어갔다. 단식 후의 보식은 일단 부드러운 유동식으로 시작해야 한다. 말린 누룽지 한 움큼을 냄비에 넣고 푹 끓였다. 묽게 끓인 눌은밥을 간장만 놓고 천천히 떠먹었다. 살 거 같았다. 워매~ 요로코롬 고마운 밥. 일용한 양식을 주신 하느님, 감사 또 감사합니다. 금세 원기가 회복되며 눈이 떠지고 맥 풀렸던 사지에 힘이 솟았다. 예정했던 단식을 도중에 중단했다는 실망스러움은커녕 실실 웃음기가 번졌다. 뭐니 뭐니 해싸도 사람은 먹어야 산다. 눌은밥만으로는 부족한듯싶기에 이번엔 질척하게 밥을 안쳤다. 연하게 된장국도 끓였다. 이럴 때 특히 폭식을 주의해야 하므로 신중하게 대처, 국에 딱 밥 한 주걱 말아 물김치하고 먹었다. 꿀맛이다. 행복감이 절로 들었다. 역시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맞다. 순간, 이 고마운 밥을 제대로 못 먹고사는 북녘 아이들의 왜소한 몸집이 생각났다. 마음 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