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는 시대 상황은 물론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때였다. 요즘은 가족 패러다임이 급변해 다문화 가족, 동거 가족, 조손 가족, 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반려 가족에다 부모 중 한 명이 아이를 키우는 한 부모 가족도 늘어나는 추세로 싱글 맘이니 싱글 대디가 그리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됐다.
오래전, 당숙은 사범학교를 나온 초등학교 교사로 고운 아내를 맞아 연년생 삼 남매를 두고 잉꼬부부로 지내며 이웃들의 시샘을 받을 만큼 단란한 가정을 꾸려왔다. 목재 반듯한 기와집 안방엔 당숙모 혼수인 포마이카 장롱과 재봉틀이 윤기로왔고 당시 군내에서 흔치 않던 유성기까지 들여놓는 멋을 부리며 유복하게 살던 당숙이셨다. 도내에서 기계체조 지도로 이름을 날리더니 승진도 빨라 교감이 되던 해 봄, 산후풍으로 내내 자리보전하던 당숙모가 덜커덕 세상을 떴다.
호사다마라던가, 승진의 기쁨을 충분히 나눠보기도 전 시난고난 하던 아내와 사별하고 사십 줄에 홀아비가 되고 말았다. 맏이인 딸이 그나마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대로 두 남동생 건사하며 제법 가사를 거들어 아버지를 많이 도와줬다. 작은 할머니가 김치 등속 밑반찬을 대주고 큰 빨래를 대신해 주었기에 아내의 부재로 당장 표 나게 불편을 느끼지 않아서인지 당숙은 재혼은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애당초 아예 뜻이 없다고 못 박았다.
옆에서 들은 아내 사랑이 워낙이 지극했던 터라 웬만한 사람은 눈에 차지도 않나 보다고 입방아를 찧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실 장화홍련전 얘기에서 자유롭지 않던 시기였다. 눈치 멀쩡한 아이들 새엄마로 인해 상처받거나 맘고생시킬 수 없다며 당숙은 끝까지 혼자를 고집했다. 우직한 황소 쇠고집은 아무도 어쩔 수 없었다. 그처럼, 자신을 사랑해 주고 책임져주는 누군가가 곁에 늘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안정된 정서로 살아갈 수 있다는 지론에 충실히 따른 당숙.
통념상 정상의 범주에서 좀 벗어났다 싶으면 은연중 거부감을 드러내는 세상에 줄줄 애 딸린 홀아비 역. 그럼에도 남자 혼자 삼 남매를 키우겠다는 각오를 했다는 것부터 대단하고 특별했다. 거기다 당숙은 그걸 희생이라 여기지 않았기에 늘 자상한 얼굴로 고달프거나 힘든 내색을 아이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그만큼 자신이 누군가에게 인정과 존중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나아가 그것이 상대방과 사회를 긍정적으로 포용하고 이해하게 되는 힘이 된다고 하였다.
편부 슬하이지만 아이들에게 부성은 물론 자애로운 모성도 줄 수 있는 좋은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당숙은 퇴근하면 곧장 귀가해 자녀들과 시간을 같이 했다. 권위적이기보다는 아주 자상했던 아버지, 자신들의 행복을 지켜주고 빌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울타리로써의 역할을 다 한 아버지였다. 사춘기의 반항은 성장의 증거로 받아들여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었으며 스스로 항상 낙천적인 모습을 보여주므로 자녀들에게 따뜻한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줘서인지 아이들은 구김 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양부모뿐 아니라 조부모의 사랑을 두루 받을 수 있는 여건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스러우나 형편이 그러하지 못할 때, 즉 편모나 편부 가정의 아이들이 받게 되는 이상한 선입견과 편견으로부터 부드러운 차단막이 되어 준 아버지. 그 덕으로 딸은 교사, 아들은 지방대 교수와 치과의사가 되어 셋 다 성공적인 사회인으로 자리 잡았다.
자녀 모두가 결혼을 하고 나자 맏이는 동생들과 논의를 했다. 그렇게 혼자 계신 아버지의 반려를 찾아 나서며 서둘러 재혼을 추진했다. 아버지의 역할도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 데다 마땅한 소일거리도 없이 지내 시간 보내기가 적막하던 차, 당숙은 선선히 그러마고 했다. 교장으로 정년퇴직 후 당숙은 연금이 넉넉해 아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기에 괜찮은 조건의 참한 재혼 자리가 나섰다.
육십 넘어 새로이 꾸민 가정, 해외여행 다니며 평화로운 노후를 즐긴 건 고작 삼 년 남짓으로 이번에도 당숙은 호된 병시중을 떠맡고 말았다. 재취 부인이 느닷없이 파킨슨병에 걸려 십 년 넘게 간병으로 고생만 하다가 기어이 먼저 이승을 뜨게 되었다. 늘그막에 다시 흉사를 겪은 당숙은 신세 한탄을 하며 오죽하면 "손금을 긁어내고 다시 새기고 싶다" 했을까. 없는 부부운을 억지로 만들려 한 내 잘못이요 팔자 도망은 못하는 법인데... 하면서 후회로 가슴을 쳤다 한다.
장지에서 육촌들은 회한 어린 탄식을 했다. 홀로 자신들을 키운 아버지에 대한 심적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은 속내를 효도로 포장한 채 짐 떠넘기듯 재혼 권고를 드렸던 건 아닌가 자책하며 깊은 통한에 잠겼다. 진짜로 운명, 팔자라는 것이 있는 걸까. 하늘이 미리 짜놓은 개개의 인생 각본을 우리는 앞질러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