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뭐니?

by 무량화

정말로 가지가지하는구나 싶었다.

그야말로 끼리끼리 논다 싶기도 했다.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조영남 대작 논란에 신정아가 거들고 나서는 모양새가 참 가관이었다.

삼시 세끼 챙겨 먹으며 무위도식이나 하던 차에 마침 소화제 구실도 할 겸 제대로 한 건 걸렸구나,


이런 때 이죽거리지 않으면 언제 이죽거리며 어찌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오징어 씹듯 질겅거려 보랴.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그 나물에 그 밥, 자유분방한 조영남과 당돌녀 신정아야말로 환상의 조합이 아닐쏜가.

팔순 나이에도 손녀뻘되는 어린 연예인에게조차 치근덕거리며 모든 여자가 제 눈짓 하나에 허물어지는 양, 관리할 어장이 많다느니 유들유들 느물대는 조영남의 여성편력은 진작부터 소문이 났다.

외부노출을 삼가며 제법 자숙하는 척 지내던 여자가 느닷없이 앞장서 인터뷰를 자청하면서까지 용감스레, 코너에 몰린 문제의 남자를 꼴같잖게 편들어 옹호하려 나섰다.

넌 뭐니? 니 정체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니?

신정아가 누구?


화려한 거짓 이력은 둘째로 치고, 참여정부 시대 실세인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유부남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남자를 자신의 출세 발판으로 삼았던 그녀다.


종당엔 야시에 홀린 남자를 몰락시킨 맹랑 발칙한 여자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그 신정아다.

결국 학력위조로 한동안 수감생활을 한 그 여자는 출감 후 자전에세이를 내며 다시 한번,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로 낙인이 더 깊숙하게 찍히고 말았다.

그러다 화투짝을 그리는 인기가수 조영남전을 기획한 큐레이터로 복귀한 그녀였으니 하긴 그를 두둔할 만도 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상처투성이가 된 그녀를 큐레이터로 재기할 수 있게 도와준 우호적 인연이니 사실 서로 상부상조하는 사이?

그 여자는 말했다.

그 남자가 집에서 직접 그림 그리는 모습을 자주 봤으며 상당히 꼼꼼하게 작업에 임했었다고.

무슨 작업? 아주 친밀한 관계라는 두 남녀 사이를 요상야릇하게 상상하도록 만들고도 남는 발언이다. ㅋ

결이 다른 얘기지만 소설가 신경숙 씨가 몇 줄 남의 글을 빌려와서 당한 고초에 비한다면 이 남자 행동거지는 무진장 혼이 나도 싸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조차 "모든 것은 자연이라는 위대한 책으로부터 나온다. 인간이 만든 작품은 이미 인쇄된 책이다" 라 설파했다.


결국 모든 게 이미 있었던 모델을 본뜬 흉내질인 모방이자 재편집에 불과하다.

그처럼 표절이니 위작이니 모작이니 거품 물지만 세상에 하느님 외에 그 누가 전혀 새로운 걸 창조해 낸 적 있었던가.

망령이라도 들어 주접을 떠는 건지 화투장 갖고 놀며 중견화가 어쩌고 하더니 그야말로 말년에 왕창 망신살 뻗쳤다.

특히 열받게 한 대목은 '모티브만 설정해 쥐도 자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느니, 대리화가에게 쥐꼬리만큼 떼주며 '겨우 살게 해 줬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라고 성질부리므로 후안무치의 끝판왕이 된 남자.

아무튼 그런 점에서, 중년 여자나 늙다리 남자나 참 뻔치도 좋구나 싶다.

만일 가정을 가진 여성이 자기의 숨겨둔 러브스토리를 공개했다면 뭇 돌팔매질에 난타당할 게 뻔하다.

반면 자식도 거느린 아버지라는 남자가 자신의 삼류 스캔들을 마치 자랑스러운 무용담 나누듯 부끄럽 없이 고백해 댄다.

희한한 건 그러고도 면죄부를 준 듯 아무렇지 않게 잘 넘어간다는 점이다. 헐!


<페인트 칠이 벗겨진 폐가의 시멘트 담장>


동네 후미진 폐가 담벼락의 벗겨진 페인트 칠에도 예술이란 명찰을 달아 준다면?


예술가가 자기의 내면 상태를 어떤 특정한 형식을 통해 강렬하면서도 집약적으로 옮겨 놓은 것이 예술이라고 설명돼 있긴 하다만.

우아함과 조화, 섬세한 지각과 고양된 감정 등의 내면적 상태를 드러내 주는 표시라고도 정의되어 있는 예술이다.

플라톤의 지론인즉 모든 예술은 도덕적 판단에 따라야 하고 예술적인 미(美)도 도덕적 선(善)의 일부라고 보는 입장으로, 예술에서 도덕성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즉 예술의 존재 이유는 바른 행동과 덕성(德性)을 표현하고 장려하는 데 있으며, 예술에 내재되어 있는 미는 우리의 정신을 고상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 윤리 용어사전>

마찬가지, 가수로 성공한 유명 연예인이 명실공히 진짜 예술을 하는 화가로 대접받고 싶었다면 그런 식으로 그림에 접근은 안 했을 것이다.

내 눈에는 사기성 여부보다 그의 어리석은 탐욕만이 두드러져 보인다.

항간을 떠들썩하게 한 논란의 주인공 조영남의 끝 모를 노탐, 노욕, 노추의 결과로 비칠 따름이다.

더 이름을 날려 명성을 쌓고 싶고 물질의 풍요를 한층 더 누리고 싶고.. 싶고.. 싶은 끝 모를 욕망 때문이 아니겠는가.

제 아무리 항우장사라도 나이는 못 속인다.

백세시대를 들먹거려 봐도 어쩔 수 없이 나이 들면 들수록 아무리 기를 써봤자 패기와 자신감이 전과 같지 않음을 매사에서 의식하게 된다.

천하를 품을 듯한 야망도 포부도 점차 줄어들며 그 자리에 대신 아쉬움과 회한 서린 안타까운 안간힘만 덧쌓인다.

일각에선 나이 든 이의 열정을 노욕으로 치부하려 든다고 불끈 근육을 과시해 대며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올바르게 수양을 닦아 고이 나이 들어가며 세월에 순응하는 이가 아닌 담에야, 늙을수록 욕심이 이것저것 늘어나서, 하다 하다가 치사한 식탐에다 불로장생 진시황 흉내질이라는 노망까지 생기기도 하는 노년이다.

더 갖고 싶고 채우고 싶고 누리고 싶은 욕망, 그 갈등과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면 자연 과욕이 되기 십상.

그래서인지 나이 들수록 자리에, 허명에, 감투에, 돈에, 건강에 연연하기도 한다.

떠날 때를 알아서 조용히 귀거래사를 읊기는커녕 그나마라도 움켜쥐고 있어야 존재증명이 될 것 같은 초조감 탓에 더욱 불안스레 안달 부린다.

오죽하면 노년기 탐욕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을 군자삼계(君子三戒)로 엄히 내세웠을까.

혹자는 한국인의 고질병인 사촌이 땅사면 배 아픈 증세로 조영남 사건을 보았지만, 만일 일반 화가나 대중이 아닌 대작을 그려준 무명화가 입장에다 환치시켜 본다면?

십만 원 받고 그려준 그림이 몇 백에서 몇 천을 홋가하며 팔리는 걸 볼 때, 아무리 '열정 페이' 운운해도 상대적 박탈감에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게 느껴질 것이며 자괴감과 함께 솔직히 시샘이 나며 배가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수십억짜리 집에서 호의호식하는 유명인 갑과 월세방에서 기초생활을 위해 주문한 그림을 조달해 주는, 소위 정통파 화가가 을의 위치라면 당연히 부의 독식에 누구일지라도 분노하고 저항을 하게 될 거 같다.

아무개는 명성 날리며 유세 떠는 아티스트고 자신은 카피질이나 하는 싸구려 페인터 위치?


바보천치 아닌 담엔 당연히 배알이 꼴리며 속에서 열덩이가 치받아 오르고도 남을 일이다.

대작이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려는 건 어불성설이다.


법관 전관예우가 관행이라서 어떤 변호사가 한 달 수임료 수입이 수십억 대를 넘었을 경우, 우리는 당연하고 괜찮다며 가볍게 수긍하거나 동의할 수가 없었지 않았나.

잡지 편집실에서 기자에게 아이템을 내주며 그 분야를 취재해 기사를 쓰라고 한다.

기자는 주제에 맞춰 취재를 한 다음 자기 머릿속의 생각을 보태 글을 엮게 되는데 이때 편집실은 그 기사의 주인행세를 결코 하지 않는다.

미켈란젤로나 로뎅은 여러 명의 문하생 혹은 조수를 두고 공장 돌리기 식 협업을 한 걸로 전기영화에도 표현돼 있다.


규모 큰 대작에다 돌을 다루는 조각이라는 특성상 그 점 충분히 납득이 간다.


팝아트의 제프쿤스가 '풍선 개'나 '튤립 꽃' 작품을 제작할 때 직접 금형 뜨고 모형틀 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 설치미술의 경우뿐 아니라 만화가가 조수와 함께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듦은 이해가 된다.


그들은 한 공간에서 일하면서도 작가 자신이 의도한 예술성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철학과 개념을 나타내고자 표현방법을 조정해 가며 선두에서 지휘 통제를 했을 터이다.

반면 이 파문의 요체는 협업체제가 아니라 단순 주문제작 판매를 위해 용역을 맡기는 관계임이 문제일 게다.

컬렉터가 의뢰하는 그림 요구량이 많아지자 욕심이 발동, 다량제작이라는 무리수를 둔 게 결국 사달을 냈다.

예술활동은 작가 개개인의 예술관에 의해서 재구성된다고 볼 때, 아이디어나 컨셉만 제공한 뒤 제작하라고 '하청'을 준 그림이 원래 아이디어 제공자의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끝판에 슬쩍 붓질 한 번하고 사인한 몰염치, 비양심이 과연 자신에게인들 부끄럽지 않았을까.


현대미술의 대표적 아이콘인 앤디 워홀은 수많은 조수를 썼어도 완전 맡겨버리는 식이 아니라 한 작업실에서 직접 방향제시를 하며 컨트롤하였음에도 그의 그림은 자신의 싸인이 없거나 있다면 싸인값을 쳐서 받은 걸로도 유명하다.

그림이건 춤이건 글이건 음악이건 사진이건 언필칭 예술이라면 작가의 정신이 반영돼 있어야 하며 창작의미가 들어가 있고 철학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조영남의 대작논란 파문은 사기냐, 저작권 위반이냐, 그런 차원을 비껴서는 문제일 뿐 아니라 유죄 무죄 이전의 문제다.

법적 제재보다도 오랫동안 대중의 관심을 받고 살아온 유명인으로서 다중을 혹은 컬렉터들을 묵시적으로 속여왔다는 점에 방점이 찍힌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다운 처신과 행실대로 무엇에도 진실하지 못했다는 진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니 그 사회적 지탄이 더 무서운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