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계루(枕溪樓) 날 기다린 뜻은

1992

by 무량화


수려한 풍광 배경으로 뿌리내린 고찰들. 거의 대부분 큰 절들은 깊은 산 그윽한 골에 계류 두르고 앉아있다. 대웅전 향하기 앞서 계곡 청수에 귀 헹구고 속진 떨구라는 배려일 게다.


조계산 내려와 송광사에 이르니 내처 따르던 거센 물소리가 우화각(羽化閣) 아래선 짐짓 조신해진다. 무심히 흐르는 물도 경내임을 알아채고 은연중 매무새 가다듬는듯하다. 이곳 역시 당우의 조화로운 배치만이 아니라 자연을 절묘히 운용했던 선대들의 세심한 안목과 지혜가 도드라져 보인다. 능허교(凌虛橋) 무지개다리 곡선도 우아하다.


다리도 쉬고 땀도 들일 겸 우화각 난간에 걸터앉는다. 혼자의 산행, 그리고 오후 한때의 이 푼푼한 한유로움. 신선이 달리 있을까. 비록 차 끓이는 동자 따르지 않아도 송풍회우(松風繪雨)의 경계 맛보며 삼매에 든 느낌이다. 문루 사이로 보이는 전각은 더욱 운치 있고 절문 밖 울창한 숲 어우러진 경관이 한참토록 내다보여 또한 좋다. 끊길듯하면서 시나브로 이어지는 인적 있어 고적하지 않은 산길.


가까운 데서 우렁우렁 반야심경이 들려온다. 소리가 밀려 나오는 쪽은 잿빛 기와지붕 드높은 옛 건물이다. 때마침 하계 선 수련회가 열리고 있는 고색창연한 누각엔 침계루(枕溪樓)란 편액이 기운차다. 이름 그대로 영락없이 계곡 베고서 높직히 올라앉은 침계루. 백일몽 대신 정진을 독려함인가, 용트림하듯 한 힘찬 기상 스민 枕溪樓란 서체도 그러하거니와 부지런히 흐르는 계류가 쉬지 않고 정진을 일깨운다.


그래서일까. 승보종찰 송광사는 예로부터 16 국사에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했다.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청정수도 도량으로 조계총림의 맥을 이어 가고 있다. 명분이야 어떠하든 잦은 종단 분쟁의 추태로 신앙에조차 환멸과 회의감 들 때면 청풍 소식으로 늘 위안을 주는 송광사가 아니던가.



​이튿날 닿은 곳은 해남 대흥사. 초의 선사 자취를 찾아 나선 걸음이나 칠칠한 동백 숲과 천불전에 묶여 하루 해가 저물려 한다. 하긴 자유에의 갈증으로 떠나는 여행일진대 굳이 예정된 틀에 구속되고 싶지도 않은 터다. 일지암 방문은 일단 접어두고 가람 여기저기를 느긋이 둘러본다. 홰나무 그늘만 밟다 보니 기승부리는 매미 합창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다. 그 소리에 떠밀려 내려간 곳, 거기서도 뜻밖에 다시 침계루를 만났다.


감돌아 흐르는 물길 건너 대웅전은 있었고 그 들머리에서 재차 조우한 침계루 현판. 반갑고도 신기해 올려다 보고 거듭 또 올려다봤다. 이름에 반해 담박 마음에 새겼던 침계루인데 여기서도 대면케 되다니. 해수욕장 인근에 송도란 명칭이 흔한 것과 같은 이치인가. 사찰 양식의 기본 틀인지 몰라도 양쪽 다 누각 위치가 엇비슷하다. 게다가 큰 계곡 물소리에 걸맞게 힘이 느껴지는 글씨체조차 닮은 꼴이다.


침계루 올라 물소리에 온전히 잠겨 들고 싶으나 앞을 가로막는 외래객 출입금지 푯말. 대신 돌난간에 기대어 음계 투명한 청류의 청음을 듣는다. 물소리에 씻겨 조금은 정결해지고 순수히 다듬어지는 마음결. 사바의 티끌들 말끔히 털어낼 순 없다 해도 오염치 한결 낮춰질 듯하다.


그러고 보니 절 앞에 계류 깔아 둠은 수천 마디 법문 대신 모두에게 들려주는 자연 통한 무정설법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누군가의 시처럼 쉴 곳에 모이고 낮은 데로 내리며 빈 곳 채우는 겸허로, 흐르는 물살에 모든 오탁 죄다 씻어가며 살라 함이리라. 한순간도 머묾 없는 물처럼 뭇 집착에서 떠나라는 뜻이리라. 형상 없는 물이 되어 매이지 않은 자유인으로 살라는 가르침이리라. 나아가 하늘과 땅을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순환 거듭하는 물에서 윤회의 모습 읽으라 함이리라.


마치 예비된 만남처럼 침계루 거기서 날 기다렸음은 이 이야길 들려주고자 함이었나 보다. 1992


주소: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