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첫새벽에 길어온 정화수 한 그릇 장독대에 떠놓았다.
그 앞에 서서 지극정성 비손하는 할망의 모습 같다.
저 돌탑들은.
백 년도 더 전에 이 나라를 다녀간 베버신부 기록처럼, 다만 깨끗한 우물물 한 대접만 받는 겸손한 천지신명께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올리는 정화수 한그릇.
지성으로 빌면 하늘도 감동하고 제신도 감동시킨다지 않던가.
진솔하고 질박하게 외우는 할망의 기도는 하늘에 닿곤 했었지.
나의 어머니 그리고 더 윗대 할머니 모든 분 신실한 기도 공덕으로, 이만큼이나마 국태민안 가내평화 심신평안 누리는지도.
이 바닷가에서 석공의 바위 쪼는 정소리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석탑은 이루어졌다.
비록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지도, 매끈한 어깨선 자태 날렵한 여신 아닐지라도.
높이 우러를 신상이나 불상만이 장엄하고 거룩한 게 아닐지니.
설령, 서툴게 쌓인 돌탑일지라도 어떠하리.
탑은 모두가 신성한 예배의 대상물 되는 것을.
하여 탑 앞에선 누구라도 경건해져 어느 결에 슬몃 옷깃 가다듬지 않던가.
파도에 밀려와 여기저기 뒹구는 편편의 현무암 덩이 발길에 걸리고 채였다.
그 화산석을 오가는 길손마다 한 점씩 주워 덧쌓았다.
자연석 그대로를 바닷가에 쌓아 올리며 기원 하나씩, 소망 하나씩 층층이 얹었다.
밑돌보다 공구는 윗돌은 매양 겸손하다.
언뜻 보아도 알 수 있게 점점 작아진다.
그래야 거센 태풍에도 끄떡없이 서있을 수 있다.
마음 같아선 큼직한 돌덩이 턱 얹고 싶겠으나 균형 잃은 탑은 무너져 내리고 만다.
탑 위에 소원 하나 공들여 쌓아 올릴 때는 욕심 비우고 가비얍게 가비얍게.
해서 우리는 탑을 보며 세상 이치를 배운다.
아래층과 위층은 무심한 듯 끈끈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음이니.
너와 나는 그렇게 연대해 살더라는 세상 이치 은연중 깨우치게 되느니.
78개의 나이테 겹쌓인 생일날.
마음을 깊게 전할 줄 아는 딸내미가 보낸 꽃바구니 리본에 쓰인 짧은 문장 하나가 가슴 깊은 곳의 현을 건드린다.
엄마의 인생에 건배!
지나온 시간에 대한 존중과 축복과 응원이 담긴 따뜻한 시선에 그예 붉어지는 내 눈가.
이해받았다고 느낀 순간, 그 자체가 행복 아니랴.
손녀 부부가 보낸 생일케잌에 촛불을 밝힌다.
그간 잘 견디고 버텨 여기에 이른 내 삶에 축배! 아암!
삼대가 쌓은 탑, 뿌리가 된 오늘은 뿌듯해도 좋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