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낙화, 그 흔적

by 무량화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

간밤에 불던 바람으로 만정도화(滿庭桃花) 다 떨어지자 비 들고 이를 쓰는 아해에게 이른 말이다.

조선 중기 선우협의 시조로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긍정과 유유자적하는 태도가 유학자답다.

낙화도 꽃은 꽃이다.

난분분 흩날리는 벚꽃잎이나 애기동백 이파리는 지면서도 운치로와 그 나름 완상감이다.

벚꽃 엔딩 노래처럼 몽환적인 사월 봄날 꽃비로 내리는

하얀 벚꽃뿐이랴.

붉은 꽃잎 낱낱이 절정의 순간 낙화져, 백설 위에 흩날려 쌓이는 애기동백의 아름다운 서정 또한 시적이다.

그러나 토종동백이 지는 모습이야말로 처연스러운 정취 바로 그 자체다.

꽃받침 온전히 간직한 채 꽃송이 전체가 무너져 내리듯 모가지 째로 툭!

가장 눈부신 순간에 소멸하는 결연한 기개 자못 비장스럽다.

그렇듯 붉디붉어 혈맥 뜨거운 동백(冬柏)의 미학은,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과 겹쳐지는 죽음의 결연함을 서사시처럼 아로새겨놓았다는 데 있다.

차가운 눈 속에서 피었다가 가장 붉은 화려함의 정점에서 단호하게 사라져 버리는 결기, 허무가 아닌 서늘한 장엄미의 극치다.

하여 게으른 삶을 일깨우는 죽비 소리로 들린다.



봄비 밤새도록 내린 그 이튿날.

새섬 숲에 낙화 진 동백꽃 송이송이 솔잎 위에 깔려있었다.

순간, 가시리 가는 길목에서 본 신흥리 동백꽃길 정경이 퍼뜩 상기됐다.

벚꽃 유채꽃 어우러진 녹산로 축제장에 가는 중이라서 길 양가에 붉게 깔린 동백, 아쉽지만 지나쳐버렸다.

그 생각이 나, 그날 오후 기꺼이 신흥리로 길머리를 잡았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2리 동백마을, 제주도 지방기념물 제27호인 동백나무 군락지로 일찌감치 1974년에 지정됐다.

동백마을 얘긴 그간 소문으로도 들었고 몇 차례 그 길을 지나가긴 했으나 동백철에 직접 가본 적은 없었다.

오랜 홀대가 서운했던가.

동백꽃은 이미 칙칙하게 빛바랜 채 우중충했다.

하긴 도로변에 줄지어 나있는, 낙화 사진을 찍고자 갔으니 후줄근한 꽃 상태를 나무랄 입장은 물론 아니다.

동백나무 꽃길은 꽤 한참 이어졌으나 휑하니 내닫는 차나 더러 오갈 뿐, 시즌이 지나서인지 꽃구경을 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교통량이 뜸한 한적한 길인 데다 더구나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댔으니.

아직 동백충 폐해가 발생할 철은 아니라도 약간의 거리를 두고 동백길 따라 걸었다.



홑동백꽃 단정한 자태가 좋아, 무조건 동백은 토종이 최고라고 여기는 외골수 취향도 문제는 편향적이라서다.

고로 겹동백꽃을 선호하지 않는 내 선입견 탓에 시선 부정적이므로, 괜스레 처음부터 타박하진 않았다.

다만 가도 가도 동백나무는 추레하니 한물 간 시든 꽃들만 달고 있었다.

겹동백은 산뜻한 작별, 장렬한 산화같이 결기 어린 마무리 대신 구차하게 꾸역꾸역 생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처럼 신흥리 동백꽃은 모조리 겹동백나무였다.

300년 전 설촌 당시부터 동백나무를 방풍림으로 심기 시작하였다는데 바람 심한 제주라서 그러려니....

그 정도 세월을 짐작할만한 수령은 아니지만 대체로 묵은 나무인 건 맞다만.

마을 안에는 들어가질 않아 집 마당가에 심은 건 못 봤고 도로 양 옆으로 대형 귤농장 즐비해 귤밭 방풍림 용도 정도?

그러나 귤농사가 기업화된 건 당연히 백 년도 안 됐다.

동백마을은 2007년 설촌(設村) 삼백 년을 맞아 ‘제주동백마을’이라 선포하고 동백마을을 브랜드화하였다.

말하자면 이중섭거리처럼 서울 부산 통영 같은 타지방에 앞서 이중섭을 브랜드화해 선점하였듯이.

일찌감치 ‘동백고장보전연구회’를 만들어 마을 공동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토종 동백나무를 심고 가꾸며 마을의 상징과 자산을 키워나갔으며 동백마을 방앗간을 짓고 동백기름을 짜서 동백기름의 우수성을 알리는 상품 개발 등의 노력을 한 결과 2011년에는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그러나 마을 탐방을 하지 않아서인지 토종동백은 전혀 못 봤다.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자료에 따르면 겹동백은 화훼원예종에 속한다고.

Camellia japonica와 Camellia saluenensis의 교배에서 파생된 잡종 상록 관목 품종이 겹동백이란다.

원래 1923년에 John Charles Williams에 의해 이같은 새 품종이 태어나게 됐다.

학명은 겹동백나무 Camellia × williamsii 'Roger Hall'/ 동백나무 Camellia japonica L./ 애기동백 Camellia sasanqua Thunb다.

상록활엽교목인 동백나무는 영문으로는 Camellia이며 한자로 춘백(春柏)이다.

동백은 조매화(鳥媒花)로 동박새나 직박구리가 꽃가루를 옮겨 수정을 한다.

특기할 사항은 겹동백나무는 열매 곧 종자를 그러나 맺지 못한다는 점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듯 화려하니 풍성한 꽃은 실속 없는 이의 허장성세였나.

그래서일까, 소담한 화판 헤벌어진 카멜리아는 쾌락에 빠진 헤픈 여자를 연상시킨다.

이에 이르니 어쩐지 더더욱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떠올리게 하는 겹동백이다.
귀 뒤쪽에 화려한 붉은 꽃 사려 꽂고 긴 치맛자락 흔들며 춤을 추는 춘희가 퍼뜩 떠오르기 때문이다.

'말 못 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한국의 동백 아가씨가 홑겹 동백이라면 그와 달리 파리의 밤거리 여인 춘희는 겹동백 이미지다.



토종 동백꽃 명소로는 미당의 시로 유명한 선운사 동백과 지리산 화엄사 경내를 비롯 여수 오동도, 서천 마량 등에서 그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신흥2리 도로가에서 만난 동백은 전수 꽃송이가 크고 호화로워서 일면 느낌 텁텁한 겹동백뿐이다.

길가에 수북 쌓인 낙화는 더더욱 칙칙하니 지저분해 안 보니만 못했다.

오드리 헵번이나 소피 마르소는 나이 들어 늙어도 청초미 그대로를 간직한 반면, 세기의 미녀라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노후 모습은 한마디로 노추.

과도한 성형중독으로 얼굴 뜯어고친 후유증이라 했는데 낙화 동백에서 그녀 얼굴이 겹쳤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아무튼 어디까지나 자유인 개인적 느낌이 그랬다.

곁길로 간 김에 동백의 종결에 대해서도 덧붙이자면 견해랄까 소회 이러하다.

제일 그럴싸하기로는 토종동백꽃처럼 화양연화 절정의 순간에 사라짐이다.

그러나 사람인 경우 젊은 나이라 아쉽고도 안타까운 일이겠다.

나이 지긋해도 가톨릭에서의 선종(善終)은 종부성사를 받아 대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것을 의미하므로 준비 안 된 갑작스러운 죽음은 원치 않는다.

하지만 겹동백꽃처럼 나뭇가지에 의지해 오래 매달린 채 구질구질하게 살아야 한다면 그건 최악이리라.

애기동백 지듯이 어느 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 복, 그렇게 하르르 나비춤 추며 고요히 스러져갔으면.

오복 중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은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고통 없이 평안한 가운데 생을 마감하고자 하나 이는 우리의 희망사항일 뿐 전적으로 하늘의 소관사다.

백세시대 특히 웰다잉이 주목받는 요즘이다.

잘 죽으려면 잘살아야 한다.

Well-dying이 곧 Well-being임을 강조하는 것처럼 후회 없는 삶의 마무리는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아가되

자기 관리를 잘하면서 매 순간 감사하며 마음의 평화 누리는 삶이 행복한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