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물때표

굿 구경

by 무량화

몇 해 전 대정고을에서 걸판지게 열린 해원굿을 구경한 적이 있다.


그 외 바닷가 용왕당이며 신당을 제주민속학에 심취한 분을 따라 둘러본 터, 하지만 새해맞이 영등 해녀굿 구경은 아직 못 해봤다.


용왕굿, 영등굿, 해신제, 풍신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해녀굿은 척박한 바다 환경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제주 해녀들의 공동체 의식과 해양 신앙이 담긴 문화유산이다.


해녀굿의 대표 격인 영등굿은 풍요를 가져다주는 영등신을 맞이하고 보내는 민속 제례로, 제주섬만이 아니라 전라 경상 바닷가 마을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바람 거느린 영등(靈登) 할미가 심술을 피면 살림 말짱 도루묵이라, 험한 바다 바라보고 사는 어촌에서는 거의 풍신제를 지냈다.


그러나 부산 바닷가에 거주하던 당시 코로나로 난리굿판인 세월, 무형문화재라는 동해안 영등굿판 구경은 애시당초 글러버렸던 터다.


때마침 제주에 오니, 바람의 신인 영등신이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 섬에 찾아와 곡식과 해산물의 씨를 뿌리고, 보름날 우도를 통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민간 습속대로 영등할망신을 지극정성 모셨다.


올해는 운 좋게도 제주에서 그 영등굿 구경을 할 수 있겠네, 내심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2월 21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를 시작으로 4월까지 제주지역 삼십 여개 어촌계에서 영등굿을 펼친다는 신문기사를 스크랩해 둔 덕택이다.


바닷속에서 물질하는 제주 해녀들의 무탈과 풍어를 기원하는 ‘해녀굿'이 해안가 마다 열린다는 기사를 믿고, 적어도 한번은 만나겠거니 했다.


걸기대를 하고 일찍부터 서둘러 신례리 어촌계로 향했다.


동쪽인 남원 신례리에서 아침 아홉 시에 신춘굿을 한다는 보도 접하자 철석같이 이를 믿고, 물어물어 찾아간 걸음이나 밤에 지낸대서 헛걸음질.


또 한번은 서쪽 동일리에서 해녀굿을 한다기에 부지런을 떨었으나 어촌계도 못 찾고 강한 해풍에 후드낌만 당하는 헛수고를 했다.


장소를 찾지 못해 돌아서며 기다림이 갈급증으로 번져버렸던 그날.


시장기가 심해 이웃인 모슬포에 가서 늦은 아점을 먹고 된통 체해 고생 꽤나 하고는 당분간 굿 생각은 접었다.


삼월 들어 주말마다 연달아 봄꽃축제가 열리는 바람에

굿은 뒷전으로 밀리기도 했던 거고.



은퇴 후 이삼십 년 어쩌면 그 이상도 살게 될지 모르는 노후 시간이다.


고은층의 심신 건강을 위해서도 필히 목적과 역할이 있는 삶, 더불어 하루하루 규칙적인 생활을 영위하고자 사회와의 연결고리 삼은 일터.


건강이 허락하는 한, 평생현역으로 살기를 선택한 시니어로서의 활동터인 새섬에 가려면 아침마다 새연교를 건너게 된다.


새연교 앞에는 해녀의 집이 있다.


서귀포 어촌계 해녀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웬일로 아침부터 부산스럽다.


향 내음이 번진다 싶더니 장구채 장단에 징소리 어우러지며 휘휘 감겨드는 무가(巫歌)도 들려온다.


해녀굿이 열리는구나.


걸게 펼쳐진 굿판을 그렇게 만났다.


기다리던 것이 우연히 이루어지는 순간에는 감동이나 감탄에 앞서, 물때가 비로소 이르렀구나 싶어 마음 절로 흔연해진다는 것을 그 순간 느꼈다.


간곡한 기다림의 자리는 저절로 열린다, 잊을만할 때.


파랑새 동화처럼 어쩌면 간절함이라는 집착의 끈을 놓아버리자, 시절인연이 내게 스스로 응답해 온 것인지도.


한쪽 모서리에 슬몃 기댄 채 굿청을 둘러보니 해녀들 수굿하니 앉아있고 보조 심방인 소미가 두서넛, 징과 북을 맡고 있다.


옆자리 젊은이는 나처럼 외부인, 취재차 왔느냐는 질문에 민속학을 연구하는 서울대생들이라고.


향연 자욱한 굿청 안은 그럴 수없이 분위기 경건했다.


색색의 제물과 화려한 무복, 그리고 영험스러운 심방(무당)의 징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바다에서 거친 숨비소리를 뱉던 해녀들도 이곳에서는 신 앞에 엎드린 가장 겸손하고 조신한 아낙이었다.


이 극명한 대비 속에서 홀연 깨달았다.


영등굿은 단순히 복을 비는 기복(祈福)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거대한 자연의 품에 자신을 맡기는 순응의 의식임을.


나아가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삶을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위로받고, 다시 바다로 나갈 용기를 얻는 '정화'의 시간이자 장소가 굿청이라는 것을.


그간 영등굿을 찾아다녔던 까닭은, 물때에 몸을 낮추는 해녀들처럼 흐르는 시간에 나를 조용히 맡겨 두는 일을 배우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https://brunch.co.kr/@muryanghwa/1059

작가의 이전글반갑다, 관광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