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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0. 2024

마음이 시키는 일

<벌써 십 수년이 지난 일 입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아름다운 사람의 이야기라고 했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한 사제가 이룬 사랑의 기적 '울지 마, 톤즈'를 보았다.

교회 밖 市井 쪽에서 그의 진솔한 삶의 궤적을 다큐멘터리로 영상에 담았다.

다큐는 생생한 현장 기록이다.

따라서 다큐의 생명은 진실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영화는 감동을 넘어 충격이었다.

어떤 기적 같은 힘의 작용으로 한 사람이 그리도 놀라운 일을 해낼 수가 있었단 말인가.

이태석 신부님은 자신을 온전히 다 태워 참다운 사랑이 무엇인지를 무언으로 전해줬다.

진정한 희생과 헌신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떠났다.

그리고 그는 착한 마무리란 뜻 그대로 善終을 했다.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은 이렇게 아름다이 사용하는 거라고 말없이 가르쳐주고 그분은 가셨다.


안 그래도 헐벗고 가난한 나라인데 내전으로 더욱 피폐해진 땅이다.

전쟁은 사람들의 심신 두루에 치명적 상처를 입힌다.

광기의 폭력과 증오가 팽배한 사회, 질병이 만연한 열악한 환경에 그는 꽃씨를 뿌렸다.

  
아이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고 손에는 총 대신 악기를 들려줬다.

한센씨 병으로 뭉그러진 발, 흙먼지로 얼룩진 그 발을 씻기고 일일이 본을 떠서 만든 신발을 신겼다.

아픈 이를 연민으로 보듬어 품어주고 다독이며 치료한 그.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러 간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의 그들 속에서 함께 더불어 살고자 했던 그이다.


 왜 하늘은 더 오래, 더 충분히 그를 그들 곁에 머물도록 하지 않으셨을까.

그렇다.

씨앗 하나가 흙 속에 묻혀 온전히 썩어짐으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이제 우리 몫으로 남겨진 숙제다.


나로 하여금 미안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을 일게 한 그분의 어머니를 생각해 본다.

아들을 가슴에 묻고 흐느끼는 노모의 사진이 스친다.

대통령이 된 것만큼이나 기뻤다는 아들의 의대 합격 소식.

그러나 공부를 마친 후 사제가 되고자 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 어머니는 일면 아쉬우면서도 내심 흐뭇하셨으리라.

 
그러다 자기가 설자리로 이 세상에서도 가장 오지인 아프리카 남수단을 택한 의사 아들.

아들의 의지와 고집 앞에 어찌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으랴.

어느 모정인들 순탄한 꽃길 제치고 험난한 가시 발길로 들어서려는 자식을 그냥 바라만 보겠는가.

 
남의 일인 경우에는 장하고 훌륭하다며 좋은 말로 칭찬하기는 쉽다.

누구라도 그냥 말로 인사치레하기는 쉽다.

하지만 막상 그게 제 자식 일로 닥치면 결코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천근 무게의 십자가가 된다는 걸 나는 안다.


몇 년 전 일이다.

딸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고 황망하다 못해 억장이 콱 막혀버렸다.

현실에 안주하여 젊은 한때의 나날을 낭비하는 게 싫다며 자원봉사 팀으로 네팔에 가겠다는 거였다.

평소 속 깊은 딸이다.

따라서 즉흥적인 발상은 아닐 터, 오래 생각하고 궁리한 끝에 작정을 굳힌 것 같았다.

 
하필이면 왜 네팔이냐고 다그쳤다.

이유는 없고 단지 마음이 시키는 일이라고 짧게 말했다.

그 당시 네팔은 민주화 시민혁명의 불길이 일던 때라 전화가 불통되는 등 긴장국면이 장기화되고 있었다.

척박한 산간오지일망정 오로지 설산만을 바라보며 구도승처럼 사는 평화스러운 땅이 아니었다.

히말라야 트래킹 코스로 각광받는 자유로운 여행지가 아닌, 지금과는 다르게 심각한 정정불안 국가였다.


위험한 치안 공백 지역에 가겠다니 기가 차는 노릇이었다.

딸 생각만 하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주변에서는 따님 대단하다며 장한 일이라고 성원을 했지만 어미 맘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딸이 사는 엘에이로 급히 날아갔다.

으르고 달래고 사정사정했다.

끝까지 고집부리면 나도 따라가겠노라 협박도 하고 보람 있는 일은 어디서든 할 수 있다며 간곡히 호소도 했다.

 
안절부절못하는 어미가 딱해 보였는지 회유가 통했는지 딸은 결연했던 뜻을 마지못해 접었다.

오래전 첫 직장을 가지면서부터 아이티와 아프리카 어린이 몇몇과 결연을 하여온 딸이다.

운영 중인 한방 클리닉에서 자체 개발한 피부 연고는 판매액의 15%가 아프리카 식수 펌프 후원회로 자동 적립된다.

매사 마음먹기 나름, 머무는 그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나눔의 기회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긴 한 법이다.


'울지 마 톤즈'의 메시지는 거룩한 삶을 산 한 사제를 높이 들어 올리자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모른 체 내버려 두지 말고 꾸준히 도우라는 뜻일 터이다.

성서에 '부자와 나자로'의 얘기가 나온다.

부자가 훗날 저승 불길 속에서 고초를 받게 된 것은 바로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는 강론을 들은 적이 있다.

 
고난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버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아무나 다 가능한 게 아니며 그런만치 절대적으로 힘든 일이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하지만 사랑의 나눔을 통해 우리는 꽃처럼 아름다운 영혼으로 피어날 수 있다는 걸 이 신부님을 통해 보았다.

남을 기쁘게 하는 그것이 곧 내 가슴까지 잔잔한 행복감 그득 차오르게 하는 일이라는 것도.  2009  미주중앙일보 뉴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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