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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6. 2024

말없음표


한참 전에 일이 시락국을 먹다가 홀연 떠올랐다.


뉴저지에서 엘에이 딸한테 가서다.

세 시간 시차로 인해 새벽부터 잠에서 깨었다.

하릴없이 앉아있느니 부엌일을 좀 거들어준다고 찬장 정리를 하다가 시절에 안 맞는 묵은 시래기 그러나 아주 정하게 잘 말려진 시래기가 눈에 띄는 거였다.

작년에 말려 보냈던 걸 잘도 간수했군, 나도 참 별 걸 다 챙겨 보냈네! 흠흠~

혼잣소리를 하며 큰 들통에 물 그득 붓고는 신새벽부터 여물 냄새 풍기며 시래기를 삶아 제쳤다.

온 집안에 진동하는 냄새로 인해 잠에서 깨어난 딸이 내려왔다.

시래기 삶는 거야? 그건 삶을 거 아니라구... 약으로 쓰려고 일부러 깨끗이 말려둔 건데.....

어쩐지 너무 정하게 보관되어 있다 했지, 쩝~

어머나, 그랬구나... 지난가을에 내가 보낸 걸 그냥 묵힌 줄 알고 치워주려 했는데....

뉴저지 살면서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시래기를 말려온 터.


그중에 속대 연하고 참한 걸로 챙겨  베지테리언인 딸내미에게 소포로 부치기도 했었다.

하여 내가 보낸 줄로 착각했으나 왠지 워낙 얌전스레 말려졌더라니.

아차~이런! 시래기가 한약재로 쓰일 줄이야.


실수를 했구나, 미안.. 이란 말이 그래도 목을 넘진 못했다.

뻘쭘해진 채 한마디쯤 들을 각오가 너끈히 되어있었던 나.


건만 '다시 사다 말리지 뭐......' 그러고 만다.




 예전의 나라면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괜한 일 저질렀잖아!'

소리부터 벌컥 지르고는 급하고 못된 소가지 폭발시켜 짜증이며 신경질을 있는 대로 부렸을 텐데...

이미 벌어진 일, 어쩔 수 없는 경우에도 속 좁고 성질 급한 난 화부터 냈으니.....

순간 엄마 생각이 절로 났다.


그런 때 엄마는 아무런 대꾸가 없으셨다.


앞뒤 설명이나 해명도 일절 없으셨다.


당연히 서운하실 법도 한데, 언짢을 법도 한데.


무심한 세월은 흐르고 흘러....

미안하다는 말 한 번도 못하고 영영 헤어진 엄마.

좀 화를 내주려무나, 엄마에게 죄가 많은 난
너한테라도 타박 듣고 지청구 먹고 싶단다.


속으로만 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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