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Jun 12. 2024

후덜덜, 공포스런 지하 8층

부산에서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배산역에서 내렸다.

번화한 지역이 아니라서인지 지하철 이용 승객이 과히 많지 않았다.

망미역은 이용해 봤으나 배산역은 처음이라 호기심 만발, 전동차에서 나와 이리저리 둘러봤다.

전동차도 4량만 달고 달리니 지네같이 긴 1호선에 비하면 아담스럽고 귀여웠다.

완전 밀폐형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승강장은 깔끔했으며 대리석으로 단장된 승강장 바닥은 깨끗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잠시 후 닫힌 공간에서 느끼게 되는 폐소공포증을 체감하기 전까지는.

후덜덜~ 왜 거듭 이상야릇한 시추에이션이 생기는 거야?

더위 왔다고 서비스 차원에서 납량물을 돌리는 거야 뭐야?

밖으로 나갈 개찰구 입구를 찾기 위해 바로 앞에 보이는 에스컬레이터를 무작정 탔다.

올려다보니 천국의 계단처럼 꼭대기는 까마득 높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상 8층이라면 모를까 지하 8층은 금시초문, 정녕코 듣도 보도 상상도 못 했다.

깜깜하다거나 음산한 음악 깔리지 않고서도 충분히 공포감 느끼게 하던 아주 말끔한 그 지하 공간.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니 어라? 개찰구는커녕 온통 벽이 막혀있다.

이런 상황을 아무 예비지식이나 사전정보 없이 딱 맞닥뜨렸으니 와락 무섬증이 몰려들밖에.

실제로 무너진 터널이나 막장 갱도에 갇혀 외부와 유리된 듯 불현듯 두려움에 휩싸였다.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얼마쯤 오르다 뒤를 돌아다보고는 대경실색, 급경사 이룬 에스컬레이터는 건물 이층높이쯤 되지 싶다.

나중에 알았지만 에스컬레이터 길이가 건물 3층짜리 높이라니 아래를 내려다보면 당연 절벽에 선 듯 아찔.

경사도 가파른 데다 깊이도 지옥에 닿을 듯 깊어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래쪽은 아찔하고 위쪽은 까마득, 게다가 에스컬레이터는 느려터지기까지 하다.

중간에 두 곳이나 비상시 정지 버튼을 누르라는 노란 안내문이 에스컬레이터 옆에 붙어있다.

다 올라왔는데 역시나 출구도 안 보이고 인간이라곤 그림자도 안 비친다.

텅텅 빈 공간, 길 물어볼 사람 하나 없으니 공황장애 엄습하듯 머릿속 하얘진다.

겁에 질려 침착 잃고 당황하는 바람에 이성마저 혼미해진 그 자리가 지하 4층이었음도 후에야 헤아려졌다.

정신 얼떨떨해질 정도가 아니라 숫제 마비돼, 마침 눈에 띄는 엘리베이터에 경황없이 올라탔다.

한 사람의 동승자가 있다는 점에 안도하며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도 신경 쓰지 않았다.

멈춰 서기에 내렸는데 도로 처음 제자리, 승강장이다.

다급히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 같은 동승인에게 SOS!

전 배산 방향이 목적지라 지상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여긴 도대체 어딘가요?

지하 8층이라요, 다시 엘리베이터 타고 주욱 올라가셔서 2번 출구로 나가이소.

시국이 하 수상한 판이라 거의 계단을 이용하며 엘리베이터는 가급적 타지 않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계제가 아니다.

겨우 혹성 탈출하듯 어렵사리 미로 같은 동굴을 벗어나 드디어 햇빛 아래 섰다.

휴우~ 살았다.

 
 

부산 도시철도 3호선은 수영구 수영역과 강서구 대저역을 잇는 부산 지하철 노선이다.

수영-망미-배산-물만골-연산동-거제-종합운동장-사직-미남-만덕-남산정-숙등-덕천-구포-강서구청-체육공원-대저역.

총 17개 역사로 이어져 있는 비교적 짧은 구간이다.

그럼에도 3호선은 착공 이후 8년여에 걸쳐 2조 가까운 사업비가 들어가고서야 완공된 괄목할만한 토목공사였다.

3호선은 산과 언덕이 많은 지역을 통과하게 되는 지하철 노선이라 플랫폼이 대개 깊숙한 땅속에 자리했다.  

금련산과 배산 사이에 낀, 야트막해 보이지만 망미 고개 밑이라 승강장이 아주 깊은 곳에 있는 배산역.

지하 8층이나 되는 어마무시한 깊이를  파내려 갔으니 깊디깊은 지하 55.2m로 정말이지 무척 깊다.

헌데 층수는 지하 8층이나 그 층당 간격조차 매우 길어 아파트 18층짜리와 맞먹는다고.

승강장이 너무 깊은 곳에 위치해 만약의 경우 비상사태 시 승객 대피에 문제가 생기고도 남겠다.

중요 이동수단인 엘리베이터는 승강장 양쪽 끝에 한 대씩 있다는 것 역시 나중에 안내도 보고 알았다.  

여기선 개찰구를 통한 다음 지상으로 오를 때나 뭘 모르는 경우에나 에스컬레이터를 탈뿐 필히 엘리베이터만 타야 했다.

그래야 긴장한 채 불안에 떨며 우왕좌왕 생고생 안 한다.

지상 출구는 여섯 곳이다.

여기보다 더 지하로 내려간 곳은 만덕역, 지하 9층이며 78m로 가장 깊은데 엘리베이터만 운행하는 역사라 혼 빼앗진 않겠지.

작가의 이전글 취향(醉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