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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가 무엇이관대

by 무량화

전에 우리가 살던 부산 망미동은 수영공원과 가까웠다.

바로 그 옆에 25의용사가 자리하고 있다

25의용사 건립문에 나타나있듯 임진왜란 시 순국한 의사들의 충절을 기리고자 건립한 사당이다.

수영성에 침입한 왜군은 성주 없는 성을 무혈접수하고는 이곳에 계속 머물며 약탈과 살육을 일삼았다.

이미 경상좌수사는 성을 버리고 도망쳤으므로 수병과 성민 25인은 죽기를 각오하고 적과 결사항전하기로 결의하였다.

'적들의 위협에 굴복하여(脅從假命) 왜복을 입고(服班爛) 오랑캐의 소리로 말하는 자(言侏離者)'가 되지 않겠노라는 굳은 다짐이었다.

분연히 일어나 싸우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리니 죽음으로 나라를 지키리라, 외치며 그들은 義를 푯대 삼아 7년 동안 유격전을 펼쳐나갔다.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려 적에 대항하였으나 중과부적, 적의 칼날 아래 목숨을 잃고 마침내 장렬히 순절하였다.

바람이 세게 불어야 굳센 풀을 알게 된다(疾風知勁草者)는 말처럼 의인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민초들이었으나 절의와 용기로 향토를 수호해냈다.

지방민의 청원에 따라 25분의 위대함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몇 해 후인 1609년으로 동래부사 이안눌이 의인들의 행적을 수집하여 정방록(旌㥬錄)에 실었다.

또한 그분들의 집 대문에 '의용(義勇)'이라 써 붙였으며 철종 4년에는 경상좌수사 장인식이 수영공원에 비를 세워 의용단이라 칭했다.

그후 재실을 지어 의용사로 명칭을 바꾸고 봄 가을 두 차례 제향을 봉행하며 푸른 솔처럼 청청하고 고결한 순국선열의 호국충절 정신을 기렸다.

사당인 의용사, 내삼문(영회문), 외삼문(존성문), 관리사 등을 건립하는 등 지금의 규모로 경내를 정비한 것은 근자의 일이다.

이곳은 제를 모시는 경건한 사당이므로 제향 때 외에는 개방을 하지 않는다.

의용사를 지키듯 담장 따라 좌우로 줄지어 서있는 비석에 새겨진 그분들 존함은 다음과 같다.

정인강(鄭仁疆), 최송업(崔松嶪), 최수만(崔守萬), 박지수(朴枝壽), 김팽량(金彭良), 박응복(朴應福), 심남(沈男), 이은춘(李銀春), 정수원(鄭樹元), 박림(朴林), 이수(李樹), 신복(辛福),김옥계(金玉啓), 이희복(李希福), 최한연(崔汗連), 최한손(崔汗孫), 최막내(崔莫乃), 최끝량(崔-良), 김달망(金達亡), 김덕봉(金德俸), 이실정(李實貞), 김허농(金許弄), 주난금(朱難今), 김종수(金從守), 김진옥(金進玉).

스물다섯 분 선열들의 비석 앞에서 義의 의미를 되새기자니 자못 숙연해진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소재한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12호이다.




바르다, 옳다는 뜻의 義는 羊과 武가 결합된 문자로 제단에 올려진 양을 칼(武)로 잡으려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니 희생제물의 죽음을 이름이다.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맹자는 일찌기 경험해 본 바 없을 정도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극심한 혼돈기를 몸소 겪었다.

이익추구에 몰두해 사람들은 양심을 팔고 거짓을 일삼았으며 죽기살기로 토지 쟁탈전을 벌이느라 사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혼란스러웠다.

맹자는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며 그 마음을 일러 義라고 하였다.

곧 타인의 잘못에 분개하고 기꺼이 칼을 뽑아들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인간다운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라고 했다.

불의가 득세하는 시대는 곪아서 농이 가득찬 병든 세상으로 머잖아 화농은 터지고 말게 마련이다.

공공의 이익, 공동선을 위해 투신하는 의로운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대, 25의용사가 묵언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도덕 원리를 근거로 하는 판단은 도덕적 신념을 가려내는 수단이자, 우리가 어떤 생각을 왜 하는가를 이해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 글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메모한 구절이다.

하버드 대학생들이 듣던 대학 강의 'justice'의 수업 내용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새삼 반추하게 하는 요즘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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