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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01. 2024

주산지, 물 밖으로 걸어 나온 왕버들

새벽같이 일어나 부우연 안갯속을 달렸다.

안동댐 안개인가 싶었는데 청송으로 들어서자 부유하는 안개 무리로 산 자취 숫제 묘묘했다.

오호~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주산지 물안개까지 기대해 볼 만하겠는데.

휙휙 스치는 차창 밖, 아직 자잘한 청송 사과알 그래도 발그레 볼 붉히고 있었다.

안개꽃 깔아놓은 듯 들길 개망초꽃 온데 무리 져 지천이었다.

주산지 입구에 다다를 무렵 엷은 구름장 사이로 해가 솟았다.

아무렴! 주산지 왕버들만 보여줘도 괜찮고말고.


최상의 완벽한 조건이 기다려주지 않은들 어떠랴.

몽환적으로 피어오르는 물안개 걷힌 들 어떠랴.

안개 환상적이라 현실 세계 같지 않아도 실제 찍어보면 밋밋해 어차피 실망스러울 것을.

사진 하는 이도 아니거늘 삼박자 다 갖춰져 있다 해도 솜씨가 솜씨인 만큼 만족하긴 어려울 터.

처음으로 갖는 상견례 자리라 하여 들뜬 마음에 욕심부리진 않겠다.

객쩍게 멋이나 부리려 주산지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저 왕버들과 눈 맞추고 싶을 따름.

대한민국 명승 제105호로 지정되기 훨씬 전부터, 봄여름가을겨울 영화 나오기 전부터, 사진작가 현송에게 그 명성은 익히 들어왔다.

그녀는 80년대에도 신새벽 왕버들을 찍으러 사철 번갈아 주산지를 다녀왔으니까.

산소같이 대기 청정한 청송이라서인지 청량한 공기 의식적으로 심호흡하며 걷노라면 산 내음이 자연스레 배어든다.

녹음 깊어가는 여름임에도 숲 빛깔은 마치 초봄 신록처럼 연연하면서도 싱그럽다.  

숲 속 오솔길은 보통 흙길, 흙을 밟는 감각이야말로 흐뭇하기 그지없다.

내내 이어진 데크길 천천히 걷다 보면 두 곳의 전망대가 기다린다.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인 산중 물속에 허리 담근 노거수 수양버들과 왕버들이 자생하고 있는 주산지다.

안내글을 보니 뜨거운 화산재가 엉겨 붙어 만들어진 응회암이라는 치밀하고 단단한 암석이 바닥에 깔렸단다.

그 위로 쌓인 퇴적암층에서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었다가 조금씩 흘려보내기에 풍부한 수량을 유지한다는 주산지.

따라서 큰 그릇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는 저수지란다.

주산지는 일부러 만든 저수지 맞긴 한데 생각보다는 매우 작아 둠벙 정도 크기였다.

아주 오래전 조선 중기인 1721년 협곡 끄트머리에 축조된 이후 아무리 가물어도 바닥 드러낸 적 없었다는 저수지.

짧지만 둑방길도 나있어서 일부러 만들어 물을 가두어 둔 주산지 입구 절벽가엔 축조비도 하나 서있다.

별로 깊어 보이지 않는 야트막한 물, 그나마 녹조가 잔뜩 낀 물속에 산이 거꾸로 박혔고 반사경처럼 하늘도 되비친다.

서정적이면서도 추상적이리라 상상했던 것보다는 건조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청송이 자랑하는 정원 같은 풍경이다.

산세 무턱대고 호방해 고압적이지 않아 좋았고 그윽한 숲 향기 고즈넉이 품어 그도 좋았다.

한낮에 와도 어쩐지 첫새벽 느낌을 줄 거 같은 곳, 완벽 무공해 청송 브랜드대로 온 데서 산소 카페 분위기가 난다.

하지만 물을 담은 저수지 자체가 너무 빈약해 오래 마음 품어온 주산지 이미지는 전보다 영 엷어질밖에 없었다.

저수량 부족으로 주산지 왕버들은 물 밖으로 걸어 나왔고 무엇보다 물속 팔뚝만 한 잉어 무척 갑갑할 거 같았다.

오월 내내 비가 온듯한데 영남 지방은 물 부족으로 미처 모심기 마무리를 못했다 할 정도로 강우량 부족했나 보다.

문득 몇 년 전 그리도 안타까웠던 사브리나 호수가 떠올랐다.

겨울 가뭄이 워낙 심했던 그해, 사브리나 에메랄드빛 호수 주변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수심 낮아진 표티 역력했다.

얼마점에 들른 안동호 그 너른 호반 언저리 흔적조차 약 2미터쯤 수위 쑥 내려가 있었으니까.

그간 장마철처럼 비가 잦다며 투정 부린 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숲길 푸르른 주산지를 내려와 이번엔 주왕산 입구로 향했다.

주산지까지는 주차장에서 왕복 2.7킬로로 다녀오는데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애완동물 동반은 불가다.

위치: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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