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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02. 2024

뜻밖의 보석함, 군자마을

예로부터 선비와 군자가 다수 배출된 유림의 고장인 안동이라서일까.

도로변에 ‘오천 유적지’라는 안내판이 서있고 자연석에 ‘군자리’라고 새긴 표석이 연이어 나타났다.

표지판 따라 오른쪽 숲길로 조금 들어서자 산자락에 도인들의 은거촌이듯 스무 채 남짓의 고택들이 들어앉아 있다.

마치 전설 속의 이상향이듯 한 고택들이 한결같이 단아한 모습으로 우릴 맞았다.

사전 지식 없이 우연히 만난 정경인데 감탄을 넘어 거의 경탄에 가까운 충격으로 안겨든 도산구곡 군자마을.

어딘가 이국적이어야, 그것도 유러피안 스타일이어야 단숨에 뜨는 명승지가 되는지?

바닷가 언덕에 풍차 하나 세워놓았어도 원거리 마다않고 찾아와 인증샷 눌러대느라 야단법석들인데.

그와는 비교불가일 정도로 한국적 풍광 오롯이 지닌 군자마을이건만 어찌 그간 세간에 회자가 아니 됐던지?

단언컨대 정도로 품격 있는 명품 마을이다.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뭘 모르는 나의 과문 탓인지 모르겠으나.




 
조선조 초기부터 광산 김 씨 예안파가 20여 대에 걸쳐 약 6백여 년 동안 깃치고 살았다는 군자마을이다.

입향 시조인 김효로의 후손들이 대대로 번창하며 명문 양반가이자 영남 사족으로 명성을 날렸다.

현재 건물들은 구 예안면 오천리 외내에 있던 한옥들인데 기와 한 장까지 원형 그대로 이전 복구시켰다고.

1974년 안동댐 조성에 따른 수몰을 피해 새로 옮겨 앉은 오천 유적지인 군자마을은 육백 년 역사를 지녔다.

문중이 대대로 소장해 온 벼루 등 문방사우와 인장 제구 등의 유물들을 모아 전시해 놓은 작은 박물관 숭원각.

교지, 전답 문서, 노비 문서, 혼서지 등 보물급에 속하는 수천 점의 각종 고문서와 문집을 남긴 선대들의 전적들이 모여있다.  

그중 몇 백 점이 민속 또는 역사 연구의 주요 자료로서의 귀중한 가치가 인정돼 보물로 지정되었다.

소리 없이 환호하게 만드는 예스러운 마을, 선비문화의 전통이 면면이 살아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었다.

이중 탁청정과 후조당은 국가지정 문화재, 종가 및 광산 김 씨 재실과 침락정은 경북 지정 문화재다.

조선 중기 김유가 건립한 광산 김 씨 종가의 누정인 탁청정(濯淸亭) 이름은 중국 고사에서 따왔으며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라 한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


빙 둘러 난간을 돌린 마루에는 퇴계 이황 등 당대 이름난 학자들의 글이 걸려있는 국가 민속문화재 제226호인 문화유적지 탁청정.

山擁溪回抱一亭(산옹계회포일정) / 산이 둘러치고 시내 휘돌아 정자를 안았는데,

主人非是冷書生(주인비시냉서생) / 주인은 틀림없이 냉랭한 선비 아니로세

珍羞八百叱奴取(진수팔백질노취) / 진귀한 음식 여러 가지 800명 노복(奴僕)시켜 대령하고

美酒十千投轄傾(미주십천 투할경)  /  맛 좋은 술 무수(無數)히 술잔을 기울였네

斫樹奇模人未識(작수기모인미식) /  나무를 베어낸 기이한 모책(謀策) 사람들은 몰랐는데

穿楊妙技客誰爭(찬양묘기객수쟁) /  버들 뚫은 묘한 재주 어느 손(客)이 다툴 손가

濯淸儘有風流在(탁청진유풍류재) /  탁청 주인 적잖이 풍류(風流)가 있어서

竹簟氷肌到骨淸(죽점빙기도골청)  / 대자리처럼 고운 피부 뼛속까지 해맑아라.

이 시가 나타내듯 노복을 팔백 명이나 거느렸다니 부모님 모시고 고향을 지켰다는 김유는 넉히 풍류 놀음할 만도 한 위치였으리라.

인심 넉넉하고 해맑은 정자 쥔장이라 이황, 이천보 등 당대 명현들이 자주 들리던 풍류공간이자 선비문화의 산실 역할을 한 이곳.

김유는 사대부로는 드물게 <수운잡방>이라는 필사본 요리서를 남겼는데 조선조의 식생활과 조리 연구를 하는데 귀한 자료라고.

탁청정은 영남지방 소재 개인 정자로는 웅장하고 우아한 건물로 소쇄원 같은 고졸미는 덜하지만 외관이 매우 수려하다.

마을 전체가 안동호를 내려다보는 위치라 전망 훌륭한 데다 정자 앞엔 연못을 만들어 사뭇 고아한 정취를 누렸을 일족들.

뉴저지에서 한 교우가 침락정이란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침락이 무슨 뜻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자긍심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자기 고향에 있는 정자 이름이라며 깊은 낙동강을 베고 누웠다는 의미라 했다

상세히 부연 설명을 해줬던 걸로 미루어 그녀는 남편 성을 따라 미시즈 장으로 불렸지만 본래는 광산 김 씨였던가 보다.

한편 조선을 곪게 만든 세도정치 시대 한몫한 안동 김 씨와 광산 김 씨였으나 반면 의병장으로 활약한 인물도 배출시킨 가문이다.

마을 입구에 창끝처럼 첨예하게 솟은 대리석 순국 기념비가 청청한 솔숲 대숲에 싸 안겨 있다.

영주나 양동 선비촌은 역사성은 물론 문화적으로나 규모 면에서 이에 비견하기엔 여러모로 미흡하지 싶다.

그만큼 군자마을 분위기는 상당한 품위와 격조가 느껴졌다.

안동에 흔하디 흔한 기와를 인 한옥집이라 얼마쯤 식상할 법도 한데 그와는 또 다르게 차별화된 품격으로 조근조근 스토리를 풀어내는 고택들.

다만 널리 홍보가 안돼 찾는 이 별로 많지 않아 호젓함까지 더하는 군자마을.

하기사 종손들이 살고 있으니 방문객의 번잡스러움보다는 일부러 적요로움을 즐기고자 하는 속뜻 때문일지도.   

위치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군자리 길 21 (오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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