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Jul 04. 2024

날씨가 제일 큰 부조

잔칫날이건 행사날이건 날씨가 부조 안 해주면 일껏 준비한 판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아무리 사전홍보 열심히 해서 손님 불러 모았어도 날씨가 궂으면 말짱 꽝.

역시 사람 모이는 일에는 그날 기상 상태가 매우 중요해 행사의 성패마저 좌우한다.

더구나 바깥에서 치르는 행사나 잔치는 날씨 부조가 제일 큰 부조란 말이 생길 정도로,
어디까지나 하늘이 도와줘야 행사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겠다.

우리네 인생 판도 역시 노력여하에 달렸다기보다 하늘 도움 여부에 따라 극과 극으로 달라지기도 한다.


꼭대기 사진은 오전에 본 블러바드 중심가 풍경이다.

토요일 이른 시각부터 인부들이 나와 블러바드 가로 곳곳에 참한 모형의 부스를 설치했다.

짙푸른 하늘에 성조기와 만국기 매달리고 풍선도 한아름씩 띄웠다.


벌써부터 거리는 조금씩 들썩거렸다.

1930년대 마을이 조성되기 시작해 70년대 후반 들면서부터 도시의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했다는 랭카스터다.

40년마다 매듭을 지어 기념자리를 마련했는데 올해는 토요일 오후 여섯 시 '40th Anniversary celebration' 행사가 걸게 펼쳐진다고 하였다.

해 설핏해지자 집 앞까지 주차가 밀려들고 밴드 리듬 울려오며 서서히 분위기 달구어져 갔다.

현관을 나서니 맞은편 하늘은 잔뜩 심술 나있었고 성난 우레소리 마구 으르렁거렸다.

 날카로운 뇌성조차 요란한 밴드소리에 묻혀 기를 못 펴고 있었으나, 집중호우경보가 내린 대로 곧 소나기 한바탕 쏟아질 거 같았다.

슬리퍼 바람으로 잠시 행사장 면면의 간이나 보자고 나갔는데 거리는 벌써 인파로 붐볐다.  

대형 성조기 나부끼고 자유의 여신상은 블러바드 중심 단상에 횃불 들고 서있었다.

시의회의 적극 후원에다 경찰서와 소방서에서도 오래전 구식 장비를 동원, 행사를 측면지원했다.

채 어둠살 내리지 않았지만 조명 환한 부스마다 각종 기념품이 전을 펼쳤고
간이음식점 앞엔 이미 긴 꼬리 줄이 따라붙어있었다.  

밴드 연주는 귀에 익은 70년대 컨츄리뮤직 일색으로 이어졌다.

사진 두서너 장 찍고 나자 후덥지근 습도 머금은 대기 흐름이 불안하게 요동치며 날씨가 심상치 않아 졌다.

한두 방울 비 흩뿌리는가 싶더니 갑작스레 폭우로 변해서 빗방울은 미친 듯 행사장을 난타해 댔다.

 밴드 허겁지겁 악기 거둬 철수하고 성조기도 내려졌다.


물론 사람들도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져 내빼기 바빴다.

 어찌 피해볼 새도 없이 기습적으로 들이치는 소낙비에 모두들 흠씬 젖어, 물 뚝뚝 흐르는 채로 각자 자기차를 향해 내달렸다.


야단법석 난리가 따로 없었다.

마치 서해 갯벌에 흩어져 놀던 달랑게가 인기척 듣고 놀라 삽시에 사라져 해변 고요해지는 것처럼, 뭇 인파 물러간 블러바드는 후줄근히 빗속에 잠겨 들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행사는 날씨가 받쳐주질 않아 맥없이 끝나고 말았다.  

비는 한 시간여 맹렬히 그야말로 줄기차게도 퍼부었다.

묵직하게 드리웠던 난층운 다 비워졌는지 비 멎자 텅 빈 블러바드 쪽에서 펑펑펑!!!

환호하는 이 없이 혼자 싱거운 불꽃놀이로 행사는 마무리, 애꿎은 우리 집 파숫꾼만 혼쭐 뺐다.

전생에 전쟁터에서 죽은 영혼처럼, 녀석은 어째서 오줌까지 지리면서 그다지도 폭죽소리에 유독  쩔쩔매는지... 궁시렁대 녀석 곁을 지켜줬다.

비로 엉망된 축제의 밤이 깊어가는 걸 무연히 바라보면서. 2017










                         


                  




작가의 이전글 섬에서 몇 년 더 살아야 할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