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가득 남해바다를 품고 배경으로는 높푸른 금정산과 유장한 물줄기 낙동강에다 동래온천까지 끼고 있는 부산.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부산에는 다섯 개의 아름다운 대(臺)가 있다.
해안가에 자리한 해운대(海雲臺), 태종대(太宗臺), 몰운대(沒雲臺), 신선대(神仙臺)와 내륙에 위치한 오륜대(五倫臺)를 부산의 오대라 한다. 어제 찾은 오륜대, 뛰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는 호수 저편 산기슭에 우뚝 솟은 바위를 지칭하며 넓게는 회동 수원지 부근 아름다운 경치를 일컫는다. 숲해설가가 내게 질문한다. 오륜대의 오륜은 무슨 뜻일까요? 언뜻 올림픽 깃발이 떠오르나 아무래도 생뚱맞은 연상이기에 답변은 보류한다. 글쎄요? 대신 그녀에게 되묻는다. 삼강오륜의 그 오륜인데요, 당쟁 자심했던 조선시대 때 대쪽 같은 선비 다섯이 산과 계류로 둘러싸인 절경지에 은둔하며 풍류를 즐긴 곳이었대요.
맞은편 산기슭에 기암괴석으로 남은 절벽을 보나 따나 학이 노니는 선경이었으련만 옛 풍치 일부는 물속에 잠겨 버렸고 어언 안목만 높아진 세월이라 빛도 바랬다. 선동 마을을 떠나 본격적인 갈맷길 걷기에 나섰다. 강바람 솔바람 즐기면서. 호젓한 듯 휘휘한듯하면서도 아주 적조 치는 않게 마주 걸어오는 발길 끊기지 않았다. 덕분에 사색의 시간만은 알뜰하게 누릴 수 있었다. 오륜대를 걸으며 곱씹어 본 오륜,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다섯 가지 덕목을 이른다. 도리를 가르치는 도덕이나 윤리가 실종된 사회, 도덕과 윤리는 한마디로 바르게 정직하게 선하게 살라는 말 아닌가. 유교에서 기본이 되는 도덕 지침인 삼강오륜은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 인륜을 칭한다. 그중 이 시대에 절실한 君臣有義(군신유의), 義로움의 출발지인 인의예지신(仁, 義, 禮, 智, 信)을 되새겨보며 갈맷길을 걷는다.
취미가 걷기다. 자신 있게 잘하는 운동도 딱 하나, 걷기다. 하냥 몇 시간이고 걸어도 지치지 않는다. 무심코 하염없이 걷는다기보다 의식 말갛게 풀어놓고 사색도 하지만 운동이 되도록 성큼성큼 활기차게 걷는다. 느슨히 긴장은 풀되 평화로운 물결에 몸을 맡긴 듯 자연의 리듬을 타고 걷는 일은 즐겁다. 바람과 햇살과 나뭇잎의 흔들림과 푸른 하늘, 오감 자유로이 열어두고 걷다 보면 수시로 감탄사 발해진다. 어린아이처럼 감동하는 순간순간이 행복이다. 그저 그렇던 사소한 모든 것에 무한 감사하게 되는 순백의 영혼으로 돌아간다. 참행복감은 자신이 즐기고 원하는 일에 심취해 무언가를 이뤄낼 때 드는 만족감이 아닐지. 행복은 스스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자각이 들 때 느껴지는 것. 행복에 대한 정의는 각자 가치관이나 관점에 따라 다를지라도 누구나 추구하는 행복이 아닌가.
충만한 행복감이 따르기에 오늘도 걷는다. 걷다 보면 온몸의 감각이 자동으로 열린다. 시각은 물론 후각과 청각, 촉감까지 충족시키면서 걷는 동안 예기치 않은 차원의 미세한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걷는다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몸의 움직임이나 의외로 정신적 쾌감을 만들어 내 전율 같은 환희심이 벅차오르곤 한다. 걷기는 신경 세포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어 뇌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걷기 예찬론자들에 따르면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하였다. 자주 걷다 보면, 걷기는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는 말에 절로 동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두뇌활동을 위해서도 걷기는 필요하다.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다들 안다. 걷기는 단순히 몸의 건강만이 아니라 뇌의 건강에까지 도움을 준다고 한다.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뇌는 수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걷노라면 상쾌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은 뇌에 좋은 자극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만나는 자연이건 만상들에 반응하며 걷노라면 뇌에 자극을 주게 돼 기억력을 향상시킨다. 사진 찍으면서 걷거나 꽃 이름 뇌이면서 걷는 것도 기억력 훈련을 통해 뇌를 자극해 준다. 이럴 때 뇌는 세로토닌이라는 행복 호르몬을 끝없이 만들어 낸다. 세로토닌은 행복한 감정을 유발하는 호르몬이다. 동시에 햇빛을 받으면 효과는 배가돼 세로토닌이 더 잘 분비된다고 한다. 내 몸이 태양전지가 되어 솔라 에너지를 가득 충전시키면 자동으로 건강은 따르게 마련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거나 멋진 풍경을 볼 때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 마찬가지로 수목이 울창한 숲이나 강가를 따라 걷게 되면 쾌감 물질인 도파민이 활성화된다.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분비는 의욕을 증진시켜 준다.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는 건 걷는 동안 분비되는 호르몬 때문이다.
그렇게 걸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완비된 알맞춤한 공간 한 군데를 알게 돼 자주 찾는다. 회동수원지를 낀 오륜대 내의 땅뫼산이 그곳이다. 여기엔 맨발로 걷는 황톳길이 1킬로미터쯤 이어지고 편백림 산림욕장이 산기슭 따라 마련돼 있다. 편백나무숲에는 평상과 벤치가 곳곳 설치돼 있어 온몸으로 피톤치드 받아들이며 삼림욕을 하거나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숲과 호수 거느리고 산책할 수 있는 인근 생태여울길도 사색의 공간으로는 안성맞춤이다.
명상의 숲이라 이름한 편백 숲 평상에서 가부좌하고 깊숙하게 복식호흡도 해보고 산기슭 빙 둘러 이어진 황토 흙길을 맨발로 천천히 걸어본다. 상쾌한 피톤치드가 전신 마사지를 해주는 느낌이라 편백숲도 좋았고 서늘하니 찹찹한 땅기운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황톳길 맨발 걷기는 더더욱 좋았다. 자연 정기 듬뿍 받아 심신 정화시킨 다음이라 세족례 하듯 샘터에 걸터앉아 정하게 발을 씻는데 어느새 잔등에 어룽거리는 저녁 햇살 눈부셨다. 옛 신선은 구름 되셨을 테고 청명한 날씨에 오륜대로 초대받은 나, 짙푸르게 펼쳐진 호수 풍경 바라보며 노닌 하루는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주춤대며 망설이던 한국행인데 오륜대 걸으며 새록새록 돌아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그 시간이 매우 행복했던 모양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나이 들수록 대부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바로 건강 문제인데 그중에서도 제일 겁내는 것이 치매 발병이다. 본인은 천국, 가족은 지옥이라는 말처럼 주변 사람들을 힘들고 지치게 하는 치매.
최근의 의학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치매 예방에 가장 좋은 게 걷기다. 그것도 빠르게 걷기다. 땀이 살짝 날 정도로 빨리 그리고 꾸준히 걷는 것이 뇌혈류를 개선하고 특히 기억 중추인 해마를 활성화시킨다는 것.
걷는 동안 혈액순환이 활발해지면서 뇌로 전해지는 산소와 영양공급이 늘어 뇌세포의 활동이 왕성해진다.
그렇게 일주일에 세 번, 30분~1시간 정도 꾸준히 운동을 하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특히 빠르게 걸으면서 속보를 즐기는 사람은 치매 걱정을 덜어도 된다 하였다.
이처럼 무조건 치매를 막으려면 치매가 발붙일 새 없이 걷고 또 걷는 게 좋다고 우스개처럼 말한다. 그러나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다.
그 표본 케이스가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아미시 공동체다. 대도시 필라델피아에서 한 시간 거리에 사는 그들은 자동차, 전기를 거부하고 19세기 방식으로 살아간다. 해서 그들은 지금껏 텔레비전이나 전화가 없으며 아직도 펌프물에 마차를 이용하고 있다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그들은 농장 일을 하며 하루 평균 1만 3천~1만 8천여 보를 걷는다. 미국인 성인 평균보다 6배나 많은 걷기다.
이들 아미시의 당뇨 발생률은 2%. 미국 평균의 5분의 1도 안된다. 치매와 심장병 예방효과가 있는 고지 단백(HDL) 콜레스테롤치가 아미시들에겐 매우 높다고. 따라서 치매 발생률이 아주 낮고 만일 생기더라도 늦은 나이에 온다고 한다. 학자들은 그 이유를 엄청난 양의 걷기에서 찾는다.
느린 걸음으로 평지만 걷다가 이번에는 해발 175m의 자그마한 산이나 솔숲 길 제법 가풀막진 부엉산으로 올라갔다. 이름대로 부엉이가 둥지를 틀만큼 의외로 산세는 깊었고 하늘로 이어진 듯 층층 계단 휘돌아 오르자 조망터로 손색없는 오륜대 전망대가 정상부에 나타났다. 사방을 굽어보니 발치엔 너른 회동 호수와 수원지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앞쪽 저 멀리로는 길게 누운 수원지 지나 춤사위 고운 아홉산 자락과 장산이 잡히면서 아슴하니 해운대 수영 신시가지가 보였다. 방향 바꿔 북쪽으로 돌아서자 호수 건너 금정산 아래 줄 선 아파트며 울멍줄멍 솟은 여러 뫼들과 양산으로 이어진 경부고속도로가 훤하게 드러났다. 낮은 산치고는 360도 어디랄 것 없이 고루 조망권 훌륭했으며 더러 소나무 가지에 가리기도 하지만 그조차도 주렴이듯 운치 로왔다.
전 같으면 산꼭대기에만 오르면 야호! 외쳐 댔는데 어쩐지 잠잠하기에 나 역시 야호 대신 심호흡 여러 번 하고는 부엉산 내려와 수변길로 들어섰다. 오륜대 누리길은 수변을 따라 걷는 둘레길로 호수와 숲길이 조화 이뤄 고즈넉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명상의 숲이라 이름한 편백 숲 평상에서 가부좌하고 깊숙하게 복식호흡도 해보고 1㎞에 달하는 황토 흙길을 맨발로 한번 더걸어보고. 상쾌한 피톤치드가 전신 마사지를 해주는 느낌이라 편백숲도 좋았고 서늘하니 찹찹한 땅기운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황톳길 맨발걷기는 더더욱 좋았다.
걸을수록 뇌는 젊어진다고 하였다. 걸으면서 끊임없이 두뇌의 광범위한 부위를 계속 자극하고 단련하기 때문이다.
신체 부위는 사용하지 않으면 굳어진다. 근육이 굳는 것과 마찬가지로 뇌도 쓰지 않으면 굳어 버리게 된다. 뇌의 신경회로망을 자극하는 최고의 방법이 걷기라고 하니 걷기의 힘은 대단하다.
몸과 정신이 조화로이 만나는 순간의 희열을 느낀 체험, 그것이 각인되어 있기에 계속 걷고 싶은 충동이 이는 난 걷기에 중독된 지도.... 오늘도 걷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자연 정기 듬뿍 받아 심신 정화시킨 다음이라 세족례 하듯 샘터에 걸터앉아 정하게 발을 씻는데 어느새 잔등에 어룽거리는 오후 햇살 눈부셨다. 옛 신선은 구름 되셨을 테고 청명한 시월에 오륜대로 초대받은 나, 짙푸르게 펼쳐진 호수 풍경 바라보며 노닌 하루는 신선놀음 따로 없었다. 오래 주춤대며 망설이던 한국행인데 오륜대 걸으며 새록새록 돌아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그 시간이 매우 행복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