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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ug 20. 2024

가장 먼저 태풍이 도착하는 법환포구

하늘도 바다도 무채색이다.

거처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귀포 앞바다에는 연신 허연 파도가 밀려든다.

어제부터 일본 오키나와에서 발생한 태풍이 한반도로 북상 중이라 그  영향인지 내도록 비는 오락가락, 뇌성도 들리는 고약한 기상도였다.

고온 다습한 열기를 품은 태풍 종다리가 오늘 오후 여섯 시경 제주를 통과할 거라며 풍랑 대비에 철저하라는 안전문자도 떴다.

구름 잔뜩 낀 날씨라 해도 없는데 낮 최고기온은 33도, 후덥지근을 넘어  찜통같이 무더웠다.

입추 지나면서 제법 살랑대던 바람결이 백중 무렵엔 설렁설렁 불었는데 아침나절 창밖 가로수가 심하게 흔들리는 걸 보자 해풍 시원할 법환포구로 향했다.



법환포구,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태풍이 도착하는 곳이다.

태풍 영향으로 서귀포에는 하루 종일 강한 바람과 지역적으로는 들쭉날쭉 비가 내렸다.
법환포구 초입에 들어서자 엉덩물과 서가름물 용천수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바다는 오히려 파도도 잠잠한 채로 표정 없이  물결만 순하게 출렁거렸다.
해수욕장이고 갯바위 낚시터마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출입을 금지시켰는데 전혀 풍랑이 일지 않다니.
불과 몇 시간 후면 태풍이 곧바로 들이닥칠 판인데 거짓말처럼 바다는 고요했다.
막숙포로를 따라 난 법환 야외공연장에 올라 조형물 사진을 찍는데 느닷없이 장대비가 쏟아졌다.


 

잠시 비를 피하려고 식당 쪽으로 달렸다.
광장에 방송사 언론사 카메라들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말로 듣던 대로다.
당시 시각은 정오 갓 지난 즈음으로 바다에 파도도 전혀 일지 않는데 벌써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기 중인 촬영팀.
태풍은, 태풍의 눈이라 불리는 핵이 뱅글뱅글 돌면서 호우와 강풍을 동반하고 무서운 기세로 상륙해 피해를 입히곤 하였다.
자연재해가 통상 그러하듯 하나같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손실을 끼치며 인명피해 역시 적잖이 발생했다.

다행히 이번 태풍은 예년에 비해 세력이 약한 편이나 많은 비를 예고하고는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재난에 준하는 태풍이 한반도를 급습하곤 하였다.

그때마다 법환포구는 맨 앞에 서서 온몸으로 태풍을 겪어냈다.

이를테면 북상하는 태풍을 최초로 맞는 전초기지나 마찬가지인 법환포구다.

따라서 태풍의 위력을 현장감 살려 전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적지가 여기인 셈.

이번에도 법환 현장에서 실시간 중계방송이 전해지고 뉴스 사진도 속속 올라올 것이다.

KBS 중계차가 도착하자 부산하게 사람들이 움직였다.

그러나 여전 바다는 잠잠하다.

시간을 체크하며 먼바다에 시선을 둔 취재진들.



종다리가 횡포스럽게 포구로 달려드는 순간, 그들은 스탠바이를 외칠 것이다.

"태풍 '종다리'가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면서 제주도 전역에 태풍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오늘 밤 아홉 시를 기해 태풍은 전남 진도 남서쪽 해상까지 올라간 다음 영향력이 약화될 건데요.

이 시각 제주에 나가 있는 취재기자 연결해 현장 상황 알아보겠습니다."

검푸른 현무암과 테트라포드에서 산더미처럼 치솟아 오르는 파도를 보여주며 앵커가 운을 뗄 것이다.

이어서 우비 자락 흩날리며 다소 긴장된 표정의 기자가 짤막하게 답하는 멘트는 거의 대동소이하다.

"네, 여기는 제주 서귀포시 법환포구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 현재 내가 서있다.


잠녀(해녀) 마을 선정 기념비를 지나 고려시대 몽골족인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최영장군이 막사를 설치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 막숙포에 선 승전비도 지나쳤다.

파스텔 그림같이 아기자기한 최영로 길로 접어들었다.
범섬이 바로 코앞이고 해녀 마켓이 열리듯 해녀들의 작업장이기도 한 청정 바당이 펼쳐져 있는 곳.
여기는 해녀학교 실습장이기도 하다.
초보 해녀들이 상군 해녀로부터 1:1 멘토와 멘티로 도제수업하듯 실기교육을 받는 장소로 수심 얕은 바다다.
지난해부터 직업 해녀 양성과정 정규 수업을 실사, 해녀학교 졸업식이 열렸다는 보도를 본 바 있다.
법환 해녀학교 졸업식장에서 31명의 신규 해녀가 탄생됐는데 폴란드인 올리비아도 그들 중 하나였다.
한국으로 유학 왔다는 파란 눈의 백인 처자다.
물질이 험하고 힘들다며 젊은이들이 해녀로 나서길 꺼려 맥이 끊길 판이라 했는데 여러모로 고무적인 일이다.
범섬이 흐릿해질 정도로 하염없는 빗줄기 뿌옇게 내려 그쯤에서 귀가하기로 했다. 신시가지는 비 온 흔적이 거의 없었으나 서귀포 중앙로터리는 길이 푹신 젖어있었다.
지금은 오후 다섯 시, 태풍 낌새는커녕 태풍전야처럼 아주 조용한 오후.
빗소리조차 나지막, 강풍은 불지만 습기 가득 머금은 바람이라 창은 닫고 얼른 에어컨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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