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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삼천포로 빠졌다
by
무량화
Aug 13. 2024
아래로
나팔꽃이 막 피어난 아침나절 일이다.
물 마실 컵을 꺼내려는데
주방 창가 벽면에서부터
싱크대로
이어진 기나긴 개미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아니~
이게 뭐야!
사막에서 카라반 무리
라도 만난 듯 신기하기도 한 반면
순간
심히
당황이 됐다.
처음으로 부엌에서 개미 떼를 만났으니 놀랄 만도 했다.
원래 작은 개미이긴 하나 유독 더 작디작은 자잘한 개미군단이었다.
그들은 내가 지켜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계속 이어갔다.
방향을
따라가 보니 목표지점은 꿀
병 근처였다.
아마도 꿀을 뜨면서 작은 방울을 떨어뜨렸던 모양이다.
꿀 냄새를 맡은 듯 꿀 병 주변에 이미 개미들이 바글바글 끓는다.
순간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폰을 가지러 가기보다는, 촌각을 다투는 더 시급한 일이 목전에 있다.
개미끼리 신호를 보내 동료를 더 불러들이기 전에 얼른 조치부터 취해야 했다.
한번 주방에 개미가 꼬이기 시작하면 퇴치가 어려워 골치 아파진다.
급한 대로 바가지에 수돗물을 받아 물 묻힌 손바닥으로 개미 떼를
쓸어 모았다.
열을 지어 행군하던 개미들의 대오가 흐트러졌다.
사방으로 바삐 흩어지며 개미들은 우왕좌왕 난리가 났다.
내 손길은 더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처음엔 개미를 물에 쓸어 담다시피 했으나 차츰 정리가 되면서 오합지졸 몇 마리만 남았다.
이번엔 분산돼 도망가는 개미들을 손가락으로 일일이 찍어서 물에다 수장시켰다.
적진과 대치한 병사처럼 흰자위 벌개지진 않았어도 자못
분위기
살벌했다.
구석구석 주도면밀하게 살펴 한 마리의 개미도 남김없이 완전
퇴치시키는 데까지 반 시간쯤 걸렸다,
그제사 사진 찍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일었다.
사막을 건너는
대상 떼처럼 멋진 장면이었는데...
바가지 물에 까맣게 떠있는 개미를 보니 그러나 신나긴커녕
기분 영
별로였다.
일에는
무릇
급한 것이 있고 중요한 것이 있다.
헌데 대부분의 경우 급한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
급한 일부터 빨리 해치우고 나중에 중요한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나 정답은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 다.
성서에 나오는 베다니 마을의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는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한다.
이때 음식 준비하느라 바쁜 마르타와 달리 마리아는 예수님 가까이에 앉아 말씀을 듣는다.
이에 언니는 바쁘게 움직이는 자신을 마리아가 돕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때 예수님은 오히려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가 보다 중요한 것을 택했다고 칭찬하셨다.
급한 것과 중요한 것의 차이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다.
우리는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생각으로 코앞에 닥친 급한 일부터 먼저 처리한다.
허나 이렇게 급한 일에 쫓겨 화급한 일부터 하다 보면 자칫 놓치는 게 있다.
중요한 일인데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미루다가, 진짜 중요한 걸 처리할 적기를 놓치고 만다.
집안의 개미 퇴치는 나름 다급하고도 중요한 일에 속한다.
당시 욕심부린 현장 사진은, 블로그
놀이
의 보조 역할에 필요할 따름이다.
사진을 찍어두지 못했다 해서 아무런 문제 될 거도 없다.
그
생각 끝에 딸려 나오는 사진 한 장,
널리 알려진
사진이
다.
내전이 치열한 수단에서 찍은
저
사진은 발표와 동시에 전 세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사진은 아프리카의 참상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며 1994년 퓰리처상을 안겨줬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예술은
절대
없다는 지탄과 함께, 촬영에 앞서
아이
를 도왔어야 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결국 사진기자인 케빈 카터(Kevin Carter)는 수상 3개월 뒤 서른셋의 젊은 나이로 자살했다.
전쟁터를 취재하는 종군기자들은 누구나 목숨을 걸고 일을 한다.
그들에게는, 전쟁의 참상을 온 인류에게 알려 더 이상의 비극을 막으려는 숭고한 사명감이 있다.
사진기자 면접시험에서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사람 먼저 구할 것인가, 사진부터 찍을 것인가?
물으나 마나 한 질문이겠다.
언제나 그러하듯 오늘도
생각의 꼬리가
한참
비약해 버려 또 삼천포로 빠졌다.
keyword
개미
주방
카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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